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저는 지금 빨래방에서 빨래를 돌리고 있습니다. 남자 특유의 귀차니즘 때문에 계속 미뤄오던 빨래를 날잡아서 한번에 돌리곤 하는데, 언제부턴가 빨래방에 맛을 들여 이렇게 왕창 몰아서 처리하곤 합니다. 날이 추울땐 귀차니즘이 극에 달하는데.. 나날이 양말과 속옷을 쌓아두기만 하다가 결국 대형 마트에 들를 일이 있으면 부랴부랴 새것을 사서 땜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양말이 엄청 많아진 것 같기도 하네요.
날도 좀 풀렸겠다, 몸도 거의 나았겠다.. 자동 세탁기에 빨래만 걸어두고 산책이나 다녀올까 했는데 아직 미세먼지네 황사네 해서 밖을 돌아다니기엔 무리인것 같아 그냥 조신하게 기계 옆에 앉아 이렇게 포스팅 삼매경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문득 빨래방에서의 추억 한 컷이 떠오르네요. 3년 전 가을 때 마카오 친구와 대만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고, 마침 저도 상해 파견을 마무리 짓고 시간을 맞춰 일주일간 한국 가을 여행을 할 때 이야기지요.
그 해 여름 살벌했던 여름 폭서에 형형색색의 가을 낙엽은 커녕 말라 비틀어진 잎새들로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저의 호언장담이 완전 나가리(?) 될 위험에 처해있던 때입니다. 멋드러진 한국의 가을 풍경만을 고대하며 왔던 이 친구들이 남양주 한강변과 남이섬 단풍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씁쓸한 표정마저 짓더군요. 그리곤 한 마디 한게..
“그냥 다음 일정으로 일찍 가볼까요?”
이 정도였으니 어느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다음 행선지는 전주 한옥마을이었고, 우린 아름다운 한옥마을을 향해 다시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하게 되었지요. 다행히 한옥마을의 아기자기함과 한옥의 평온함이 이 친구들에게 반전을 한아름 선사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마카오 친구는 그 때 최고의 여행 경험으로 한옥에서 잠을 청한 후 일찍 일어나 처마 아래서 은은한 풍경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는 꽃차(花茶)를 마셨을 때를 꼽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평온해 지는지 그냥 전주의 한옥에서 평생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더군요.
이렇게 전주에서 현대와 전통의 조화를 한껏 만끽 한 후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젊은 외국 관광객에게 핫 플레이인 홍대쪽에 자리를 잡고 몇일간 서울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만끽했지요. 비도 좀 오고하니 그제서야 낙엽들이 촉촉해 지며 노오란 분위기를 한껏 풍겨주더군요. 비록 친구가 그토록 원했던 빨간 단풍은 볼품 없었지만 그래도 노란 은행나무들이 여기저기 사진 곳곳에 예쁘게 드리워져 그 나름대로 가을다운 운치를 더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여행이 시작된지 꽤 시간이 흐른지라 여행객의 골치거리인 빨래감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미 서울 곳곳엔 빨래방이 성행하던 터라 밤에 이 친구들을 끌고 홍대쪽 한 빨래방에 터를 잡았습니다. 한글로 된 설명서를 읽으며 동전을 넣고 작동해 보는게 너무나 재미있는지 저에게 절대 도와주지 말라면서 제 도움을 거절하더군요. 다들 나름대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와서 여행지에 직접 써보려 부단히 애쓰던 친구들이니까요. 옷을 고르며 여직원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말이 통하는게 어찌나 신나는지 함박 웃음에 입에 귀에 걸릴 정도로 한국어로 소통하는 여행에 빠져있던 차에, 한국어 설명을 해독하며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재미도 그 친구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합니다.
빨래를 돌리며 기다리는 시간동안 우린 마카오 친구의 제안으로 중국어 끝말잇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중국어 공부겸 한건데.. 사실 저와 중국어 끝말잇기를 하다보면 저의 엉뚱한 단어 선택이 그 친구들에게 배꼽이 빠질만큼 큰 웃음을 선사하곤 했거든요. 함께 카톡 채팅방에서 단어를 이어가는데, 저는 중국어 글자 하나를 어렵게 넣어(拼音 병음) 다음 자동으로 뜨는 글자를 선택하곤 하였습니다. 자동 완성기능 같은거지요. 그런데 종종 매우 특이한 글자 조합이 되곤 하는데 그 친구들의 박장대소로 봐서는 정말 엉뚱해도 너무나 엉뚱한 단어 선택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 정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게임에 참여했지요.
그러다 보면 우리들만의 유행어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성건강 男性健康’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이게 우리 사이에선 하도 히트를 쳐서 아직도 종종 ‘남성건강 중요해요’ 라며 농담을 주고받곤 합니다. 이런 히트어들은 아직도 그 어느 유행어보다 우리를 즐겁게하고 유쾌했던 그때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네요.
지금 세탁을 마치고 건조대를 이용하는 중입니다. 지금 혼자 덩그러니 앉아 타이핑을 하고 있지만,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때의 재미난 추억들을 상기하고 있네요. 정말 제목처럼 ‘모든 것이 함께 하면’ 추억이 되지 않나요? ^^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모든 것이 함께하면 추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