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창문 너머 동산에 벚꽃이 만개했는데 갑자기 왠 눈인가요? 벚꽃과 눈으로 하얘진 세상은 저도 처음 봅니다. 제법 쌀쌀했던 주말 잘들 보내셨는지요. 오늘은 뜬금없이 우리 KR 민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LA에 살고있는 미국인 (여자 사람) 친구는 클린턴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열렬히 반대하고 있었죠. 하루가 멀다하고 내뱉는다는 막말쇼 때문이었을 겁니다. 친구는 트럼프같은 저질인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클린턴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 때문인지 좀 시끌시끌하지만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헌데 저의 예측을 묻는 질문에 저는..
“글쎄? 내 생각엔 트럼프가 당선될 것 같은데?”
라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친구는 기질상 민주당 후보에게 더 호의적일 것 같은 제게서 엉뚱한 대답이 나오니 꽤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지지 후보가 아니라 당선 예측에 대한 것이었으니 그저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었지요.
그런데 오래지 않아 진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친구는 걱정스러움(?)과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제게 다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넌 어떻게 트럼프가 이길거라고 생각했던거야? 난 정말 그가 당선될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거든.”
“그냥.. 뭐.. 알쟎아. 난 미국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니까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겠지. 그리고 정치권에서 일해본 경험도 있고..”
“아. 그렇네. 넌 그쪽에 프로페셔널이었지..”
이런.. 아직 친구는 제가 정치권에서 일할때 100만원빵 내기에서 진 흑역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어쨌거나 제가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던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자니 그냥 ‘난 나름 프로페셔널’ 이란 신비주의로 덮어버리는게 편할듯 하여 그리 마무리지어 버렸습니다.
지난 총선때는 안철수 공동대표가 몇몇 호남 터줏대감 격의 의원들을 이끌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나가는 순간 나중에 재탄생한 더불어민주당이 엄청난 결과를 낼거라는 예측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결과는 저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트럼프의 당선과 예상을 뛰어넘는 민주당의 승리, 그리고 이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어느 후보도 문후보를 넘어서지 못 할 것이란 점, 대선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거라는 점 등을 다 꿰맞췄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권 교체 과정에 나타난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이 있기도 했고, 어지간한 흐름은 여러분들도 다 예측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예측이란게 그리 용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면 결과를 다 알고난 지금에서는 지난 과정들이 모두 하나의 결과로 수렴되는 단계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정작 그 한 단계 단계마다 고비처나 변수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선거의 경우 어떤 변수는 그냥 쉬 묻혀버리게 되고 어떤 변수는 생각지도 못한 큰 눈덩이가 되어 판세를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쉽다면 쉽고 알쏭달쏭하다면 알쏭달쏭하기도 한 결과를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 걸까요?
저라고 여기에 해답이 있는건 아닙니다. 그런 재주가 넘친다면 정치 컨설팅을 하고 있거나 돛자리를 깔고 그 재주로 돈을 쓸어담고 있는게 낫겠지요. 그러나 저 나름대로의 판별법이 있긴 한데.. 물론 통밥이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법이기도 합니다만 그 비결을 간략히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정치 정당이나 정치인의 선호도, 지지율 등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격차가 적어도 10~15% 이상 나지 않는 경우라면 숫자 이면의 행간을 읽어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즉, 숨은 민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숫자로 표현된 민심은 드러나 있는 민심이기도 합니다. 종종 어떤 의도를 갖고 왜곡된 방식으로 조사 결과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숫자놀음의 결과는 무시할 수 없는 법이죠.
자, 먼저 숫자로 드러난 민심을 생각해 볼까요. 일단 이 드러난 민심이 열망에 기인한 것인지, 분노에 기인한 것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망에 기인하고 있다면 그 기대를 담고 있는 그릇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죠. 기대심리로 부풀어 있는 민심에 끊임없이 일관된 메세지를 뿌려주고 있는 정치 집단이나 정치인이 있다면 그 실체는 확인된 것입니다. 만약 분노에 가득찬 힘이라면 그 격정적인 불만을 애매모호하게 사회나 시대에 터트리게 하지 않고 특정 대상으로 몰고가 타켓화 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집단이나 정치인이 있는지, 그리고 그 불만에 대한 대안으로서 객관적인 자격을 갖추고 있거나 그리 할 수 있을법한 명분을 쥐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할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요소가 갖춰져 있다면 이 민심은 실체가 꽉 차있는 무서운 힘일 것입니다.
