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젊은 패기로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셨고, 온갖 암초에 부딪히며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는 가운데 집안 사정도 무척이나 힘들게 되더군요. 예상치 못한 자금은 계속 들어가게 되고 쪼그라드는 살림에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 모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헌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어머니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지요.
하루는 누군지 알쏭달쏭한 젊은 여자 한 분이 집 초인종을 누르며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는 이웃이라고 본인을 밝히신 이분이 하신 말씀인즉슨..
“안녕하세요. 아주머니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이웃에서 아주머니를 자주 뵈었습니다. 여태 인사도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 이렇게 인사차 처음 들렸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이어가시더랍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몇 몇 분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최근에 바깥 어른께서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아직 초기인지라 어려움이 많으신 것 같다고 하네요. 저희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어떤 상황이신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더라구요. 마침 제게 당장 필요치 않은 여윳돈이 좀 있는데..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어떻게 이 돈으로 급한 불 좀 끄시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초면에 이렇게 찾아와서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맘 편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어머니께서도 많이 당황하셨다고 합니다. 돈을 빌리러 다니는 경우는 있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선뜻 돈을 빌려주러 직접 찾아오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한편, 어머니께서는 고마운 마음은 둘 째치고 어떻게 누군지 확신할 수 없는 이웃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걸까 너무 궁금하셨답니다.
“말씀이라도 너무 감사합니다. 헌데 어떻게 저희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실 생각을 하셨는지 좀 여쭤봐도 될까요? 사실 얼굴 정도는 아신다고 하더라도 이 황량한 도시에서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게 보통 어려운일은 아닐텐데요..”
그분은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셨답니다.
“제가 댁 근처에 지나다닐때마다 매번 잊지 않고 ‘안녕하세요~’라고 꾸벅꾸벅 인사하던 아이들이 있어서 어느집 아이들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 집 아이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이 아파트에 꽤 오래 지내셨던 것 같은데 이웃들의 평판이 너무나 좋더군요. 적어도 아이들을 저렇게 교육시킬 줄 아는 어머니라면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믿고 지낼 수 있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기회로 작은 인연이라도 되면 저야 더 좋지요.”
제가 좀 더 자란 후에 어머니께서는 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던지라 아주 놀랐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경우들은 그래도 어머니와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분들의 호의였던 케이스였지만 이번 경우는 참으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과는 사뭇 사회 분위기가 다른 80년대의 일화이긴 하지만, 여전히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선뜻 먼저 나서서 돈까지 빌려주겠다고 찾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싶으니 말이죠.
그 분이 핑계삼아 말씀하신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지 잘 몰라도 대충 자주 마주친다 싶으면 인사부터 하고 보는 저와 제 동생의 행동을 보고 여러가지를 판단하신 셈인데, 그런 교육과 마인드 자체가 대개 가까운 부모로부터 시작될거란 판단에 비추어 본다면 그 분은 언제부터인가 저희 어머니에 대한 신뢰감을 차곡차곡 쌓아 두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하는 행동거지 하나, 말씨 하나, 글귀 하나 하나 모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로 부터 평가받는 재료이자 씨앗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반대로 우리 역시 다른 이를 향해 나름대로 자잘한 근거들까지 차곡차곡 마음 속에 쌓아가며 평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 방에 믿음이란게 생기고 날아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죠.
어릴 때부터 시시덕거리며 쌓은 우정이나 친분과 달리 사회에 나오게 되면 어느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화두가 중요해지게 됩니다. 사회 생활은 많은 부분 자신의 이해 타산과도 연결되어 있다보니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 나에게 해를 끼칠 소지가 다분한 사람은 멀리 하고픈게 당연지사 인간의 마음이겠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속으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에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알고 지내던 사람도 어느 시점엔 맘 속에서 정리해버리는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어 온 것 같네요. 이젠 그런 일도 익숙해서인지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고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테죠.
오늘 문득 제게 여러모로 모범이 되어주신 @leesunmoo님께서 평소와 다른 포스팅을 올려 두셔서 저도 좀 깜짝놀랐습니다. 소소한 글귀를 적어주셨지만 요약하자면 ‘선무님도 많이 지치셨구나..’ 로 귀결되더군요. 그러고 보면 제가 잠수를 타든 모른척 ‘쌩을 까든’ 출석률로 비유하자면 언제 결석할지 조퇴할지 모르는 학생과 같은 존재였다면, 선무님은 늘 한결같이 스팀잇 kr을 지켜온 터줏대감같은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요 며칠간 포스팅이 올라오지 않길래 잠시 머리라도 식힐겸 쉬고 계신가 했었는데요.. 어떤 일이 있으신건지, 또 어떤 심경에 있으신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이런 저런 고비를 잘 넘기고 충전된 모습으로 컴백하지 않으실까 희망해 봅니다. 이거 왠지 그 동안이라도 제가 평소보다 잘 버티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스팀잇 세상에서 저와 선무님과의 인연을 다 밝힐 필요야 없겠지만, 아마 제가 선무님에 대해 지녀온 신뢰감은 저희 어머님이 누군지 모를 이웃에게 쌓아둔 신뢰감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대한민국 헌법 및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찬찬히 이야기로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지껏 사회인으로 살아온 기간 동안 선무님과의 관계만큼 신뢰를 바탕으로 지켜온 경우도 많지 않았던 것 같네요.
뭐, 당분간 (1일 1포스팅은 여전히 요원하나..) 연어가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자리를 지키고 있을터니이 선무님께서는 푹 좀 쉬시다가 컴백하시길 바랍니다. ^^ 여러분들의 응원도 좀 부탁드리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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