연어입니다. 어제 적은 글에 @inki 님께서 질문을 한 가지 남겨주셨습니다. 이 글은 @inki 님의 궁금증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답변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의 경험상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글쓰기는 다름아닌 ‘연설문’이었습니다. 왜 연설문이 가장 어려운 고난이도의 글쓰기인지는 기회가 될 때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설문은 어지간한 실력과 내공, 그리고 연설자와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어려운 수준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문장가들만 맡았던 글쓰기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적어도 동북아시아에서는 그 답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격문[檄文]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격문은 고대 중국으로 부터 유래했던 문장으로서 상대를 토벌하기 전에 상대방의 무모함이나 야욕을 꾸짖어 그 기세를 꺾어버리려는 목적의 글입니다. 그리고 역사에 남아있는 최고의 격문으로서 당에서 크게 활동했던 최치원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황소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날린 격문)이 유명하지요. 구전되는 일화에 의하면 최치원의 격문을 읽은 황소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격문의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상대방의 기치에 명분이 없고 야욕만이 가득차 있음을 밝혀 토벌을 당하는 것이 마땅함을 만 천하에 알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수치심에는 두 종류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 가지는 앞서 말씀드린 격문의 힘을 배가시키는 수치심입니다. 이런 종류의 수치심의 경우엔 감추려고 했던 부끄러움을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누군가 그 속내를 밝혀 버리는 순간 알몸으로 벗겨진 것 같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본인 스스로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모르게 되지요.
반면에 마음이 허망함으로 가득차게 되는 수치심이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 ‘내가 굳이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와 같은 감정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 허망함의 근원에는 아마도 타인을 위한 배려나 나름대로 공익의 목적을 감안한 판단과 행동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을 추구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해와 양보, 배려의 행동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크게 보아 그 것이 본인과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결국 이런 종류의 수치심은 나 자신만의 영역을 넘어서 느껴왔던 자부심, 보람, 만족감 등의 감정을 송두리째 빼앗아가 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그 빈 감정이 허망함으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요?
잘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한 때 정치권에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정치란 실체가 없습니다. 정치 정치 하는데 대체 정치가 무엇일까요? 무엇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권세가 모이는 것일까요? 제가 지켜 본 바로는 그것 역시 사람이 중심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어떤 사람이 기치를 올리는 가치관에 사람들이 동조하며 모이고 세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서 그 중심이 되는 정치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치는 곧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동력을 일으키는 것이니까요. 결국 ‘정치권에서 일을 해 보았다’는 말은 바꿔말해 ‘어떤 정치인을 중심으로.. 어떤 정치인이 기치를 거는 가치관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세를 도모하고 그 기세를 펼쳐 목적을 이루어 가려고 했다’는 것이 됩니다. 네. 그러므로 저 역시 어떤 정치인과 함께 일을 했다는 것이죠. 헌데..
정치인이 가장 무서워 하는 존재는 바로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표’가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한 표’들이 정당하게 모이고 행사된다면 그릇된 정치인은 정치적 생명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한 표’들이 격문이 되는 것이죠. 정당한 힘의 방법을 통해 상대 정치인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안고 떠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한 표’란 무기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나 한 표 있는 사람이야. 국민이 주인이니 정치인 당신은 날 무서워 해야해’라는 식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치인도 곧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적 힘을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위임받아 일정 영역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책임감이 크고 도덕적이어야 하지만 일정 부분 존중 받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왜냐하면 정치인은 1명의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러 대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비록 정치인이 그 나름대로 대의와 명분, 국민에게 헌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을 하더라도 종종 말도 되지 않는 오해나 악덕한 사람들과 도매금 취급을 당하게 되면 일말의 수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정치를 해야 하나..
라는 자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정치권에 경험한 바로는 올곧고 능력있는 정치인이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사회에 불의가 남아 있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필요하다면 오히려 이런 정치인은 힘을 냅니다. 하지만 ‘한 표’ 행사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접적으로 정치인이 멸시받고 모욕감을 느낄 정도의 행동과 야유가 들어온다면 당연히 이런 기분에 휩싸이며 허망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는 비단 정치인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당연히 이런 경험은 있을테니까요.
이제 @inki 님의 궁금증에 조금은 직접적인 답변을 드려야 할까 봅니다. 제가 아무런 양해나 인사 말씀 없이 단체 카톡방을 나가 버린 것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한테 직접적인 해꼬지나 비난이 왔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단체 톡방에 그런 일들도 전혀 없었구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단체 톡방은 상당히 건전하고, 재미있고, 유용한 이야기가 오가는 스티미언들의 또 다른 채널이니까요. 그 속에서 종종 저도 참여하면서 재미도 느끼고 요긴한 정보도 얻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평소 매우 좋아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leesunmoo님을 향한 매우 악의적이며 조롱섞인 포스팅을 우연히 본 순간..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저는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저를 향한 직접적인 멸시보다 더 큰 모멸감을 느꼈고, 혹시 이것이 포스팅을 작성하신 분이 원하는 의도였다면.. 네. 그렇습니다. 그 의도는 매우 적중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잘 기획하셨고 소정의 성과를 이루어 내셨다고 얘기해야 할까요?
