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여러분의 종교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희 집안은 (굳이 따지자면) 불교를 믿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이란 첨언을 하는 이유는 많은 불자 집안들이 그러하듯 딱히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은 분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도 부모님께서 불교를 믿으신다고 ‘상기’해야 할만큼 제게 같은 종교를 강요하신적도 없고 그저 편안한 믿음으로 생활을 해오신 듯 합니다.
제가 저의 집안의 종교가 불교라는 것을 인식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도 그런 조사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릴적에는 학교에서 학생들 가정환경 조사란 명목으로 온갖 것을 다 확인하곤 했었습니다. 텔레비젼은 있느냐, 있으면 칼라TV냐 흑백TV냐..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그 어린 아이들을 통해 무슨 통계를 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늘 새학기가 되면 해야하는 통과의례 쯤 되었지요. 그런데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다음날 있을 질문 사항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주셨고 저는 마치 숙제인 마냥 꼬박 꼬박 하나씩 부모님께 여쭤보며 답을 알아 두어야 했었습니다.
“엄마. 우리집 종교는 뭐에요?” “종교? 불교지? 부처님 믿는다고 하면 돼”
저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도 잘 모르고 그저 이름과 존재 여부 정도만 알고 있던 터라 큰 불안감(?)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동네 놀이터에서 동네 또래들과 놀고 있다가 나이가 꽤 되는 (지금 생각해 보니 여고생이나 대학생 쯤 되었겠지요) 누나들을 따라서 교회라는 곳을 한 번 방문한 기억은 있었습니다. 뭐 그때는 사탕이나 초코파이만 준다고 해도 왠 떡이냐 하며 우르르 몰려 다닐 때 쯤이니까요. 어쨌든 저는 제 남동생과 밤에 이불을 덮고 이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쌨습니다.
“야. 큰일 났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우리 불교 믿는데. 부처님.”
“형. 어떡해? 하나님이나 예수님 보다 안 쎄쟎아?”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도 살리고 아픈 사람도 고치고 뭐 그러셨다는데 부처님은 한게 뭐있지?”
“난 몰라. 형은 알어?”
“나도 모르지. 나만 우리반에서 불교 믿는집에서 살면 어떡하냐. 아. 미치겠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다음날 등교길에 저는 정말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무거운 발검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마침내 수업 시간이 되었고, 선생님의 질문과 아이들의 응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손 들어 봐’ 질문이 연속이었지요. 드디어 질문이 나왔습니다.
“자. 종교 조사 시작할게. 먼저 집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 손!”
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혼자 ‘왕따’가 될 각오를 하고 슬그머니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뭔가 예상보다 오래 카운팅을 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꾹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더니.. 헉 (정말 놀랐음) 대충 봐도 절반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함께 손을 들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제 얼굴은 급 화색이 돌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어머니께 말씀드렸지요.
“엄마. 부처님 쫌 대단한가 봐요?”
아마 어머니께서는 이 녀석이 왠 싱거운 소리를 하나 하셨을 겁니다.
당시 우리는 잠실에 살고 있었고, 어머니께서는 이듬해 불광사라는 절이 석촌 호수 앞에 건립되자 가까운 곳에 절이 하나 생겼다면서 무척 좋아하셨습다. 마침 그 절은 공부를 하고 포교를 하는 도시형 절로 건립된 터라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 대거 머물고 계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신 후 가정주부로 평생을 사신 어머니께서는 그 이후로 그 절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시며 여태껏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인 제가 가만히 지켜보니 일이년이 아닌 수십년간 꾸준히 활동을 해오시면서 다른 불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견학하고, 여행다니고.. 이런 시간들이 모이고 모이니 중장년을 향해 가는 동안 인생의 경륜과 무게감이라는 것이 묵직하게 배어있으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더군요. 저는 특정 종교에 해당하는 얘기라기 보다는 ‘시간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어머니께서는 종종 불교 방송도 보시고, 불교를 테마로 한 책도 보시고, 유명 선사들의 수업도 들어보시고, 견문도 넓힐겸 여행도 다니시고.. 이렇게 시간을 채워 나가고 계십니다. 3~40년이 흐르는 동안 이런 꾸준함이 얼마나 큰 내공이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저야 불자 집안임에도 종교 활동은 날림인지라 이렇게 무언가 정신적으로 큰 축을 잡고 살아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가끔은 어떤 한 길을 꾸준히 밟아나가는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 스팀잇 생활이 그런 축의 하나가 될 수는 있을런지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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