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이 냉면~냉면~ 합니다. 그렇담 이 연어가 빠질 수 없죠. 냉면에 죽고 못사는 저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저의 외삼촌 중에 몸과 얼굴 모두 성룡을 닮은 외삼촌이 계십니다. 어릴적부터 태권도(당수)를 연마하셔서 그런지 종종 이소룡 흉내를 내곤 하셨는데, 그럴때마다 조카인 저로부터 원성을 듣곤 하셨죠. 제발 (생김새답게) 성룡 흉내를 내달라고 성화를 부렸으니까요.
제가 초등학교 입학전 무렵의 꼬마였을때, 외삼촌께서 저희 집으로 멋드러진 바둑판 두 대(바둑판의 양사가 뭔지 모르겠게요. 두 개? 두 판?)를 들고 오셨습니다. 당시 군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오셨는데 공병대 소속이었던 외삼촌이 직접 덩치 큰 나무도 베고, 각 내고, 줄 긋고, 다리까지 붙인 후, 니스칠로 마무리를 해서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헌데 핸드메이드 바둑판을 선물로 받으신 아버지께서 곧장 흑백의 바둑알을 사오시더니 외삼촌과 기념 바둑 한 판을 두시더군요. 아버지께서 바둑을 두시는걸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 덕분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외삼촌으로 부터 바둑을 배워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이번엔 이 두 분이 장기라는 것을 두시더군요. 이건 또 뭔가요? 흑백의 바둑돌이 아닌 글자가 새겨진 장기알로 두는 장기란 것을 즉석에서 배웠는데, 뜨아… 거의 다 져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상황에서 한 방에 전세를 뒤집으며 ‘장이야!’를 외치고 상대로 부터 항복을 얻어내는 ‘한판 뒤집기’에 눈이 번쩍 뜨이며 매료 되고 말았지요. 그 때 부터 바둑은 손에서 놓았을 만큼 저는 장기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저에겐 냉면이란 음식이 그러했습니다. 언제 처음 냉면을 맛보았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초등학생 때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걸 처음 맛 본 순간..
“엄마, 이게 무슨 음식이에요?”
라고 어쭈어 보았을 말큼 미친듯이 매료 되었죠. 라면, 국수, 칼국수 등등 워낙 어릴적 부터 면을 좋아했던 터에 (이 쯤 되면 ‘연어’가 아닌 ‘면어’임) 굵은 면이 아닌 가는 세면에, 뜨겁기 보다는 찬, 탱글탱글한 식감 등은 제가 원하던 딱 그것이었고, 특히나 밍밍한 국물보다는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비빔냉면이란 존재는 어린 저의 마음을 훔쳐가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부터 저의 (비빔)냉면 열정은 지금까지 식지 않고 있으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도 늘 비빔냉면을 꼽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던가 중학생 때던가.. 한 번은 비빔냉면을 먹다가 어머니께 이렇게 얘기한적도 있었습니다.
“엄마, 저 나중에 냉면집 딸한테 장가갈까봐요.
이 얘기를 듣던 어머니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시더군요…
“아들아.. 이왕 결혼하겠다면 포부를 좀 키워서 냉면회사 오너 딸하고 하면 어떻겠니?”
워낙 표정이 진지하셔서 이게 농담이신건지 진담이신건지 아직도 알길이 없지만 워낙 냉면에 꽂혀 사는 아들의 모습을 보셨을 테니 그냥 웃자고 하신 말씀은 아니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데 제가 사회에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던 무렵, 하루는 어떤 비즈니스 회의 석상에 참여중이었는데 잠시 쉬는 막간을 이용해 사람들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던 중 상대측 참석자 한 분이 정말 ‘냉면 회사 회장님 딸하고 결혼하신 분’이시더군요! 냉면 매니아 분들이라면 다 알고 계실법한 ‘청X 냉면’ 오너일가의 사위라니! 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진짜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었구나(어머니의 권유를 듣고 진지하게 생각하보진 않았으니까요ㅋ), 정말 맨날 냉면 먹고 살 수 있는걸까, 그 여자분은 어떻게 만나셨을까, 냉면하고 상관 있는 인연이었을까 등등 매우 혼란(?)스럽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왠지 부럽고, 저의 꿈(?)을 빼앗긴 듯한.. 그러나 그분 연배상 어느 걸출한 냉면 회사 오너분 따님이 저보다 나이가 몇 살은 많거나 비슷했겠구나 하는 (아무 쓸 데 없는) 추측성 정보 하나 얻게 된 셈이었습니다. 헌데 농담같지만 그 때 그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남자로 보였습니다. ㅋ
대학생 때 친구 한 명이 아는 선배의 꼬드김으로 방학동안 인기있는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음식점에서 일하면 부수적인 먹방이 가능하단 이야기를 듣고 다른 친구 녀석이 후다닥 냉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더군요. 저처럼 냉면을 좋아해서 같이 냉면 식도락도 하던 친구인데, 한 번은 같이 고기를 먹고 후식인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비빔냉면은 달고 고소하게 먹어야 제맛이라며 설탕도 뿌려대고 참기름도 더 주문하고 맛나게 비벼대더니 냉면의 종류부터 온갖 지식을 얘기하는 통에..
