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한 때 글쓰는 것이 주업무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 인생에 있어서도 소중한 경험이지만 당시엔 무척이나 신경쓰이고 머리 아프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제대한 후 군생활을 회고해 보는 기분이네요) 본격적으로 제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써야만 하는 글, 써줘야 하는 글을 쓰게 되었고, 온갖 종류의 글을 두루 다루다 보니 분명 글쓰기에 대한 내공은 쌓여가는 것 같은데 오롯이 저의 생각과 색채가 담긴 글을 쓰지 못한다는 불만(?)이 쌓인 나머지 몰래 개인 블로그질을 따로 하기도 했었습니다.
한 번은 어느 분의 공식적-비공식적 글들을 전반적으로 다뤄야 하는 일이 주어지더군요. 아시다시피 주변에 말을 잘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글까지 잘쓰는 분은 드문 편이지요. 이런 이유로 종종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글로 잘 표현해줄 사람을 필요로 하곤 합니다. 대통령이 연설문을 전담해 줄 연설 비서관을 두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나 할까요? 이 작업은 일견 쉬워보이기도 하지만 꽤 어려운 업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쓰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아닌 누군가의 생각과 가치관을 대변해야 하고, 그런 작업이 오랜기간 일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말이란 것도 그렇지만 특히나 글이란 것은 보다 쉽게 기록으로 남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관계에 있어 한치 어긋남이 없어야 하고, 그 태도와 논리에 있어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사안에 모순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의 말과 글, 그리고 행동에 모순점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 사람이 주장하는 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그러다 보니 하나의 문장을 쓰더라도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했고, 실제 언급했던 발언이나 기록에 남아있는 내용을 밑바탕 삼아 글을 풀어가야 했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이런 작업에서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글을 쓰고 기록에 남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가 보다 더 생각과 마음을 공유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죠. 타인을 이해시키고, 공감케 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 그런 일련의 효과들을 글로써 해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해내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이런 역할을 맡긴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계속 해 나가다 보면 척~하면 척~ 호흡이 맞게 되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의 성과가 나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런 맛(?)에 어려웠던 시간을 잘 보냈던 것 같습니다.
헌데, 한 번은 몇 몇 기자들이 합동으로 인터뷰를 요청해 오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해 온 기자분들이야 직업 정신으로라도 이것 저것 공식적 비공식적인 발언들, 입장들을 탐독해 오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제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발언이나 글들도 모두 꿰고 오셨더군요. 그런데.. 이 분들이 유독 좋아하는, 공감하는, 그리고 즐거워하는 내용이 있던 겁니다. 몇 단어 되지 않는 한 줄의 표현이 있었는데.. 유난히 그 표현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더군요. 사실 그 표현은 일에 지쳤던 제가 한 끼 때우는 심정으로 남겨 두었던 것인데.. 그것이 그 분들에게 그렇게나 임팩트있었던 줄은 저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여러번 탈고하고, 완벽한 논조와 구성으로 가다듬었던 일련의 장문들은 안중에 없고, 비교적 가벼워 보이는 한 줄의 카피같은 글에 (속된 말로) 환장을 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좀 쇼킹했었지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여기 kr에서 ‘뻘글’이라 표현되는 글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촌철살인’의 정수가 담긴 것이 뻘글일 수도 있지요.
그 뿐만인가요? 어떤 글은 읽자마자 이해가 쉽게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글은 몇 번이고 곱씹어 봐야 진짜 의중을 캐낼 수 있기도 합니다. 또 몇 번이고 읽으며 하나씩 확인해 나가야 비로소 나에게 지식과 간접 경험이 되는 글들도 여기 스팀잇에 천지로 깔려 있습니다. 포스팅 뿐만 아니라 댓글까지 포함한다면 정말 우리는 스팀잇에 참여하면서 넓디 넓은 글의 바다에 퐁당 빠진 것과 다를 바 없게 되지요. 이 망망한 글의 향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타인과 교류해 나간다는 것 자체로 참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팀잇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한번 쯤 박수를 보낼만도 하지 않나요?
하지만 잠깐이라도 고민해 봐야할 부분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글을 읽다보면 종종 오타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느 때 발견하지 못할 경우가 많나요? 그냥 그 글에 빠져들게 될 때가 아닐까요? 글에 빠진다는 것은 어쩌면 눈은 글을 읽고 있으면서 동시에 머리 속에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견주어 가며 정리해 가는 동시 상황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글의 논조와 내용을 이해해가는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비교해 가는 상황.. 그런 집중력에 빠지다 보면 오탈자 같은 소소한 것들은 제껴버리는 것이 사람의 머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공감이고 글을 통한 마음의 교류가 일어나는 타이밍인 것이죠. 그렇지만 모든 글이 그런 상황을 연출해 주지는 못합니다. 종종 글을 쓴 사람이 내포하는 내용의 맛과 속도, 그리고 글을 읽는 사람이 사용하는 이해의 속도와 포인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글을 쓴 사람의 의중이 잘 묻어날 수 있는 속도와 분위기를 감지해 두는 것이 꽤 중요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자신의 원한 바가 곡해되지 않고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좀 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글로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막말이든 격문(檄文)이든 글을 매개체로 피터지게 싸우기도 합니다. 글 하나 단어 하나로 마음이 합치 되기도 하고 마음이 갈라서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이고 이 스팀잇에선 더더욱 밑바탕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글로 먹고 살아보았던(?) 경험자로서 글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읊어 보았습니다.
곧 많은 분들의 퇴근 시간이거나 저녁식사 시간이겠군요. 날씨가 많이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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