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이야기 (2) : 당나귀의 끈기..

투자 이야기 (2) : 당나귀의 끈기..

연어입니다. 예전에 ‘사자의 배포’라는 테마로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린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포스팅 기념으로서 투자의 두 번째 이야기, ‘당나귀의 끈기’에 대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투자 회사에 몸담고 있던 시절.. 슈퍼 투자자이자 오너셨던 회장님은 업계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내기를 장려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워크샵 가서 고스톱 대회 (1등 상금 100만원 빵).. 뭐 이런 식이었지요. 한 번은 예쁜 단풍이 물들어가던 가을녘에 사내 등반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물론 상금이 걸려 있었지요. (업계 특성상 배팅 의욕을 고취하기 위함이었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ㅋㅋ)

1등 : 50만원, 빳빳한 현찰 2등 : 20만원, 빳빳한 현찰 3등 : 5만원, 헐렁헐렁한 현찰

어떻습니까? 비록 강제였지만 참가할만한 대회였겠죠? 상금에 눈이 먼.. 아니 자신을 불살라 보겠다는 의욕에 고취된 대표님 이하 직원들 모두 가을 바람에 축쳐져 가던 근육에 피가 용솟음치기 시작했습니다. 많지 않은 직원수였지만 서로 누가 1등을 ‘먹을’ 것 같은지 점쳐보곤 했습니다. 크게 4파전이 예상되었지요.

(1) 평소 팔씨름과 뭐든 맞추기 내기에서 한 번도 져 본적이 없는 스테미너 부장님 : 당시 40 초반 (2) 가장 젊고 팔팔한 김XX 사원 : 당시 20 후반 (3) 온갖 무술이란 무술은 다 찝적여본 연어 (접니다) : 당시 30대 후반 (4) 왠만하면 의자에서 일어나시지 않는.. 체력이 베일에 가려진 대표이사님 : 당시 40대 초중반

대충 이러한 나이 포지션이었습니다. 다크호스로는 (4)번의 대표이사님이었지만, 중론은 (1)번 부장님과 (2)번 김사원의 대결로 압축되었지요. 특히 (2)번 김사원의 경우엔 일단 몸이 군살 없이 매우 날렵하게 잘 빠졌고, 주말마다 사회인 야구 활동에, 틈틈이 휘트니스에서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몸짱으로 거듭나고 있는.. 게다가 아직 팔팔한 20대 후반!! 그야말로 지금껏 모든 운동과 내기에서 져본적이 없는 이력으로 봤을때 스테미너 부장님의 수성이냐, 신예의 새로운 등극이냐가 초 관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요?

일단 2등이 목표였고 (원체 왠만한 운동선수 쯤은 갈아 엎는 부장님을 이길 엄두는 나지 않아서..) 무엇보다 망가진 몸으로 30대 끝자락에 서 있었지만 한 때 운동에 죽고 운동에 살던 사나이로서 이 또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전국에 있는 30대를 대표하겠다는 기치를 걸고 말이죠. 하지만..

사회 생활로 찌든 몸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급작스런 야유회 겸 등반대회에 미처 준비할 틈조차 없었죠. 5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그 5일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준비라고는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게다가 회장님(매우 젊은 분이셨음..)과 김사원은 현지 답사랑 명목으로 미리 등산 코스를 다녀온 터였습니다. 이래저래 2등이라도 하려면 이 젊은 친구를 제껴야만 했지요.


자, 저는 우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등산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등산 동호회에서 주는 팁과 유투브에서 등산 장비 업체들이 기획한 등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죠. 이 시리즈를 다 보는데만 3일쯤 걸렸을겁니다. 저는 등반시 발생하는 체력저하의 과학적 근거를 미친듯이 캐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 등산을 유산소운동이라고 한다. 분명 맞는 얘기지만 적어도 초반 30분간의 산행은 거의 무산소 운동과 다를바 없다. 경사가 있는 등반코스를 오르기 시작하면서 몸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시작하고, 이때 발생되는 피로물질인 젖산을 제거해 나갈만한 몸상태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 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정점이 산행 시작후 대략 30분이 되는 시점이며, 이 때 젖산을 녹여내는 작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피로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이후 본격적인 유산소 운동 모드로 돌인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등산 시작 후 첫 30분 동안은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이고, 이 때 발생하는 피로물질을 스스로 풀어내기까지 피로가 급격히 상승되며, 대개 30분이 지나는 시점에야 비로소 이 피로물질인 젖산을 제거해 나갈만한 몸상태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찾아볼 내용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초반 30분간의 피로물질을 최대한 빨리 제거해 나가는 방법이었습니다.

