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넘쳐나는 교육열로 툭하면 교육과정 개편이 진행되는 대한민국이지만 저의 학창 시절 때나 지금이나 4지 선다형스러운 사고 방식을 쉬 버리지 못하는건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지금은 4지선다형 문항이 아니지 않느냐.. 그런게 문제가 아니고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력을 키우지 못한 채 그저 정답이니 모범적인 답안이니 하는 것들을 고스란히 머리에 심어 넣는 공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 방식이 정작 투자 활동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형 객관식 시험을 보면 대개 N개의 문항이 합산되어 100점 만점을 구성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 문제 난이도에 따라 1~3 점 정도씩 차등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이니 쉽게 모델화 해 1점짜리 문항이 100개인 시험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한 학생이 95점을 맞고 다른 학생이 75점을 맞았다면 대충 봐도 앞의 학생은 95문항에서 정답을 찾아내었고 뒤의 학생은 75문항의 정답만을 맞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정답’이라고 하는 답안을 조금 더 맞추는 학생이 승자(?)가 되고, 이에 맞춰 더 높은 성적, 더 우수한 학생, 더 좋다고 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이미 시스템이 그렇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으로서는 그에 순응하여 공부하고 준비해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더 많이 맞추기.. 바로 ‘승률’ 게임에 돌입하는 것지요.
자, 까놓고 말해 봅시다. 투자가 승률 게임의 영역일까요? 분명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투자 활동을 평가할 때 이 승률에 기반하여 말하는게 다반사입니다. 이런 식이죠..
“아.. 9번 다 수익을 냈는데.. 딱 한 번 실수하는 바람에 수익을 다 까먹었네.”
이 표현에는 어떤 뉘앙스가 깔려 있는 것일까요? 네, 한국인이라면 잘 캐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해석이 가능하죠..
10번 투자의 결과만 보면 수익 난게 없다. (되려 까먹었다) 그래도 난 10번 중에 9번을 맞췄다. 어때? 똑똑하지 않냐? 딱 한 번 실수는 했지만 9할 승률의 능력은 입증한 셈 아니겠냐.
여기에 맞장구까지 쳐주게 되면 이 사람은 이제 (투자엔 재미를 못 본) 영웅이 되어갑니다. 아,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용담은 남겠지요. 결국 이 사람이 남기고 싶은 것은 가죽.. 아니 이름인 것인가요? 투자란 행동을 취했으면 수익을 냈느냐, 또는 향후에 수익을 걷어 들일만한 구조를 만들어 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헌데, 이와는 다르게 몇 번 수익을 냈었냐.. 즉, 몇 번 문제를 맞추었냐로 평가가 왜곡되는 것이지요. 이쯤되면 자산을 키우려고 투자를 한 것인지,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 투자를 한 것인지 알쏭달쏭해 집니다. 이게 바로 제목에서 언급한 ‘승률의 함정’인 것이지요.
투자는 결코 높은 ‘승률’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이지요. ‘승률’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kr 이웃이신 @ksc님이 오델로나 바둑같은 취미를 갖고 계신 것 같은데.. 아마 그런 두뇌 게임에선 거꾸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투’에서 지는 것을 감내하는 전략도 즐겨 사용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최종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작은 과정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머니 게임에서 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런지요.
트레이딩에서는 손절이란게 있습니다. 말하기는 가장 쉬우면서도 실천하기는 가장 어려운 대목이지요. 왜 어려울까요? 첫 째, 심리적으로 그렇습니다. 인간은 ‘손절’을 곧 ‘패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다는 것, 틀렸다는 것.. 이것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죠.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뿐만인가요? ‘손절’은 곧 ‘손실의 확정’을 의미합니다. 그냥 놔두면 다시 플러스가 될 만한 상황을 순간의 결정으로 손실을 확정하는 것이니 상당히 꺼림직할 수밖에 없죠. 이렇게 심리적인 면에서 손절이란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뿐만 아니죠. 손절이 어려운 이유는 ‘전략적 지식’, 즉 ‘승리’를 위한 배경 지식이 미천하기 때문입니다. 판을 크고 멀리 보는 바둑 플레이어라면 지금 당하는 국지적 패배에 겁을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더 큰 것을 얻기위해 작은 것을 내 주는 것.. 지금 작게 내 주지만 이후 더 크게 되찾아 올 수 있는 길을 트는 것.. 그런 과정을 알고 있다면 괜시히 겁을 먹을 필요가 없죠. 어쩌면 이것은 최후의 승리를 위한 작은 투자일지도 모릅니다. 밑밥일수도 있구요. 그러나 자신의 투자 행동에 승리를 쟁취한 전략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런 결과가 어떤 원리에 기인하여 가능한 것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한다면 우리는 감히 ‘손절’을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승률’의 결국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자신의 행보를 합리화 하는 것이죠. 물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꼭 패배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승리를 최종적인 승리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과정에 있는 것인지, 그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가 확인하기 위한 명분 쌓기인 것인지 엄밀히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한 순간 한 순간의 수익에 자기 확신을 높여간다면.. 한 번의 큰 손실을 당하는 순간 모든 것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멘탈이 먼저 망가질 테지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투자란 머니 게임에서 ‘승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홉 번 까여도 열 번째 큰 수익을 챙겨 최종적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면 그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투자에서 하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이번 약세장에 손실을 얻고 있음에도 ‘자신의 승률’에 발목이 잡혀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면 바로 승률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죠. 만약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이 큰 그림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아하, ‘존버족’은 자동적으로 그런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겠군요~) 하지만 자신의 거래 전략에 ‘손절’이란 것을 상정해 두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얼어붙어 아무런 조치를 취해지 못했거나, 아니면 아예 전략다운 전략도 없이 무작정 코인을 구매해 쥐고 가다가 좌불안석에 빠져 있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시장이란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렇게 전략이 없거나 자신의 전략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이 마지 못해 항복을 선언할 때 귀신같이 반등의 피치를 올려주는 속성이 있지요. 시장이란게 막연해 보여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거래하며 만들어낸 또 다른 생명체 입니다. 그 생명체는 우리의 탐욕과 공포를 먹어가며 움직이는 신기루이기도 하지요. 그런 신기루 안에서 승리하고 승리 수당을 챙겨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전략, 그리고 그 전략을 승리로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패배를 감내하고 버텨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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