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의 단상 : 스팀잇 문화

연어의 단상 : 스팀잇 문화

연어입니다. 오늘은 스팀잇 커뮤니티를 둘러싼 스팀잇 문화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본격적으로 해외 여행을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시점은 아마도 김영삼 정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영 ‘김영삼 정부 = IMF 나락’이란 등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주구장창 외쳐대며 한국 국민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일조한 정부이기도 합니다. ㅋㅋ

저는 그 즈음 한 유명 신문에 게재되었던 칼럼 하나를 기억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 유럽같은 선진국에 가보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데도 멋진 문화가 있다
  • 급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른 편에 줄지어 있어 왼쪽 편에 통로를 내준다.
  • 급한 사람은 왼쪽 통로로 빨리 올라갈 수 있다. 오른편의 배려 덕분이다.
  • 이러한 규칙이 암묵적으로 준수되어 매우 효율적인 이용이 가능하다

사실 칼럼을 기고한 사람이 의도하는 바는 뻔했습니다. 글에서 풍기는 뉘앙스란게 있쟎아요? 그 뉘앙스에 맞춰 버전을 바꿔보면 이런 메세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을 좀 비아냥거리는 느낌이긴 했습니다. 흠흠)

  • 유럽은 선진국이라 에스컬레이터 하나를 타도 폼나게 타더라. 우린 뭐냐?
  • 걔들 봐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서 갈 사람은 오른쪽, 바쁜 사람은 왼쪽을 이용한다. 캬~
  • 서로서로 알아서 룰을 지키는데 어깨부딪힐 일이 있겠나? 비켜달라고 징징대길 하겠나?
  • 요런 것만 봐도 선진국은 선진국이더라. 우린 아직 멀었다.

Captured by Google.com 그러고 보면 위 사진과 같은 풍경은 지금에야 당연지사지만, 당시엔 매우 생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럼 어땠냐구요?

Captured by Google.com 뭐, 이런 느낌? ㅋㅋ 급히 지나가야 한다면 마음 단단히 먹고 ‘잠시만요’를 읊으며 뚫고 지나가야 하겠죠?

그러나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우리도 칼럼 기고가의 동경(?)처럼 우측 standing/ 좌측 going의 룰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그 간 정부의 캠페인도 있었던 것 같고, 한국인처럼 성격 급한 사람들겐 뻥 뚫린 추월차선(?)을 두는건 반가워할만한 일이었겠죠. 그러니 이내 정착의 단계로 들어섰던 것 같습니다.

Captured by Google.com

자, 그런데 요새는 무슨 얘기가 나옵니까? 언제부턴가 한쪽서기 말고 양쪽서기를 하자고 난리입니다. 사람들이 한쪽에만 서다보니 무게 배분에 문제가 생겨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난다나요? 이게 정말 공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 답을 주실 수 있는 분 계신가요? 댓글 좀 부탁드립니다 ㅋㅋ) 어쨌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에스컬레이터 고장의 공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 옛날 칼럼을 기고하셨던 분은 어떤 대답을 들려주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나 동경하던 모습이 핀잔과 지탄으로 돌변해 버린 상황에 대해서도 말이죠. (요즘 유럽은 어떤가요? 해결책을 찾았나 모르겠습니다. ㅎ)

저는 이런 것이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서서히 달궈지며 생기고 변화되기 마련이죠.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는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시행착오도 겪게 되지만 일단 정착이 되면 그 또한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암묵적 합의와 동조도 필요하고, 실행에 옮기기 까지 큰 시간차를 딛고 가야 합니다. 다들 처음엔 쭈뼛쭈뼛 하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이렇듯 한 문화는 분명 변화해 가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더디고 때론 불가역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의 급한 성질에 버티며 에스컬레이터 양쪽을 당당히 차지하고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는 스팀잇의 완전 초기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에 최초에 스팀잇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어떤 합의나 제안, 암묵적 동의가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영어권 유저와 KR을 중심으로 뭉친 한국인 유저들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룰과 관행을 만들어 왔는지도 정확히는 모르고 있죠.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됩니다.

다만 중요 단계 단계마다 기존의 관행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제안이 있었을 것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지요.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도덕성, 책임감, 매너의 문제는 반드시 따라다닐 수밖에 없으며, 이는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전략의 제시와는 별개의 문제일 수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팀잇 커뮤니티 역시 그 설계나 운영에 있어 철학적인 문제와 맞닿게 됩니다.

스팀잇의 구성 체계를 보면 과연 이게 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되어 설계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매우 정치적이고, 자본주의 생태계적이면서도, 내부 구성원들의 암묵적 합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운영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안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있죠.

KR은 어떨까요? 사실 KR은 #KR로 명명하는 하나의 태그(tag)일 뿐입니다. 하지만 KR은 카테고리이자 공동체이기도 하죠. 한국 유저에겐 베이스캠프이자 인큐베이터이기도 합니다. 어떨 땐 보호막이 되기도 하네요. KR 없이 덩그러니 스팀잇에서 활동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첨엔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기분일걸요? ㅎㅎ

어쨌거나 KR은 나름대로의 문화를 만들어 왔고, 또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주요 하드포크 시점이 되면 그에 앞서, 또는 그에 맞게 핀트를 맞춰가고 있기도 하지요. 제가 눈여겨 보는 점들도 있습니다. 별도의 대화창을 열어두기도 하고, 큐레이션을 두고, 프로젝트도 열고, 파워를 임대하고.. 적어도 커뮤니티로서는 참으로 건전한, 그러면서도 공동의 이익과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합의점을 모색해가고 있지요.

하지만 변수도 많습니다. 뭔가 미래가치는 열려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만큼의 불확실성도 큽니다. 결국? 정해진 답은 없다는 얘기죠. 네, 맞습니다. 분명 스팀잇은 아직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요. 다만 좋은 방향, 합리적인 방향을 함께 모색해 나가다 보면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힘냅시다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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