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배틀 중

혈당 배틀 중

연어입니다. 중산층 시리즈에 여행기까지.. 쓸 건 많은데 그간 도통 글 쓸 엄두가 나지 않았네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벼운 글 한 편 써볼까 합니다.


5년 전 쯤인가? 새해 첫 날 새벽에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잠을 깬 적이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TV에서 의학 강연을 본 적이 있었죠.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심장마비 같은 혈관 질환이란 내용이었는데, 암은 인생 마감을 위한 준비 시간이라도 주지만 혈관 질환은 한 방에 모든 것이 끝나거나 평생 엄청난 후유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설마? 그럴리가 없는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강연을 볼 즈음 신문의 한 의학 코너에서 혈관계통에 대하여 명료한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금 내용이긴 합니다만..) 그 내용에 따르면 전 적어도 혈관계에 관한한 엄청나게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평일이 되자마자 검진을 신청했습니다. 어차피 건강검진 해당년도이기도 했으니까요. 이참에 몸 한 번 싹 훑어보자는 심정으로 서울 강남 한 복판에 있는 병원에서 CT였던가 MRI였던가 뭐 그런 것까지 촬영을 했더랬습니다. 근데 왠 미모의 여의사가 챠트를 들고 오더니만..

“몸은 전반적으로 다 건강하십니다.. 헌데.. 이 사진 한 번 보시겠어요? 여기가 좌심실 좌심방.. 어쩌고 저쩌고.. 근데 이쪽 심장 벽쪽으로 뭔가 볼록한 것이 찍힌거 같은데.. 아무래도 이게 심장을 압박하는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저희 병원 촬영 기계로는 어려우니 큰 종합병동으로 가셔서 어쩌고 저쩌고 촬영기로 정밀 검사를 다시 한 번 받아 보시길 바랍니다.”

아 놔…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큰 병원이 생겼는데, 그 병원이 동문선배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종합병동이고, 또 마침 잘 아는 선배가 영상 파트를 맡고 있어 냉큼 그곳에서 검진을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슈퍼 CT였는지 뭔지 그런 촬영에, 초음파 검사, 그리고 무슨 효소 검사인가? 몸 안에 효소를 주입하면 혈관 흐름을 체크할 수 있다고 하기에 태어나서 첨으로 그런 검사까지 다 받아보았지요. 나름 조기발견이라도 하면 다행이란 심정으로 말이죠.

마침내 선배 둘이 와서는 챠트를 올려두고는 하는 말이..

“얌마, 너 대체 어디서 검사받고 온거냐?”

“강남에 있는 XX 병원에서 받았는데요.”

“의사가 뭐라고 하디?”

“뭐 심장쪽 벽에 볼록한게 촬영되서 어쩌고 저쩌고 .. “

“푸헐.. 얌마. 네 심장벽에 뽈록한게 잡혔으면 네가 이렇게 멀쩡히 걸어다니고냐 있었겠냐? 그럴 확률은 몇 십 몇 백만분의 일이니까 걱정할거 없고, 모든 검진 결과가 너 엄청 건강하고 혈관계도 아주 깨끗하다고 말해주고 있으니까 걱정 붙들여 매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체중 관리나 좀 하고.”

전 그럼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중에 보험으로 많이 메꾸긴 했지만 나름 돈 백 만원 이상 들여서 검진은 다 해본건데 그 시발점이 어떻게 보면 오진(?)일 수도 있겠지만, 맨 처음 검진을 담당한 의사분은 의사로서의 소견울 준 것이니까 별 문제 삼을건 아니고.. 정작 의문스러운 것은 ‘왜 새벽에 가슴에 통증을 느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팩트였으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 선배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래도 제게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좀 문제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의사가 아닌 저로서는 위산이 역류하는 것과 심장 통증이 뭔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고 하네요. 결국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했던 저의 생활 습관이 작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소소한 에피소드였지만 그 날 이후로 저도 건강의 중요함과 관리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유럽 여행을 가기 전, 동행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살짝 살이 빠지기 시작하는 중이었습니다. 평소 커피, 음료수, 과일로 수분을 섭취하고 도통 물이란건 마시지도 않던 친구가 물도 자주 마시곤 그랬죠. 여행을 마치고 나니 저와 다른 친구는 살이 더 찌고 말았는데, 이 친구는 1킬로 정도 빠져있더군요. 나름 날씬(?)해지고 있다면서 옷도 새로 구입하더니만.. 간호사인 누나의 의미심장한 질문이 파고들어 오더군요.

