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연어입니다. 아침에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중 아파트 1층 입구에 왠 젊은 아가씨가 인터폰으로 얘기하고 있는 내용을 옆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아파트들은 1층 부터 보안이 심한편이라 집 안에서 허가를 해줘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인데, 딱 보아도 무작위로 호수를 누르고 문을 열어주십사 하는 중인거 같더군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 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음.. 이건 그 유명한 ‘도를 아십니까?’의 최신 버전인가요? 비밀번호로 복도문을 열였다간 집집마다 벨을 누르며 저러고 다닐까 싶어 옆서 물끄러미 보고만 있으니 눈치가 보였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줍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와 뭐 먹을게 없나 냉장고를 뒤적이고 있는데 저희 집으로도 벨이 울리더군요. 화상 인터폰을 보니 밖에서 들어오다가 옆 라인을 서성이던 중년 노인과 젊은 청년이 그대로 보입니다. 이쯤되면 저희 아파트 동 일대에 특정 종교(?) 전도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여러분도 길을 다니다 여기저기 ‘도를 아십니까?’ 멤버들이 접근해 온 경험들이 있으실 겁니다. ‘도를 아십니까?’란 멘트.. 아니 거의 슬로건이나 다름없는 이 표현을 누가 창안했는지 모르지만 공통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나름 방대한 점조직을 구성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가 많으실텐데 저도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긴 합니다. 예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도를 아십니까? -에 대한 대처법’이란 것도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재치있고 촌철살인의 웃음을 폭발시킬만한 위트가 있던 기억이 나네요. 급한대로 하나 기억 나는게 있다면..

“손이 귀하실 상입니다” “그럼 제 애기 낳아 주시던가요?”

뭐, 이렇게 대처하면 슬그머니 물라난다고는 하는데.. 그 놈의 ‘손이 귀하실 상입니다’도 메뉴얼을 통해 교육을 받은 것인지 정말 많이 듣습니다만, 가만보면 한국인들이 원초적으로 듣기 좋아하는.. 마음이 솔깃하는 내용들을 잘 버무려서 만든 어록들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이런 저런 저의 에피소드보다 저의 절친한 친구에게 더 화끈한(?) 에피소드가 있었는요.. 대학교 1학년 때인가 방학 때 동네를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도를 아십니까?”하고 얘기를 건네 오길래 “아뇨, 좀 알려주시죠”하고 대답했더니 잠시 움찔하다가 “그럼 저를 따라 오시죠” 하여 마시고 있던 바나나 우유를 쪽쪽 빨며 따라가 보았답니다. 이 길 저 길 따라 어느 주택가로 꾸역꾸역 들어가게 되었는데 왠 주택 안으로 들어가 보니까 신당처럼 꾸민 큰 방 같은 데서 자기처럼 따라 온 (아니 이 친구는 호기심에 자청해서 들어가 본거니까..)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있고 왠 무당 비슷한 사람이 뭔가 주저리 주저리 주문 같은걸 읊고 있더랍니다.

뭐, 그런가 보다 하고는 친구가 “여기서 뭐 가르쳐 주는거 없어요?”하고 물으니 친구를 인도해 온 사람이 또 움찔하면서 “잠시만요” 하고는 다른 사람을 데려옵니다. 아마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 친구를 안내한 사람은 일종의 영업 담당쯤 될거고, 이제 본격적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매니저 격의 사람이 나온 것이겠죠. 이 사람이 이제 도가 어떻다는 둥, 인생이 어떻다는 둥, 기가 어떻다는 둥 일장 연설을 내려 놓다가 결국에 가서는 우리 모두 제주도로 가서 단체 수양을 해야하니 회비와 각종 경비 등을 포함해 일단 현금으로 4백만원을 선금식으로 내야한다고 얘기해 주더라더군요.

