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예전에 중국 여자친구와 대만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참 마음이 답답하고 일도 잘 안 풀리던 터에 왠일로 여친이 대만으로 여행을 가자고 졸라대더군요. 지금과 달리 뭔가 마음이 후련하지 않을 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괴롭다고 술을 마셔도 정작 술이 깨면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기분 좀 내겠다고 한동안 여행을 다녀와 봐야 다시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 해야할 상황이라면 그런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서였죠. 헌데 뜬금없이 글을 써야하는 일이 하나 생겼고, 이게 얼떨결에 아르바이트가 되어 본의 아니게 꽁돈같은 여비가 마련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상황반 타의반으로 대만행 티켓을 끊으려 하는데.. 왠걸? 여친의 비자 문제 때문에 처음 계획보다 일정을 한 주 정도 미뤄야 하더군요. 무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저와 달리 북경 출신의 중국이었던 여친은 대만을 가기 위해 본국으로 비자 신청을 해야했고, 발급 후 한국으로의 배송 일정이 너무 아슬아슬했던지라 부득이 일정에 여유를 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친과는 종종 서로 자신의 나라가 부럽지 않냐고 장난삼아 티격태격 하곤 했는데, 이 때 제가 장난 삼아 한 얘기에 여친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좋지? 대만도 비자 없이 갈 수 있고 말이야~~” “우리 중국이 얼마나 좋은데? 난 북한도 그냥 갈 수 있거든! 오빠는 갈 수 있어?”
저는 이 얘기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건 뭐.. 비자 좀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북한 땅을 디디려고 했다가는 어떤 위협과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제 외국 친구들은 한국인이 누리는 대한민국 여권의 위력을 매우 부러워 합니다. 대한민국 여권은 언제나 전세계 TOP 5에 들 정도로 해외를 다닐 때 무비자 등의 혜택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는 싱가포르와 공동으로 세계에서 가장 여향력 있는 여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 가까운 북한땅조차 밟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저는 순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평소 언어에 관심이 많던 저는 대만이 어떤 성격의 중국어를 쓰는지, (엄밀히 말하면 북경어가 따로 있긴 합니다만) 표준어를 쓰는 여친과 대만 친구들이 큰 무리 없이 소통이 가능할지 등이 자못 궁금했었습니다. 헌데 약간의 표현 방식과 단어 선택에 차이만 있을 뿐 옆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정말 중국 대륙과 대만은 하나의 언어를 쓰는 같은 뿌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죠. (물론 중국 대륙과 대만의 관계나 역사를 파고 들어가면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닐겁니다)
얼마전 남북 두 정상이 도보다리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방송된 것은 잘 아실겁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힐링될 듯 푸르른 녹음과 지저귀는 새소리에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그 보다 더 심금을 울렸던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아무 불편함 없이 서로의 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다는 점이겠지요. 여타 외국인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마치 제가 중국과 대만 친구들이 서로 격이 없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본 것 같은 잔잔한 감회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추구하는 이상도 다르고 생활하는 환경도 다르지만 그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마음을 한데 모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요새 이런저런 논란을 중심으로 많은 이웃분들이 서로 마음이 상한채 활동을 지속해 오셨었나 봅니다. 헌데 오늘 보니 조금씩 마음들을 추스리고 접점을 찾으려 나서는 모습에 다시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네요. 부디 한 발자욱씩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리 못 풀 문제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린 지금껏 그렇게 밀고 땡기고 반복해 왔는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내일 친구들과 함께 홍콩으로 출국합니다. 급하게 잡힌 일정인데.. 어쨌든 홍콩과 마카오를 함께 다녀올 예정입니다. 간만에 마카오에 살고 있는 스팀잇 이웃 양양님도 잠깐 만나고 올 예정인데.. 일정이 너무 빠듯하여 차 한잔 마실 시간이나 있을까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먼 곳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지요. 친구들과 여행도 잘하고, 현지 친구도 잘 만나고, 잭팟도 팍팍 터트리고 오겠습니다. (마카오에 가는 길이니 잠깐 짬을 내어.. ㅋ) 요새 핸폰으로 글 쓰는건 도가 트고 있으니 시간 되는대로 소식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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