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전여옥과 유시민

[단상] 전여옥과 유시민

연어입니다. 최근 당뇨 초입에 들어선 친구 좀 챙기느라 스팀잇에 잘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나 봅니다. 이제 저도 스팀잇에서 나름의 구력이 생기다 보니 어떤 상황인지는 눈칫빨로 알겠더군요. 그럼 짧게나마 저의 의견을 한 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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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많이 알려진 토론 영상을 한 편 올려봤습니다. (저의 글 제목도 자극적으로 되어버렸군요) 혹시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당일에 있었던 토론 영상입니다. 탄핵 찬반 토론의 대표주자로서 당시 정계 입문을 눈앞에 두고 있던 전여옥 인류사회 대표와 노대통령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던 유시민 의원이 각각 나섰던 상황입니다. 한 분은 유명 여성 보수 논객으로서, 또 다른 한 분은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의 내공을 지닌 정치인으로서 각자의 입장과 의견을 놓고 설전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던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당대 최고 수준의 논리와 입심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 맞붙었으니 그 이유만으로도 토론회 속에서 감도는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 영상이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레전드 영상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이유가 그다지 좋은 쪽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툭 터놓고 말씀드리자면 당시 유시민이란 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자 지지하는 사람이었고, 전여옥이란 분은 몇몇 이유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적극 지지하던 저의 정치 성향상 이 토론회를 보는 내내 저의 생각과 감정은 오로지 유시민 토론 참석자 쪽으로만 쏠려있었습니다.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토론회에서 보인 전여옥 참석자의 발언들은 매우 괘씸하게 들렸고 저를 더욱 분노케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종종 이 토론회를 다시 볼 때도 그런 감정이 들기만 할까요?

이 토론회가 있은지 약 15년 가까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 토론회가 어느 한 편의 지지자에겐 일종의 ‘사이다’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리 건설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토론회’라는 취지에 부합하는 요소도 거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될 뿐입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화를 돋우고 미움을 남기며 마음의 벽만 더 높이 쌓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번 기회에 토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위에 언급했던 ‘전여옥 - 유시민’ 두 분의 토론은 정치 영역에 해당되는 내용인데다가 각각 이해 당사자 또는 그에 준하는 지위나 위치에 놓여 있는 입장이다 보니 매우 첨예한 갈등을 표출하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되는 바입니다. 사실 정치 영역에서의 토론회는 그 성격이 매우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상대의 입장을 듣기 보다는 자신과 함께하는 정치세력과 지지자들에게 더욱 강한 확신과 명분을 던져주는데 현실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정치 토론회를 다 보고나서 자신의 입장을 정한다기 보다는 이미 토론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이 지지하는 쪽이나 마음이 가는 한 쪽에 방점을 찍어두고 시청하기 마련입니다. 단언컨에 토론회를 시청하기 이전과 이후에 지지 입장을 바꾸는 시청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체 왜일까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걸까요?

정답은 모르더라도 이에 대한 힌트는 한 가지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대한 이유를 밝혀보려 한 책이 한 권 있던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정치와 같이 신념이 어느 정도 기반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윤리적 가치관이 크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학습과 이해를 바탕으로 심사숙고 끝에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기 보다는 대개 처음부터 마음 쏠리는 쪽이 있기 마련이고, 이렇게 본능적(?)으로 선택한 부분에 대해 동조해주는 타인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과 논리로 이것을 이해하고 포장하며 남에게 설파할 수 있는지 그 내용을 채워가는데 주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 이런 상황을 어느정도 받아들인다고 하면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과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 서로 대립되거나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토론이란,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알리는 일인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지간하면 내 생각을 바꿀 수 없는만큼 상대방의 생각과 신념 또한 바꾸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린 계속해서 평행선만 그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상대에게 퍼붓는 자신의 주장은 결국 자신에 대한 합리화와 자신과 생각을 같이하는 동지같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쌈박한 논조를 제공해 주는 역할밖에 되지 않는걸까요?

