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청춘들에게 배낭여행의 최적지를 꼽는다면 단연코 유럽일 것입니다. 크나큰 대륙 안에 여러 민족과 국가가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왔고, 그 역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한참 넓은 세상을 느끼며 배워야 할 젊은이들에는 금상첨화인 것이지요. 게다가 유레일 패스하나로 여러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장점까지 제공하니 말이죠.
제대할 무렵 유럽 배낭 여행을 제안한 친구가 있었지만 한참 다른걸 해보고 싶던 저에겐 그닥 솔깃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좀 후회가 되긴 하는데.. 만약 2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 유럽을 둘러 보았다면 그때의 시각에비추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었을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건축학을 전공하던 한 선배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이 선배도 제대를 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딱 200만원을 모았답니다. 이 200만원을 앞에 두고 건축학도다운 고민에 빠지고 말았는데,
(1) 책과 수업으로만 익혀야만 했던 유럽 고대-중세 건축물들을 직접 보고 싶은 욕구와 (2)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팬티엄 피씨를 사서 CAD나 건축설계 프로그램들을 만지작 거리고 싶은 욕구..
결국 이 형은 고민 끝에 후자쪽을 선택하였고, 제대 후 비슷한 선택 상황에 있던 제게 이런 넋두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그 때 한참 고민하다 팬티엄에 200만원을 지르고 엄청 좋아했었는데 지금 엄청 후회가 된다. 그깟 기계 덩어리야 언제든 사버리면 끝이지만 이제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졸업 준비하랴 뭐하랴 하다보니 도통 마음에 여유가 없어. 그 때 눈 딱감고 한 달만 여행에 투자했어야 했는데..”
슬슬 팬티엄이란 신무기에 넋을 놓던 재미가 시들해져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저도 살다보니 여행이란 젊을 때 자금 사정 때문에, 사회인이 되어서는 시간 사정 때문에.. 그리고 어느 때든 같은 시간과 돈을 다른데 쓸 수 있는 기회비용의 문제 때문에 항시 뒷전으로 미뤄두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처음으로 유럽 여행이란 제안이 왔을 때 눈 딱 감고 저질렀던 것이지요. 물론 후회는 없습니다. (허리띠를 조금 졸라매야 하는 고통은 있지요. ㅎ)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떠난 여행이다 보니 청춘의 유레일이 아닌 제법 뽀대나는 차량을 렌트해 몰고 다녔는데,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 때문에 로맨틱한 환상을 품고 있는게 아니라면 차량을 직접 몰고 유럽 여러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한국에서 없던 경험이다 보니 차를 몰고 국경을 넘는다는게 어떤 기분일까 너무 궁금했는데, 제 예상 이상으로 참 묘한 경험이 되었지요. 한 번은 슬로베니아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국경 근처에서 경찰에 잡히기도 했는데.. 그 에피소드는 나중에 한 번 얘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럽대륙엔 알프스 같은 높은 산맥도 있지만 비교적 평탄한 평야나 낮은 언덕배기가 많아 이 산 저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뭐랄까.. 운전대를 잡고 있는 앞에 180도 평면 스크린이 쫙 펼쳐있는 기분이랄까요? 기차를 타면 옆을 보고 달리겠지만 좌측-전면-우측을 아울러 끝없이 펼쳐진 전경은 정말 멋지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더군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번개치는 모습도 그리보니 어찌나 장엄하던지.. 무엇보다 끝없이 물드는 석양..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국경 부근에서 바라본 저녁 노을은 정말 할말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어디서 부터 이웃 나라에 들어온 것인지 국경을 판별하는 것이 좀 애매했는데, 슬슬 경험이 쌓이다 보니 대번에 국경을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통밥이 생기던군요. 그러면서 제 마음 속에 생긴 확고한 시념이 있으니..바로
‘잘 살고 보자’
였습니다. 국경을 맞댄 지역은 예외없이 도시에서 멀찌기 떨어진 지역인데, 평야일 수도 있고 제법 나무가 우거진 지역일수도 있습니다. 헌데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나고 자란 것같은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독일같은 유럽 초강대국의 그것과 슬로바키아 같은 빈곤한 국가의 그것이 전혀 달랐습니다. 나라가 부강할수록 도로나 표지판, 펜스는 물론 도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모두 잘 가꾸어진 조경처럼 정돈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냥 놔둔것처럼 보여도 도로를 뚫고 길을 정비한 때부터 많은 돈과 공을 들이고, 좋은 자재로 된 울타리를 설치하고, 인건비를 더 들여서라도 나무 한 그루든 펜스 기둥이든 반듯하게 정돈해 놓고.. 이런 일련의 일들에 있어 보다 정성을 쏟으며 관리를 할 수 있던 것들이 결국 돈..막강한 자금을 이런 세심한 곳까지 뿌려될 수 국력에 의한 것임을 뼈져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후로 검색을 해보지 않더라도 국경지대의 주변 환경만 봐도 제법 그 나라의 소득수준을 알아 낼 수 있었습니다. 슬로베니아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던 제가 대번에 국민소득을 때려 맞출 수 있던것도 머릿속에 이런 경험에서 얻은 통밥계산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어쨌거나 잘 살고 봐야 합니다. 국가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게 행복의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겠지만 잘살지 못할때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이란 곳은 국가가 얼마나 부강하냐에 대한 기준을 두고 많은 것들을 한 큐에 비교해 볼 수 있는 최적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서라도 저는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배낭을 둘러매고 유럽으로 떠나보길 적극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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