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헌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연어입니다. 저는 마카오를 거쳐 방콕에 와 있습니다. 마카오에서 인천 공항만 찍고 다시 나온터라 비행거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요일에 한국으로 들어가는 일정을 찾다보니 홍콩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잡아 소요되는 시간도 더욱 늘어났네요. 그넘의 마일리지가 뭔지..

저녁무렵 숙소에 도착해 단골 식당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방에 들어와 TV를 켜니 고전 서스펜스 영화 ‘13일의 금요일’을 상영하더군요.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달력을 보니.. 오~ 정말 13일의 금요일이었습니다. 어릴적에 13일의 금요일만 되면 AFKN에서 ‘나이트메어’같은 공포 영화를 틀어주던게 생각납니다. 딱히 외부 채널이 없던 시절이라 이런 ‘특별한’날이 오면 정말 특별 방송을 해주는지 아이들끼리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하루가 지났으니.. 7월 14일의 해가 밝았군요. 곧 17일 제헌절이 다가올 때입니다. 사실 저도 해외에 거주해 보거나 이나라 저나라 여행을 해보기 전까지는 제헌절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국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 그리고 중국에 살아보기도 하고 직간접으로 투자도 해보고 하면서 드는 생각들이 결국의 법을 근간으로 움직이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생각으로 정리되게 되더군요. 그리고 저역시 대부분의 여러분들처럼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고 아쉬움도 많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사회에 자부심과 기대를 놓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예전에 자존심 쎄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북경인 출신인 여자친구가 툭하면 제게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오빠도 그렇고, 대체 한국인들은 뭘 믿고 그렇게 자존심도 쎄고 자부심에 쩔어?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사람들같아”

여러분 같으면 어떤 대답을 해주셨겠습니까? 저도 이런저런 대답을 해주었습니다만, 한번은 이런 얘기를 해 준 기억이 납니다.

“중국은 국가 위에 당이 있지? 한국은 당 위에 국가가 있어. 그리고 그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고 변화되는지 알아? 바로 법으로 운영되고 국민의 직간접적인 투표로 변화되는거야. 중국이 과연 법으로 통치되는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중국 국민들이 내가 하는 투표가 지렛대가 되어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개념을 체득할 수 있을까?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가 눈을 감을 때까지 중국이 강대국이란 얘기는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선진국이란 소리는 들을 순 없을거야. 한국이 빠른 시간에 성장해 가면서 옛날부터 유지해 왔던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모습같은 것도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설령 점차 잃어가는 무언가가 있다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은 결코 법과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통치 시스템을 버리진 않을테지. 내 말이 납득하기도 어렵고 기분도 상하는 말이겠지만, 앞으로 한국을 동경하는 중국인은 있을 순 있어도 중국을 동경하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거야. 중국을 좋아하는 것과 동경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자뻑성 얘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만만치 않은 한국 남자인지라 해 줄 얘기는 해주곤 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한류 방송이나 즐기고 화장품이나 수집하러 다니는 유학생으로 남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죠. 겉으로 보면 매우비슷해 보이지만 내실 따지고 들어가면 아주 다른 사회,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한국과 중국이었습니다.

여전에 조선 마지막 황실 가문의 핏줄을 이어받은 가수 이석씨가 아침 마당 스튜디오에 나와 조선 왕조와 근현대사,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고 잘 알지 못했던 비화들.. 특히 조선 독립을 위해 나름대로 힘썼던 황실가문(그땐 이름이나마 ‘대한제국’이었으니까요)의 노력들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헌데 방송 마지막 무렵 이런 말씀을하시더군요. 일본과는 배경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지만 한국도 민주국가가 되어 움직이는 것과 별개로 조선 황실을 보존하여 역사적 상징성과 정통성을 이어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또 어떠신지요? 저는 방송을 보던 당시엔 개인적인 의견을 똑부러지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요. 그러나 만약 지금 그 문제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 된다면 저는 반대에 한표를 던질 것입니다.

저는 근현대사에 식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법률이나 법의 역사에 대해 공부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회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 제헌’이란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알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제헌’을 통해 가장 큰 뿌리를 못으로 박게 되었습니다. 제헌을 통해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후의 역사는 아시는 것과 같습니다. 종종 정치적으로 건국절을 운운하며 임시정부의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는데, 임시정부 역시 ‘임시 헌장’이라고 하는 일종의 임시정부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치적 역사적 논란에 휘말릴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임시정부와 마찰이 있었던 이승만마저 결국 임시정부의 제헌과독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제헌의 틀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건국의 아버지’란 칭호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아닌 제헌, 즉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리 존경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았든, 어떤 행적을 남겼든, 한국이 미국을 모델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방향을 잡는데 큰 기여를 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덕분에 정작 자신은 대통령 병에 대한 국민적 반대급부로 하야란 결말을 맞이했지만.. 이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힘이고, 이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법을 제정해 둘 수 있었기에 더더욱 제헌 학자들, 제헌 참여자들에게 존경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운한 근현대사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대한민국은 법을 제정하고 그 법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 시스템을 초기에 확보하였고, 그렇기에 이승만이나 박정희 같은 장기집권을 원했던(독재자 소리를 그래서 듣지요) 집권자나 전두환, 노태우 같은 군 출신 집권자들도 법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최소한 명분상으로라도 대한민국은 법으로 움직이는 나라였기에 그 법을 건드리지 않고는 장기집권이 불가했고, 국민 역시 함부로 법을 뜯어고치려는 위정자들에 맞서 싸울 명분을 얻을 수 있었으니 대한민국의 제헌이 역사적 정치적으로 얼마나 큰 기둥 역할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피눈물로 점철된 우리의 근현대사이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지켜온 헌법, 또 그렇게 대한민국의 기준을 잡아준 헌법.. 이렇게 지켜낸 헌법이 앞으로도 나라의 근간이 될 터인데, 상대적으로 법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당이 실권을 장악한 중국이란 나라의 번영은 과연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피로 세운 공산당의 중국, 그리고 피로 지켜낸 헌법을 보유한 대한민국.. 이 두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될런지는 제가 평생을 두고 지켜볼 일입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제헌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busy, kr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