“맨날 살이 찌던 녀석이 살이 빠지고, 물엔 입도 안대던 녀석이 물도 많이 마셔? 주말에 와서 당뇨검사 한 번 해보자.”

예전부터 나이 들어가면서 살이 찌는것 보다 살이 빠지는게 더 큰 문제라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마침 친구가 일반 담배에서 아이코스로 흡연 습관을 바꾼 타이밍에 다이어트(?)가 시작되어 본인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간호사 누나를 둔 덕분에 매번 정기적으로 세심한 건강 체크를 받고 있고, 올해 초반만 해도 혈당이니 혈압이니 모두 극히 정상으로 나오던 녀석이었는데 주말 검사 결과는 혈당치 400이라는 엄청난 수치였고, 이 수치는 합병증까지 조심해야 하는 극도로 위험한 수치라고 하더군요. (알아보니 건강한 사람이라면 대개 식후라도 수치 100은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극도의 과로와 스트레스, 안 좋은 식습관 등이 결국 몸의 한계치를 넘어서 버리고 만 것 같았습니다. 몸이란 것이 아무리 스스로 건강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어떤 임계치를 넘어버리면 한 순간에 무너지기 마련이죠. 친구도 그런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연초에 70~80대를 유지하던 것이 한 순간에 400이라니요. 일단 친구는 혈당을 잡기 위한 단기적, 장기적 비상사태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호들갑이라고 할 건 아니지만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으니까요.

헌데 이 친구가 휴대용 혈당기로 수시 체크를 하다가 여름 휴가때 독일 여행을 같이 갔던 저와 그 소심한(?) 친구를 부르더니 이참에 너희도 수치를 한 번 재보자고 권유를 해왔습니다. 저는 점심 때 무언가를 먹은지 30분쯤 된 후였고, 다른 친구도 식사를 한 지 1시간 쯤 지난 후였습니다. 혈당 수치를 보니 그 친구가 158! 제가 164씩이나 나오더군요. 저도 좀 쇼킹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바나나랑 두유 갈아서 마시고, 홍시도 두 개를 먹은 상태였거든요. (나중에 알고보니 홍시가 당수치를 엄청 올린다고는 합니다)

이게 남자들이라서 그런지, 그 순간부터 건강을 앞에 놓고도 배틀 모드에 들어가게 되더군요. 특히나 나머지 두 녀석들은 승부욕들이 강해서.. (당구칠 때 보면 알 수 있죠 ㅋ) 일단 저녁에 다시 한 번 당수치를 살펴보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도 오후 동안 방울 토마토 사먹고, 녹차 마시고… 나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더라구요. 건강도 건강이지만 배틀이기도 하고, 왠지 점심때 그 수치는 나와는 상관없는(?) 에피소드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이죠.

마침내 저녁이 되었고, 식후 2시간이 지난 후 저와 소심한 제 친구는 다시 혈당계로 당수치를 재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164에서 104로 떨어져 있었고, 친구는 158에서 180으로 급상승! 본인은 또 저녁으로 짬뽕을 먹어서 그렇다고 우기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아침에 공복혈당으로 다시 승부? 오케이!

180을 찍은 소심한 친구를 멀리 보내고, 저와 (400을 찍었던) 친구는 또 다시 다음날 아침 공복혈당 배틀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간 이후로 아침까지 물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약속을 했었고요, 어차피 뭘 먹어봐야 혈당 제어에 도움도 안될테니.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다가 생각난건 전신 마사지였습니다. 의학적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마사지를 받으면 혈당도 내려갈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친구와 단골 마사지 샵에 가서 가장 마사지를 잘하기로 소문난 선생님 두 분을 배정 받아 극강의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정말 아팠습니다 ㅠㅠ) 마사지를 받고 나니 왠지 혈당도 내려간 기분이었지요.

서로 바쁜일들이 생겨 다음날 아침에 만나 혈당을 재지는 못했는데, 친구는 배틀과 상관없이 어차피 비상모드이고 저도 친구의 건강관리에 보조를 맞춰주느라 같이 식단 관리하고, 운동도 하고, 마사지도 연짱 받고 있습니다. 저도 이 참에 건강에 대해 다시 신경도 쓰고 살도 좀 빼볼까 해요. 예전에는 혈당 수치가 늘 초정상급이라고 판정 받았었는데, 수치 100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건강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좋아하던 배우 김희라씨가 본인이 술고래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다 한 방에 건강이 망가지는 것을 본 적도 있었는데요, 술을 잘 마시는 편인 제가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것도 그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건강에 관한한 주변의 사건들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행히 친구는 관리를 시작한 이후로 혈당 수치를 상당히 잘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관리는 지속해야겠지요. 이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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