저는 이에 대한 나름의 노력책이 있다면 바로 ‘태도’에서 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만약 전여옥-유시민이란 두 파이터가 펼친 토론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녹취를 한 후, 각자가 주장하는 내용과 근거만을 압축 요약한다면 이 두 사람이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제가 이런 작업을 직접 해본다면 예전에 그렇게나 밉상으로 보이던 전여옥 토론자의 이야기에도 꽤 많은 부분 수긍이 갔을 것이라 봅니다. 적어도 고개는 끄덕였을거란 이야기지요. 헌데 저는 왜 당시 토론회를 시청할때 속으로 분노하며 이를 갈았을까요? 바로 태도 때문입니다. 이것이 비난이라면 그 비난의 화살은 전여옥, 유시민, 그리고 당시 긴장감 차오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던 정치인과 국민 모두에 대한 비난이자 화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버린 셈이고, 그 증폭된 감정이 토론회 참석자의 태도를 날이 서게 만들어 버린 셈일것입니다. 당시의 제겐 전여옥의 태도가 비아냥 거림으로, 유시민의 태도가 사명감에 불타는 수호신으로 보였겠지만 나이를 좀 더 먹고 사회속에서의 경륜이 조금 더 붙어버린 지금 와서 보면 두 토론자 모두 감정선이 폭발하고 만 나머지 비아냥 섞인 비유와 날선 독설을 날리기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유시민 토론자의 논조에 수긍을 합니다만 적어도 이 토론회는 야구로 비유하자면 온갖 사구와 벤치클리어링이 난무한 한 편의 난장판 경기였다는 얘기입니다. 그 속에서 유시민 토론자를 지지했던 저 자신은 또 다시 비유하자면 타자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진 투수를 응원하거나 투수에게 배트를 집어던지는 타자를 응원하는 것과 다를바 없었다는 사실이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아마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난다면 KR 커뮤니티에서 벌인 설전이 약간은 후회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내세웠던 의견은 여전히 옳다 생각하더라도 당시 태도에 대한 후회는 있을 수 있겠지요.


얼마전에 박세계님께서 너무나 좋은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저에 대한 언급까지 해두셔서 좀 난처하긴 했습니다만, 좋은 지적을 하나 해주셔서 살짝 인용해 볼까 합니다. 말씀해주셨던 바대로 저는 여전히 스달깡을 시작할때 생각했던 신념(?)을 그다지 바꾸진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만큼 숙고하고 시작했던 것일 수도 있고, 제 자존심 때문에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천만 다행인 것은 그래도 제가 다른 분들께 큰 상처를 남긴 것 없이 무난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저 자신에게 에너지를 더 쏟을 수 있게 되었지요. 제가 구상했던 스달깡이 스팀잇이란 체계 속에서 어떤 부분에 엮여 있는 것인지, 시작 시기는 옳았던 것인지 등등을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볼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다지 욕도 먹지는 않았으니 다른 분들과 옥신각신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금 더 심사숙고해서 좋은 아이디어와 건설적인 방법을 생각하는데 신경을 쓸 수 있겠죠. 적어도 많은 분들의 반대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큰 응원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스달깡 사건으로 그 큰 난동을 부린 당사자임에도 제가 여전이 스팀잇에 얼굴 빼곡히 내밀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많이 경험해 보시겠지만 간혹 주차장에 차선을 넘어서, 또는 너무 한쪽으로 쏠려서 주차한 차량을 보게 되게 됩니다. 그 차량이 버젓이 두 주차 공간의 중앙에 차를 대놓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살짝 선을 넘어선 이유만으로 그 공간엔 차량이 주차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커뮤니티 공간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모호하지만 어느 선을 살짝 넘어버리게 되면 상대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이번 이슈가 타인의 범위를 크게 침범했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고 정말 한 번 생각해 볼만한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각자의 주장을 표현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분명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사소한 차이 때문에 약간의 선을 넘어버렸고, 그 때문에 주변의 다른 유저들 역시 차를 대지 못한채 떠나버리게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해결 방법이라고야 딱히 없습니다만, 그저 조금 더 세심히 신경써서 글을 쓰는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여기서는 글이 곧 말이고 자신의 입장입니다. 글은 말과 달리 한 번 더 검토하고 생각해 볼 여유를 줍니다. 이런 장점을 충분히 살려볼 수 있다면 우리는 좀 귀찮더라도 하나의 주차 공간에 깔끔히 주차하는 차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양쪽 옆에 또 다른 차들이 주차를 하고.. 스팀잇이란 주차장은 그렇게 채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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