역시 사람은 현장에서 제대로 배워야 해!
라는 생각이 들어 저도 3층 짜리 건물을 지어 영업하던 유명 냉면집에서 (위장취업의 각오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늘 과외 아르바이트만 하다 현장에서 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건데, 이렇게 일하고 나면 나도 냉면박사가 되어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요.
헌데 홀에서 서빙 정도 하려나 싶었는데 사장님은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시곤 곧장 저를 주방으로 배치하셨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임에도 주방보조로 발탁(?)된 후 그야말로 ‘개고생(개들아 미안)’은 시작 되었습니다. 일이 어찌나 힘들고 진이 빠지던지 첫날 그냥 그만둘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한 번 일을 맡으면 일단 하고 마는 (쓸데없는) 책임감에 삭신이 쑤셔대는 몸을 이끌고 다음날도 출근을 하였습니다. 주방장 형님은 대분분 첫 날을 못버티고 사라지는데 기특하다며 제게 마음을 터놓기 시작하셨고, 덕분에 저는 냉면을 만드는데 대한 여러 잡다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슬슬 기계로 냉면을 짜내는 방법도 버우기 시작했는데.. 아차 이게 큰 화근이 될 줄은 당시엔 생각도 못했지요. 대형 기계로 면을 직접 내리는 일은 제겐 자못 긴장되는 것이었고, 한가한 시간에 테스트 삼아 소량 해보는 정도면 모르겠는데 한 참 바쁘게 영업중인 상황해서 저보고 직접 하게 만드니.. 물론 숙달된 조교, 아니 싸부의 지도와 수습이 있지만 어쨌든 진땀 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사단이 터지고 말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주방장 형님이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연락도 되지 않고 곧 영업 피크 타임은 올거고, 수백 명의 손님이 한 번에 몰릴텐데 면을 내릴 줄 아는 직원의 그 많은 (분업화 된)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 중 아무도 없고.. 모두가 저만 말똥말똥 쳐다보는 기분.. 상상이 되시죠? 결국 사장님의 폭탄선언이..
“자네가 좀 해줘야겠어”
졸지에 저는 인기 냉면집에서 면을 내려야 하는 중대 업무를 맡아야 했고, 이미 모든 재료가 다 준비되어 있는 냉면 장사의 특성상 성공과 실패의 여부가 얼마나 면을 탱탱하게 잘 삶아내느냐에 달려있으니 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치어찌하여 첫 날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연을 알고 보니 평소 사장님과 주방장 형님의 사이가 안 좋았던 사실, 가혹한 노동 요구와 의견 충돌로 적막한 기류가 흐르던 와중에 제가 ‘입성’을 하게 된거였고, 첨에는 견습생 아닌 견습생인 제게 재미삼아 면을 내리는 기술을 알려주었던 건데, 이게 저를 스페어 기술자로 만든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뭔가 사장님과 형님의 심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같고, 주방장 형님은 그간 나름대로 책임감으로 불만을 꾹 참고 일을 해오던 터에 이젠 후임자(?)급이 생겼으니 아쉬운대로 일은 돌아가겠거니 해서 무단결근과 사표아닌 사표를 던지고 말았던 겁니다. 솔직히 저는 그래도 형님의 마음을 이해했던게 시간이 지날수록 돈에만 눈이 먼 사장님의 행태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여자 교감으로 퇴임 후 냉면집을 차렸다는 사장님은 의사인 아들에게 그럴듯한 병원을 차려줘야 한다며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였고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며 친한 특정 직원들은 비교적 편하고 쉬운 업무를, 책임감으로 잘 버틴다 싶은 직원은 나가 떨어질 때까지 부려먹는(?) 스토리가 있던 터였습니다.
