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 바라보기

선거 결과 바라보기

연어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글을 남기네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방금 선거 출구조사 결과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뭐.. 이번 선거는 삼척동자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던 선거인지라 딱히 판세 예상이라고 말할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체크 포인트라고 하면 자유한국당이 대구-경북을 얼마큼 지켜내느냐, 충남 터줏대감이었던 이인제 후보와 현 제주도지사 원희룡 후보 측이 더불어민주당의 아성으로 부터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 정도였습니다.

잠시나마 정치권에 몸을 담그다 보니 한때 함께 일했거나 직간접적으로 알고 지낸 분들이 이번 선거에도 여기저기 포진해 있더군요. 몇몇 대결지는 치열하게 싸우는 양측 모두가 아는 분들로 채워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미 정치권 바깥 세상으로 물러나 있으니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제 나름대로 이번 선거에서 생각해 볼만한 문제 두 가지를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워낙 싱겁게(?) 판가름난 결과라 굳이 정치평론가들의 세세한 분석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하지만 유권자인 우리는 이 선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번쯤 각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문재인 Vs 홍준표

저에게 이번 선거를 딱 한마디로 요약해 보라고 한다면 바로 ‘문재인 Vs 홍준표’라고 정리하겠습니다. 지금껏 이렇게 단순 명료한 선거전이 있었을까 싶네요. 결국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리인이 되었고, 자유한국당 후보들은 홍준표 대표의 대리인이 된 셈입니다. 다만 한쪽이 그 후광을 누렸다면, 다른 한 쪽은 덕분에 쪽박을 찬 꼴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집요한 대통령 물고 늘어지기가 유권자들에게 피로감을 넘어 극렬한 반감까지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판세 분석? 별반 필요 없는지도 모릅니다. 홍준표 대표에 대한 반감.. 딱 그거 하나로 이번 선거의 많은 부분이 이해되는 것이니까요. 결국 홍준표 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을 심판해달라는) 바램과 달리 유권자들은 되려 홍준표 대표를 심판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모든 초점이 쏠려 심판을 당한 자유한국당과 그 반사이익까지 흠뻑 누리게된 더불어민주당 이외에는 그 어떤 정당도 설 자리가 없는 선거가 되고 만 것이지요. 유일한 무소속 당선자(가 확실시 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경우, 당선이 유력시 되는 광역단체장들 중 가장 낮은 득표율(간신히 50%를 넘을 듯)로서 가까스로 커트라인을 넘은 것이 그러한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우리는 11년전(2007)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현재 자유한국당 비극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니까요. 당시 ‘이명박 - 박근혜 - 원희룡 - 고진화’ 4명의 후보로 시작되었던 당내 후보 선거는 중간에 홍준표 후보가 추가로 참여하고, 동시에 고진화 후보가 후보 토론 도중 객석에 있던 당원들과 말싸움을 벌인 끝에 사퇴함으로써 결국 ‘이명박 - 박근혜 - 원희룡 - 홍준표’ 4강의 격전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을 포개보면

경선 1위. 이명박 - 대통령 역임. 현재 어디 들어가 계심 경선 2위. 박근혜 - 대통령 역임. 현재 어디 들어가 계심 경선 3위. 원희룡 - 당적을 바꾼 후 다시 무소속으로 간신히 제주도지사 재선 (유력) 경선 4위. 홍준표 - 현 자유한국당 대표. 선거 말아드심.

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MB계열과 친박파 무리의 싸움 속에서 차세대 지도자 감들이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줄서기에 급급했으며, 특히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며 친박-비박의 풍파가 있는 동안, 친박이든 비박이든 ‘박’ 정권은 차기와 차차기를 이어갈만한 그 어떤 젊은 정치인도 허용하지 않으며 그 자리를 낡고 찌든 정치인과 검증조차 되지 않은 새파란 풋내기로 채워나갔던 데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엔 차세대 정치인이 크는 것을 새끼 호랑이를 키우는 것처럼 두려워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편협한 판단이 크게 작용했고, 딸내미 뻘 되는 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추기 급급했던 구세대 정치인들도 크게 한 몫 했던 것입니다.