문제는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된 민심입니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우선 그 에너지를 읽어냈다 하더라도 개별적으로 잠자고 있는 민심이 결집되지 못할때는 결과적으로 큰 변수로 남지 못하게 되는데 있습니다. 이런 경우 탁월한 직관력으로 잠재된 민심을 읽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대 해석한 나머지 대세를 잘 못 읽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실패는 민심이 구체적인 대상을 정해 결집하지 못하는데 있는데,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결집되지 못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민심을 그 결과로만 판단하여 간과해 버릴경우 어느 순간 태풍이 되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풍이란 것이 일단 그 핵을 형성하면 엄청난 힘으로 커지는 것은 순식간이니까요.
가장 읽기 어렵고도 단언하기 힘든 강력한 민심은 대놓고 결집되지는 않았으나 최종 투표장에서 각개로 결집될 수 있는 민심입니다. 이른바 ‘두고보자’ 민심이지요. 저는 선거같이 정치 지형과 역사를 결정짓는 중대한 승부처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됨에도 불구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개별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인간이 벌리는 가장 큰 텔레파시적 행동이 아닐까 합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들이 하품을 할때 자신도 모르게 하품을 같이 하고 있듯이.. 누구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지만 마음 속에 비슷한 심적 작용이 작동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 심리는 ‘심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강렬해 지는데, 이것이 어떤 강력한 명분이나 구심점이 있을 때는 드러나는 민심으로 변하겠지만, 그런 핵이 될만한 요소가 없거나 딱히 외부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운 여건에서는 잠자는 사자처럼 잠재된.. 그러나 그 결과는 무섭게 응집될 수 있는 파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세상 어느 곳이든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보장된 곳이라면 정치적 이견은 늘 50대 50에 근접한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숨어있는 민심이 잠자는 듯 숨어있다가 최종 결과에 뜬금없이 응집되어 나타나게 된다면 이는 큰 파급과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죠. 어째든 이런 흐름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읽는다면 앞에서 말씀드렸던 저의 예측들은 지극히 그리 단정지어볼만 한 것들이 아니었을까요?
당시 박근혜 정부나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리던 유권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려 하려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몇몇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엔 문재인 측과 안철수 측이 벌이는 불협화음이 싫던 유권자들, 그리고 단순히 전라도 세력을 지지한다는 오명을 듣기 싫어하듼 유권자들이 상당히 많았고 이들이 많은 부분 응집되지 못한 채 그저 반정부-반한국당 정도로 남아있던 차에 안철수 대표가 호남에 지역기반이 두툼한 의원들을 대거 끌고 나갔으니 가장 원했던 깔끔한 명분을 안겨주었던 것이죠. 이제 그런대로 새정치민주연합에 우호적인 정도의 태도를 보이던 유권자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정치적 열망과 분노의 표심을 이후 정립된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밀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영남 출신인 안철수란 정치인 덕분에 호남세력 일부를 잃고 전국 정당의 명분을 쌓은 셈인데. 공교롭게도 안철수 대표가 이끌고간 정치인들 중 많은 이들이 지역 기반에 기대어 대승적 길을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인식되던 사람들이었으니 당시 총선에선 나름 선전했는지 모르나 그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자충수가 된 셈이니 이것도 정치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어쨌거나 숨겨진 민심이 진짜 표심으로 최종일에 뭉칠것으로 봤던 저는 트럼프의 당선을 (그것도 친구의 상상보다 큰 압승을) 예측했던 것입니다. 이래저래 몇가지 기준점을 보고 예측을 해보는 저만의 방식을 말씀 드려봤는데, 이런 식으로 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일찌기 예측해 본 상태입니다. 정확히는 안희정 전충남지사의 스캔들이 터진 순간 얼추 흐름이 예상되더군요.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 하신지.. 또 저의 예상은 어떤 결과를 보일지 자못 궁금하긴 합니다. (저의 예상에 대하여 여러분께서 궁금해 하신다면 다음 글에 이번 선거 결과 예측을 짧게 코멘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러분..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길게 말씀드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목에 적어두다시피 바로 KR이 내포하고 있는 민심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네요. 오늘의 글은 이쯤 마무리 하지만 다음 후편을 위해 같이 생각해볼거리를 여러분에게 안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KR에는 분명 잠자고 있는 민심이 있습니다. 물론 입장은 각기 다르고 의견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제 느낌에는 잠재되어 있되 잠자고 있는 듯 보이는 민심이 큽니다. 이 민심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스팀잇이 갖고 있는 특유의 시스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그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눈이 내리는 4월의 밤..KR 의 일원인 연어였습니다. ^^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KR 민심 읽기 - 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