어쨌거나 그런대로 기술 연마가 된 터라 일은 제법 잘 수행해 나갔는데, 이게 참으로 희안한 것이 조금안 긴장을 놓고 방심을 하게 되면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손님들이 “오늘은 면이 예전만 못하네요”라며 한 마디씩을 하고, 제가 보아도 정말 잘 삶아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손님들로 부터 “이렇게 맛있는 면발은 처음이다”며 탄성이 전해지고 하다보니 일순간도 대충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께 저는 전문 주방장도 아니고 어떻게 땜질이나마 해 나가고 있는 동안 빨리 새로운 주방장을 뽑아두셔야 하지 않겠냐고 재차 말씀드렸는데도 도통 소식이 없던 겁니다. 왠지 저마저 뽑아먹을 대상이 된건가 어이가 없긴 했지만 최소한 인수인계(?)는 하고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갔습니다. 한 번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기전에 빨리 사람을 구해두셔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에 저보고 휴학을 하면 안되겠냐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때부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인 냉면은 만드는 일이란 마음가짐이 사라지며 그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 순간 한 순간이 지치고 짜증이 났었습니다. 냉면집에서 일을 하면 그렇게나 좋아하는 냉면을 매일, 그것도 전문가들에게 코치를 듣고 더 맛나게 젓가락질 하겠다는 저의 푸르는 꿈은 이미 날아가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초반 몇 일간은 너무 진이 빠져 식욕이 사라진 통에 냉면은 커녕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였고, 나중엔 홀에서 먹음직스럽게 받아만 먹던게 아니라 생산(?) 현장에서 기계적으로 나오는 제품같은 기분이 들어 영 식욕이 돋질 않는 통에 냉면은 손도 안되고 밥이나 좀 입에 넣을 정도였습니다. 희망이 물거품 된 통에 정말 힘들 시간들이었는데..
마침내 구세주 한 분이 나타났는데, 갑자기 새로운 주방장이라며 한 분이 출근하였고 저는 이제야 살았구나 하며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헌데 알고보니 그 얄미운 사장님이 서의껏 뽑은게 아니라(계속 저를 부려 먹으려 했을테니까요 ㅎ) 주말에 가족들과 근처에 지나가다 우연히 이 집 냉면 맛을 보게 되었고, 육수에서 (전문가로서) 느낄 수 있는 향긋한 내음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너무 궁금하여 바로 사람 좀 구하냐고 알아왔던 겁니다. 다행히 몇 달 쉴 요량으로 한적히 지내던 이 주방장 덕분에 저는 복학전에 빠져나올 수는 있었는데, 냉면에 빠져살던 1인으로서는 냉면과 엮인 가장 희안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뭐, 추억이라면 추억일지도 모르죠.
상해에 혼자 지낼때는 까르푸에 현지 풀무원에서 생산한 냉면을 발견해 거의 매일 요리를 해 먹으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먼곳도 아니고, 하도 한국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터라 타지 생활에 나름 만족해 향수병은 없었지만 괜히 삼시세끼 어촌편을 중국 채널로 보다가 매운 짬뽕 생각이 나기 시작하더니.. 김치 찌개, 비빔냉면.. 이렇게 3종 세트는 정말 먹지 않으면 미치겠더군요. 그래서 냉면은 직접 만들어 먹고, 김치 찌개는 좀 불편한 면이 있어 그냥 한국 식당을 찾아가 먹고, 짬뽕은 한국에 들를 때마다 친구와 먹고 그런식으로 해결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5월을 전후로 냉면이 가장 땡기는 시즌이란 얘기를 주방장 형님으로 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한 참 날이 더울 때 인기 있는 음식이 아닌가 생각들 하실텐데, 봄 기운에 따스함이 느껴지면 은근히 새콤매콤하거나 산뜻하고 시원한 음식이 생각나는 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문 냉면집들에겐 지금이 시즌상 피크이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남북정상 회당 의 이슈까지 겹쳤으니..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냉면 열기가 얼마나 뜨거울지 실감이 나네요.
한 그릇의 시원한 물냉면, 그리고 새콤달콤 감칠맛 나는 비빔냉면.. 한 번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최고의 타임입니다. 여러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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