결국 새 주자로 발돋음해야 할 40대 중후반 정치인들과 당에서 기반을 잡고 큰 정치를 도모해야 할 50대 초중반 주자들이 그저 들러리로 남거나 한 때 받았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힘으로 근근히 버텨가며 내실을 다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특히 50줄에 들어선 386 출신 대표 정치인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세 명만 보더라도 각각 자유한국당, 무소속, 바른미래당으로 갈라진 꼴이 되었고, 그것도 내실 들여다 보면 당적을 바꿨다가 다시 돌아온 자유한국당, 당적을 바꿨다가 탈당한 무소속, 당적을 바꿨다가 다른 당과 합당한 정당이란 참으로 어느쪽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입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판국에 아무리 개인 역량이 뛰어난들 힘 한 번 제대로 써볼 수 있었겠습니까?


1당 독주 Vs 존폐 앞에 선 정당들

아마 이번에 1,000(?)명의 광역단체장을 뽑았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유권자의 심판이 새정부와 대통령에게 향하는게 아니라 제1 야당에게 향한 듣도 보도 못한 선거 결과이다 보니, 민심의 심판을 받게된 정당과, 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게 된(유권자가 지켜주려 했는지도..) 정당.. 이 두 정당이 아닌 모든 정당이 존재감을 상실한.. 특히 두어 정당은 그 존폐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남북 화해무드, 북미회담 이슈에 묻혀버렸다고 하기엔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하겠습니다. 참으로 재미있겠도.. 표심은 곧 돈으로 직결됩니다. 국가 보조금 뿐만이 아니라 각종 후원금까지 고려하면 유권자로 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표를 얻어내지 못한 정당은 그 기치가 어떻고 정체성이 어떠하였든 결국 다른 정치권력에 흡수되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번 선거가 정치 지형에 있어 실질적으로 전국을 아우르는 총선(국회의원 선거)와는 조금은 다르지만 분명 국민의 부름을 받는 일꾼을 배출해 내지 못하는 정치권력, 정치정당은 어떤식으로든 사라지거나 거듭나야 할 운명인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 새롭게 재창출 되기엔 시대 정신, 유력 정치인, 신선함.. 그 어떤 것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분간 더불어민주당 이회의 정당들은 암울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참으로 걱정이라면 걱정이군요.


자유한국당의 유일한 희망, 홍준표의 아이들

선거 결과에 대한 화살이 홍준표 대표에게 쏟아지긴 할겁니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서.. 본인은 정면돌파 하겠다고 나서겠죠. 당분간 시끌시끌 하겠습니다만.. 홍준표 대표의 (조금은 이상한) 리더십을 대체할만한 정치 리더십을 찾아내지 못하면 지금과 별반 다를바 없이 흘러갈지도 모르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운명입니다. 설령 홍준표 대표가 책임을 지고 정치 2선으로 물러난다 하더라도 호시탐탐 기회가 생기면 다시 전면에 나설 상황이죠. 이래나 저래나 자유한국당은 당분간 참 곤혹스러운 나날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욕을 많이 먹는 홍준표 대표라 하더라도 (본인이 의도했든 안했든) 한 가지 희망의 씨앗을 뿌려둔 것이 있습니다. 당내 박근혜 대통령 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기치로 과감한 인적 쇄신을 단행했던 것이지요. 이게 인적 쇄신이라기 보다는.. 일단 친박 세력, 그리고 한 때 친박이었던 비박 세력들을 당내에서 몰아내고 당대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했던 의도였는데, 어쨌든 이 작업이 지금은 눈에 띄지 않지만 향후 4~5년 정도가 흐르면 이 사람들이 지금과는 다른 정치 자산을 만들어 내며 당을 재건할 인재가 될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기댈만한 희망은 여기 밖에 없는 것이지요. 자유한국당의 제대로 된 승부는 그 때서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 씨앗을 잘 키워내야만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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