거기엔 아주 좋은 팁들이 있더군요. 특히 등산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잘 아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등산에 별 취미가 없던 관계로 잘 모르긴 했지만 말입니다. 바로.. 초컬릿 같은 고탄수화물 음식을 초반에 극도의 피로가 몰려오는 시점에 맞춰 몸안에 흡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생리학적으로 초반의 젖산 분비를 빨리 제거해 나가는 극도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핵심은.. 몸 상태를 최대한 빨리 유산소 운동 모드로 전환시키는 것이었지요!!

저는 이런저런 과학 상식을 최대한 동원하여 다음과 같은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1) 등산을 시작하기 바로 전에 푸딩이나 초컬릿 등 고탄수화물 음식을 섭취해 둔다. (2) 썰어둔 샐러리를 작은 봉지에 담아 틈틈이 섭취한다. (3) 중간 중간 지치기 전에 충분한 수분을 섭취한다. (4) 등반 30분에 도달하는 시점에 맞춰 고탄수화물 식품을 다시 한번 섭취한다. (5)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엑스자 걸음으로 올라간다. (6) 초반에 큰 심호흡을 지속하며 몸이 빨리 유산소 모드로 변환되게 돕는다.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2)의 샐러드를 통해 엄청나게 소모되는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해 주고, (3)을 통해 수분 역시 미리미리 충족해 두는 것이죠. 그리고 (5)의 경우는 같은 곳을 올라가더라도 팔자 걸음의 반대인 엑스자 걸음을 통해 몸의 무게를 최대한 하체의 중심축에 쏠릴 수 있도록 하여 힘의 소모를 줄이는 방식이었습니다. 등산 고수들이 많이 애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저는 이런 제 나름대로의 전략을 수립한 후 평소의 체력 하나만 믿고 등산 대회에 돌입하였습니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고.. 약속대로 전 직원 모두 청계산에 집합하였죠.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코스를 골라 대장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산 등산 시간은 1위권이 1시간 반정도.. 설렁설렁 오르는 사람 기준으로 약 2시간 정도 걸리리라 예상하였습니다. 자… 이제 등산이 시작되었습니다 !!

역시 예상대로 부장님과 김사원이 처음부터 치고 올라갑니다. 부장님은 근력으로, 김사원은 가뿐한 몸으로 오르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저는 등산을 시작하는 순간에 맞춰 푸딩 하나를 후다닥 먹어치웠고 작은 가방 하나를 등에 맨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가방 안에는 물통과 초컬릿, 그리고 비닐 봉지 안에 넣으둔 샐러리도 있었지요.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하며 최대한 빨리 제 몸이 유산소 모드로 돌입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이 어찌나 빨리 튀어가던지… 뒤좇아가는 제 시야에 보이지도 않더군요. 이 때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얼마 걷지도 않은 대표님이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허얘지시더군요. 다크호스가 아니라.. 그냥 다크.. 아니 화이트였습니다. 옛날 체력만 믿고 운동을 게을리 해 온 여파가 이렇게 드러나다니… 대표님 본인도 굉장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담배를 끊어야 해..’ 만 연발하시며 말이죠.

이제 3파전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승부는 30분 싸움이고, 이 30분 동안 제가 최대한 빨리 유산소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면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큰 호흡을 들이키며 한걸음씩 올라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엇? 엇? 엇? 상체와 두 손을 무릎에 기댄채 헐떡이고 있는 김사원이 보였던 것입니다. 김사원은 계단 중간에 넋이 나간듯 멈춰 있었고, 저는 김사원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씩 올라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김사원을 지나칠 때.. 김사원은 마음으론 뒤쳐지지 않으려고 튀어 나가고 싶은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그냥 숨만 헐떡이며 울상을 짓고 있더군요.