그러나 저도 그리 젊지만은 않은 나이고, 감정을 어느 정도는 자제하고 누그러 뜨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 숨 들이키고 생각해보니.. 뭐랄까 매우 수치스러운.. 그 수치의 감정은 앞서 말씀드린 수치감의 하나로써 제 자신의 감정 한켠에 허망함을 불러 일으키더군요. 뭐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까지 스팀잇을 해야하나.. 하고 말이죠. 생각해 보니 지금 당장 스팀잇을 접는다고 해도 별반 아쉬울 것도 없고 스팀잇 안하고도 저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 부모님의 유언도 아니고, 일말의 사명감 같은 것도 갖지 않아도 되는 이 스팀잇이란 것에 내가 아둥바둥 할 필요가 있겠나 했었지요. 그래서 일단 단체 톡방을 탈퇴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수순은 무엇이겠습니까? 네. 파워다운입니다. 저는 스팀잇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파워다운의 욕구를 느꼈고, 그 욕구는 스팀잇을 떠나도 아쉬울게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리고 @leesunmoo 님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씀하실수도 있겠습니다. 스팀잇에서 손실을 보고 있는 중이라면 과감히 그랬을까? 네. 아마 저는 스팀잇으로 손실을 보고 있더라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손실에 연연하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사람의 감정은 때론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판단 기준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사람은 이런 결정의 순간에 서게 되면 묘한 두뇌 회로가 작동되나 봅니다. 저는 종종 이런 것을 ‘적립해 둔 긍정적 이성’이라고 말하긴 하는데.. 평소 기분 좋고 긍정적이고 희망의 감정에 차 있던 상황을 일종의 포인트처럼 감정 속에.. 그리고 머릿 속에 저장해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적립해둔 긍정적인 감정들은 묘하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스멀스멀 꺼내지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그 순간 감정의 격동 속에서 작은 이성이 올라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지 않으련? 잠시만 기분을 가라 앉히고 생각해 보면 그래도 네가 쌓아온 좋은 것들이 많이 남아있쟎아. 그런 것들을 다 버려버릴 만큼 지금 느끼는 모멸감이 큰 것일까? 잠시 비껴가도록 네 마음에 조금만 여유를 두면 안될까?’
그리고 홧김에 확 파워 다운을 해버릴까 펼쳤던 스팀잇 지갑에 이런 글귀가 보이더군요.
바로 자칭 ‘도서관장’인 @soosoo 님이 0.450 SBD의 보상을 제게 보내 주시면서 남긴 감사의 글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고마운 문구였지만.. 정말 그 순간엔 많은 생각이 교차하게끔 만든 문구였습니다. 이게 단순히 상투적이고 카피나 자동입력으로 정성없이 써놓은 글귀일까요? 자그마한 금액이라도 성의껏 보냈음을 알리는 이 짧은 문장이 제 자신에게 적립되어 있던 ‘긍정적 이성’을 확 끌어올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제가 뜻을 함께 하고자 했던 정치인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철없는 저런 친구한테서 그렇게 모멸감을 느끼시면서까지 정치를 하셔야겠습니까?”
그 분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 친구도 국민의 한 사람이쟎냐. 다 안고 가야하는거지. 괜찮다.”
제가 정치권을 떠나 금융권에 몸담게 된 계기 중엔 저는 그런 대답을 할만큼의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치권을 떠난지 딱 10년 만에 전화 통화로 @leesunmoo님으로 부터 비슷한 얘기를 듣게 되었네요.
“난 괜찮아.. 그냥 참고 넘겨.. 다 지나갈거야..”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겠지요? 저는 그렇습니다. 저 역시 아직 팔팔한 나이다 보니 인생 공력이 높지 않아 감정의 기복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화살이 제 자신에게 쏠리거나 제가 아끼는 지인들에게 쏠리면 그 또한 참기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뭔가 참고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일면에는.. 잠시 감정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밥 한 끼 더 먹고 인생 경험 조금 더 한 사람들이 조금은 더 품고가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아닌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일깨워 줘야 하지 않을까요? 점점 세상이 각박해져가고 있는 이유중에는 예전과 달리 ‘어른’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이들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만 ‘어른’은 점점 더 희박해져 가고 있는 사회.. 저는 스팀잇조차 이런 ‘어른’이 없는.. 차분하지만 무게감이 있는 훈계를 해줄만한 역할자가 없는 커뮤니티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이 일베..일베 합니다. 그리고 분명 ‘일베’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베 회원들도 나름대로 항변할 이유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단호히 말씀드린다면.. 일베가 지향하는 행동 방식은, 즉 일베가 어떤 타켓으로 부터 얻어내고자 하는 목적은 결국 상대방을 허망하게 만들고, 그 마음속에 비워져 버린 공간이 그 사람 자신을 무너뜨려 버리는데 쾌감을 느끼는 것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베는 여전히 사회에서 지탄 받거나 견제되어야 할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독설가도 매력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독설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매너를 잃으면 독설가는 그 매력마저 잃으며 사회적 지탄을 얻게 됩니다. 적어도 ‘사회’는 그 정도 분별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격체이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이 @inki 님의 궁금증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답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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