‘아하, 결국 돈 내 놓으라는 얘기구만’

네, 친구가 호랑이 소굴(?)로 까지 겁도없이 들어가 봤던 이유는 대체 이 사람들이 노리는게 뭔지 늘 궁금하던 차에 한 번 제대로 알아봐야 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해서였던 겁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결국 이 사람들은 신자들에게서 돈을 노리는.. 속된 말로 ‘삥을 뜯으려는’ 집단이구나 하는 결론을 얻은 것이지요. 친구의 용감한(무모한?) 호기심 덕분에 저도 간접적으로나마 이 사이비 집단의 꿍꿍이 속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거길 따라 들어가냐? 무섭이 않았어?”

“뭐가 무섭냐, 내 덩치가 얼만데.”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한다거나.. 너도 세뇌 받아서 길거리 다니며 도를 아냐고 읊고 다닐 수도 있쟎아”

“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돼”

그러면서 거기서 돈은 한 푼도 안내고 되려 떡이랑 음료수 얻어 먹고 왔다면서 심심하던 차에 밑질거 없는 장사하고 왔다고 너털 웃음을 보입니다.

지금은 더 지능화 되고 다양한 전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으로서 대표적으로 이런 ‘도를 아십니까?’를 위시한 종교(신념)성 사이비 상품과 다단계 판매 방식 등이 있지요. 일명 ‘네트워크 마케팅’이란 이름으로서 나름 건전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아 온 일련의 역사가 있긴 하지만 ‘직접 판매’란 유통 방식 이면에 지인과 지인을 연결해 나가는 네트워크의 방식이, 결국 한국 특유의 인적 네트워크 성격과 주도자의 이권이 맞물리며 큰 폐해를 낳았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사이비 종교에 관한 논의는 건전한 종교 활동과의 선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하고 널리 합의되는 편인데, 이 다단계 마케팅에 대한 부분은 논점을 잡기가 매우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건전하고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해석이 매우 분분하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저는 한 때 ‘안티 다단계(피라미드)’의 회원으로 가입한 적도 있었는데, 하도 알음알음 주변에 이 부류에 빠진 사람들과 옥신각신 했던터라 아예 대놓고 ‘난 안티 피라미드 회원’이라고 공표하는게 낫다 싶어서 입니다.

오늘 뜬금없이 종교나 신념을 상품화한 사이비 상품, 그리고 피라밋이란 먹이사슬형 구조를 ‘네트워킹’이란 명목으로 포장한 상품을 설계하고 전파해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현혹되어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가 뭔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정신적 방어체계를 풀어버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판단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저로서는 참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이런 집단, 이런 상품이 없어지지 않고 오늘도 어디선가 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참 사람이 이루어낸 이 사회란 것이야 말로 오묘하고도 복잡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이롱(?) 불교신자랄까.. 솔직히 종교가 없다고 하는게 더 걸맞은 저와 달리 부모님은 꽤 독실한 불교신자이십니다. 부처님 오신날 행사에 참석하시겠다며 아침부터 문밖으로 나서시길래 모른척 할 수가 없어 잠실 석촌호우 앞에 있는 불광사란 절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는데.. 사람의 믿음과 신념이란 것이 오랜 기간 묵을수록 깊이가 깊어지고 무게 중심이 아래에 근엄히 자리잡은 것같은 포스를 풍기는 것 같아 저도 살짝 엄숙해 지는 것 같습니다. 종교를 포함하여 많은 신념들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우리를 들뜨게 하고 내재된 에너지를 분출시키는게 하는데 야구장 열기만한 것이 없듯이, 반대로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고 내면의 세계로 마음을 집중시키는 데 종교나 신념같은 것이 또 없지요.

어쨌든 오늘은 국가가 공인한 종교적인 날이기 때문에 서로 어느 종교를 믿든, 또 설령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종교란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역할로 다가와 있고, 또 후대의 사람들이 종료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의 높은 정신적 체계를 수립한 성현들의 말씀과 가르침을 새겨볼 수 있는 의미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상한 에피소드로 시작해 종교적 멘트로 마무리 하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죠. ^^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도를 아십니까?

# busy, kr, life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