“먼저 갈게. 이따 봐”

저는 Say Good-Bye를 읖으며 계속 전진해 나갔습니다. 이미 저는 몸이 회복 모드에 들어서고 있었고 이 모드를 가속시키기 위해 초컬릿 하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유산소 모드란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겁니다. 대개 휘트니스 센터 같은데 러닝머신으로 빨리 걷기를 하다보면 30분이 되기까지가 무척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한 순간에 몸이 확 풀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될 때가 있지요. 등반에서도 이런 지점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주 무난히, 그리고 빠르게 몸을 그런 상태로 몰아 넣을 수 있었고.. 그 때부터는 전혀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때다! 싶어 저는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몸의 회복속도가 피로속도를 압도하는 시점이니까요. 마라톤으로 치면 40km 지점까지 팍팍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라톤의 40km 지점은 ‘마의 사점’으로서 그 때 제 2차 젖산의 폭탄이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이건 마라톤 만큼 장거리 게임이 아니었으니 진짜 승부는 이 지점부터였습니다. 저는 스테미너 부장님을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도 홀짝홀짝 마셔가면서요.. 이젠 거의 뛰어가다시피 할 정도였습니다. 제 머릿 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지요. 바로..

50만원이냐! 20만원이냐!

죄송합니다. 저도 순간 돈의 노예가 되어 ㅋㅋㅋ 뭐, 이왕이면 20만원 보다 50만원 타내는 것이 훨씬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몸이 날아갈 듯 하니 정말 신나게 언덕을 올라갔습니다만.. 아 이런.. 정상에 와보니 이미 부장님이 깃발을 꽂은 후더군요.. 역시 타고난 스테미너는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부장님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나머지 일행을 기다렸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문제의 김사원이 뻘쭘한 모습으로 올라오더군요. 오자마자 제게 아까는 오바이트가 쏠렸다면서 너무 힘들단 얘기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오바이트만 쏠리지 않았으면 이길 수 있는거였어요..

저라고 할 말이 없겠습니까? ㅋㅋ 이 친구야.. 오바이트 쏠린 것 자체가 진거라구. 오바이트 안 쏠리게 체력 관리를 했었야지. 안 그래?

생각외로 저의 2등은 센세이션 했던 것 같습니다. 팔팔한 20대를 거뜬히 물리쳐낸 30대 (후반)의 포쓰.. 상상이 가시나요? 물론 저의 성격상 설레발은 좀 쳤습니다. 그래야 함께 더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함께 웃고 얘기꽃도 피우며 가을을 즐기기 위한 등반대회였으니 너무 과묵한 것도 그닥 재미있는 것은 아니었겠지요. ‘저 연어 아직 살아있습니다’를 외치며 정말 즐겁에 회식을 만끽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도 ‘어떤 전략으로 김사원을 제낄 수 있었냐’고 묻지 않는 것이었지요. 누군가 질문을 해줬다면 저의 준비와 그 준비가 맞아 떨어질 때의 느낌까지 얘기해 줬을텐데.. 어쨌든 저의 전략과 행동은 베일에 감춰진 채 ‘그런대로 스태미너가 펄펄 넘치는’ 연어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함께 즐겨볼만한 이야기였는지요? 제가 오늘의 주제인 ‘당나귀의 끈기’에 뜬금없이 이 에피소드를 말씀드린 이유는 바로 ‘끈기’란 것이 마냥 버티고 참는데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전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끈기’는 그 나름대로 버텨갈만한 이유를 중간 중간 찾아 낼 때 효과가 커집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합당한 현실적 로드맵이 있어야 하는거지요. 이 로드맵은 현실 상황 때문에 자주, 그리고 크게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로드맵이 있던 것과 마냥 없던 것은 큰 차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마치 전략을 준비했던 저와 평소 체력을 과신했던 김사원의 에피소드처럼 말이죠.

코인 시장에서.. 그리고 스팀잇 활동에서 끈기있게 존버하겠다는 이야기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존버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경청해 보면 이 스팀잇 안에서 너무나 좋은 근거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종종 오치님 같은 분께서는 마이닝을 기준으로 가까운 미래 상황을 예측해 보곤 하시는데, 그 예측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중요한 것은 바로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어떤 근거를 갖고 살펴보며 기다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챠트를 이용하시는 분도 많고, 그간 투자 경험을 밑바탕으로 좋은 훈수를 주고 계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 세계의 동향을 쉽고 빠르게 알려주시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끈기에 기름칠을 해주는 윤활유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외롭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스티미언이라면 말이죠. 그러니 이런 좋은 여건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도 ‘당나귀의 끈기’를 오래오래, 그리고 힘차게 해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 사자의 배포와 더불어 당나귀의 끈기를 채워나가 볼까요? 2018년을 그렇게 시작해보도록 합시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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