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지금 눈이 오는 곳도 있고 비가 오는 곳도 있나 봅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은 어떠신지요? 그러고 보면 이번 겨울엔 눈을 꽤 자주 보는 것 같습니다. 지지난 겨울에 한국의 눈을 보고 싶어 여행왔던 외국 친구는 확률상 12월 말이면 눈을 거의 확실히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눈을 보지 못하고 떠났었지요. 그 친구가 이번 겨울에 한국을 방문했다면 한 번쯤은 원없이 눈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정작 눈을 치우느라 고생 많은 주변 이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남자분들은 많이들 공감하시겠지만 우선 국군장병 분들이 떠오르는군요. 더울 땐 수해 현장에서 대민 봉사하랴, 추울 땐 부대 내에 쌓인 산더미같은 눈 치우랴.. 고생도 많지만 그 덕분에 일반 국민들은 마음 든든히 일상 생활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들의 형제자매, 친구, 자녀분들중에서도 군복무 중인 분들이 계시다면 연어가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생각나는 이웃분들이 계시니.. 바로 아파트나 건물을 지켜주고 계시는 경비원 분들입니다. 경비원 분들께서 눈까지 치워야 하는 의무가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개 눈이 내리면 이분들이 가장 먼저 나서면서 정비가 시작되는게 엄연한 현실인 것 같습니다. 특히 밤사이 눈이 내릴 때는 아침부터 시작될 대란과 사고 위험을 미연아 막고자 제설 현장에 뛰어드시지요.
옛날 제가 어릴적만 해도 눈이 온다 싶으면 동네 어른들이나 아이들 모두 빗자루와 제설 장비를 챙겨와 함께 눈을 치우곤 했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자기 집 앞 마당 정도는 책임지곤 했었죠. 깜빡 잊고 참여를 못 했거나 눈치껏 피해볼까 하던 사람들도 정작 자신의 집 앞마당만 눈이 안 치워져 있으면 부끄러운 마음에 후다닥 치우곤 했었는데.. 이제는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 속 기억이 된지 오래입니다.
몇 년 전 어둑한 겨울 밤에 퇴근을 하여 아파트 단지에 주차를 하는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허기가 진터라 부랴부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장갑 한짝 챙긴채 밖으로 나와 보았죠. 언제부턴가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경비원 분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달려있는 CCTV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보다는 관리비를 더 줄여보겠다는 아파트 주민회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인원으로 전체 단지를 커버해 보겠다는건데.. 이건 효율성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인 안전의 문제와 근로 여건의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 본다면 이렇게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 흐름이 답인 것인지는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어쨌든 전 장갑 한 켤레 끼고나와 경비원 두서너 분이 제설작업 하고 있는데 가보았습니다.
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아까 퇴근하면서 보니까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리길래 좀 도와드릴까 해서 왔습니다. 보아하니 눈이 밤새 내릴 기세인데 여기 관리 직원분들 몇 분으로는 엄두가 나 보이질 않아서요. 저라도 좀 도움이 될까 해서 와봤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저희가 해야할 일이죠.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저야 뭐 운동삼아 저희 아파트 동 앞에라도 치워놓고 가겠습니다. 방해 되지 않게 해 놓을테니까 제설 장비가 있는 곳만 좀 알려 주십시오.
이런저런 실랑이(?)를 하기엔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 터라 그 분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나 봅니다. 전 마음 속으로 예전 같으면 서로 알고 지내는 많은 이웃들과 함께 눈도 치우고 담소도 나누고 했을텐데.. 이젠 이웃간에 서로 누가 사는지도 모르겠고, 다들 바쁜 생활 속에서 뭔가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 하나 있고 없고 큰 차이야 없겠지만 눈을 치운다는게 왠만한 남정네도 힘이 빠지는 일인지라 조금이라도 거드는게 당연하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나중엔 치워도 치워도 쌓여만 가는 눈을 밤새 치울 수는 없는지라 한 분이 염화칼슘을 여기저기 뿌리시더군요. 염화칼슘이 좋은건 아니지만 동네엔 아이나 어르신도 많이 계시니 이 분들이 미끄러지고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 염화 칼슘도 뿌려놨으니까 눈이 함빡 내려도 아침녘에 한 번 싹 거두면 될겁니다. 이제 들어가서 쉬십시오. 감사했습니다…”
경비원 아저씨 한 분의 얘기였습니다.
한 번은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벨 소리가 들려 대문으로 나가보았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경비원 아저씨 한 분이 설문지를 들고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과 서명을 받아가고 계셨는데, 내용을 듣자하니 경비 인력을 2교대로 할지, 3교대로 할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더군요. 2교대를 하게 되면 경비 업무에 종사하는 인원은 줄어들고, 대신 각자의 업무 시간은 늘어납니다. 3교대를 하면 업무시간은 좀 줄어드는 대신 인원이 좀 보강되는 것이였지요. 전 방문을 해주신 분께 의견을 한 번 여쭈어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2교대와 3교대 중에 어느쪽을 원하시나요? 제 생각으로는 경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좀 더 든다고 해도 3교대를 하셔야 무리하지 않고 좀 쉬어가면서 업무를 보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저희야 조금 더 일해도 상관 없으니까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2교대가 좋지요.
제 생각과는 다른 대답이었습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분들도 아니실진대.. 더 피곤한 것을 감수하더라도 월급을 좀 더 챙겨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3교대가 아닌 2교대 쪽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서명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엔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더군요. 어쨌거나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보겠다는 경비원 아저씨들과 매달 납부해야 하는 관리비를 줄이겠다는 아파트 주민들의 입장이 맞아 떨어져 결국 2교대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점점 더 효율을 추구해 나가고.. 게다가 요즘엔 돈이 많은 것의 기준이 되고 선택을 좌지우지 하게되는 세상이 되다보니 함박눈이 내릴 때 느낄 수 있었던 정겨운 이웃의 모습들은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뭐가 딱 좋으거라 단정지을 순 없는 것이지만.. 그리고 저 역시 새로운 부의 흐름을 좇아 이 코인시장에 발을 디딘 한 사람일 뿐이지만..눈이 내리면 이불로 몸을 덮고 따끈한 호빵과 군고구마를 간식삼아 만화책과 무협지를 읽고 즐거워하던 아날로그 시절의 감성이 아직 몸에 배어있는 저에겐 조금은 허전한 겨울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괜시리 그 시절 그 때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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