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oldstone님의 독서경연대회에 많은 분들께서 참여하고 계시네요. 그렇다면 연어도 한 번 참여해 볼까요? 제가 들고 온 작품은 바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입니다.
사진 :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22045&memberNo=64576
작품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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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 갑자기 생각났다. 같이 서점 좀 갔다오자.”
제법 쌀쌀했던 14년 전의 어느날.. 함께 홍대에서 소줏잔을 기울여 주던 B형은 그만의 방식으로 나의 넋두리에 화답을 해주었다.
“인생에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한테 한 권씩 선물해 주고 있는데.. 네가 열 한 번째 쯤 될려나 싶다. 집에 가서 편한 맘으로 읽어봐”
내 마음 속 영원한 베스트셀러.. 언제든 힘들고 지칠때 찾아가 품에 안길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존재.. 나는 이 책을 취기 속에서 그렇게 만났던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와 함께 한 성장기
삼미슈퍼스타즈를 기억하시는지? 내 기억을 들추어 보더라도 삼미슈퍼스타즈는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패배의 화신’이었다. 늘상 두들겨 맞는 동네북이자 패배에 얼룩져 비운 속에 사라진 팀 삼미슈퍼스타즈… 이 책은 인천이 연고인 삼미슈퍼스타즈를 응원하며 자라온 한 소년의 성장기로 부터 시작된다. 책의 말미 무렵 삼미슈퍼스타즈에 대한 반전에 이르기까지.. 장담컨데 이 책을 붙잡는다면 배꼽이 빠질 만큼 키득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핑돌고 있는 기묘한 경험을 맛볼 것이다. 어떻게 장담하냐고? 나 또한 그랬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OB를 응원했다면 주인공의 유년 시절은 사뭇 달라졌을까? 원년도 우승팀 OB가 아닌 삼미슈퍼스타즈를 응원했던 그는 삼류대학 출신이란 이유로 늘 승진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아버지를 통해, 그리고 야당 출신 국회의원 지역구란 이유로 개발에서 밀리며 발전이 더디기만 한 동네를 통해 세상이란 냉정한 경쟁과 승부를 요구하는 프로의 세계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프로의 세계에서 승자로 남기 위해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즈음.. 운명처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경기를 응원하게 되고 자신의 과거와도 이별을 고한다. 마침내 일류대 출신으로서 사회에 발을 디디며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 인생을 꿈꿀 수 있게 된 주인공..
감동, 그리고 두 번의 되새김질..
# 얼큰하게 취했을 법도 했지만 나는 취하지 못했다. 알콜 따위로 마음의 고민을 털어낼 수 있었다면 백번이라도 취했을 것이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선물 받은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을 꼬박새며 키득거리던 나는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서러웠던 무언가를 털어내듯이 미친듯이 울기 시작했다. 바로 삼미슈퍼스타즈를 통한 첫 번째 카타르시스였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예상했던 길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나만의 길을 가고자 했던 나는 2년이란 시간 동안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헌데 나를 힘들고 지치게 했던 것은 새로운 길을 가는데 따른 어려움이 아니었다. 정작 선택했던 길을 해명하고 이해시키는데 더 많은 힘을 소모해야 했다. 어느 순간 부터는 그냥 결과만을 보여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하니까..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을 이해해주려 하니까.. 이런 철부지 같은 생각이 내 자신을 더 극도로 몰아붙였던 것일까? 체력은 축나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점 외로워져갔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한 명 쯤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동질감이랄까? B형을 찾아갔던 이유였다. 유일하게 나의 상황과 답답함을 이해해줄 것같던 친구의 사촌형.. 그 형은 나와 비슷한 길을 먼저 밟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 형에게서 어떤 위로와 이해를 바랬었나 보다. 하지만 형은 내게 두 마디 뿐이었다.
“네가 말 안해도 다 안다.”
그리고 책을 건네주면서 했던 한 마디..
“조금은 쉬어가도 돼. 천천히 말이야..”
그렇다. 그게 바로 이 책의 메세지였다.
쉬어가도 된다는 것.. 까짓것 다 던져버려도 된다는 것.. 애초에 ‘프로’와 ‘승부’라는 미명하에 압박해오는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 꼴찌가 아닌 꼴찌를 ‘선택’했던.. ‘프로’를 던져버리고 ‘야구’에 집중했던 삼미슈퍼스타즈처럼 그렇게 나는 또 한 명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멤버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 다는 것 자체로 남의 기준과 이목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속엔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던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마음의 짐이 되고 부담이 되어 내 자신을 짓눌렀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책 ‘삼미슈퍼스타즈..’와의 만남은 내겐 큰 전환점이었고, 이후로는 내 자신의 기준과 생각에 충실하며 중심을 잡아올 수 있었다. 힘들긴 했지만 선택엔 후회가 없었다. 바쁘긴 했지만 미련은 없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팬클럽’의 일원으로서 자칫 허망할 수 있는 세상살이에 나만의 마음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10여 년의 시간을 (역설적으로) 쉼없이 달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위기가 다시금 찾아들었다.
다시 손에 쥔 삼미슈퍼스타즈
두 번 째 위기는 10여 년이 지난 후 조용히 찾아왔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 듯했다. 이 이상 차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복잡해져 있었다. 때마침 태어나서 처음으로 난독증(難讀症) 같은 증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한 순간도 책을 놓지 않았다. 책을 쥐고 있는 것은 습관이었다. 침대에 누운채 졸음에 책을 놓쳐 얼굴에 떨어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던 나였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은 글자를 읽어나가고 머리속은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눈과 머리가 따로 노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첫 페이지가 넘어가면 다른 생각에 빠져들다가 십여 페이지를 지나서야 화들짝 놀라며 첫 페이지로 다시 돌아오기 일쑤였다. 책은 그냥 무의식으로 읽을 뿐..
나중엔 입도 가세하였다.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자그맣게 소리를 읖조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눈도 글을 읽어나가고 입으로 소리를 내며 따라가는데, 생각은 여전히 따로 놀았다. 무언가 답을 찾는 사람처럼 몽롱한, 아니 믹스된(mixed) 생각 속에서 좀처럼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생각이야 늘 하는 것이니까 문제가 아닌데 정작 당황스러운 것은 좀처럼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긴, 어느 순간부터 왠만한 책들은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어쨌거나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고민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어느날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다시 쥐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 책을 한 20권은 선물했던 것 같다. 그 형이 내게 주었던 것 처럼.. 나 역시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있거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지쳐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한 권씩 선물했던 것이다. 헌데 그러다 보니 정작 내 방에는 이 책이 없었다. 언젠가 내 방에 놀러왔던 친구가 그 책을 빌려갔었나 보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2003년도 1쇄 판을 어렵게나마 구했고 그렇게 삼미슈퍼스타즈를 다시 손에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의 난독증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되어야 할 때
# 지금이야말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건 스팀잇 활동에 지쳐가는 kr 유저들에게 던지고픈 명제이자 제안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마지막 팬클럽’이 갖는 의미를 보다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삼미의 팬클럽은 곧 인생을 자각하는 주인공이다. 자기 마음내키는 대로 살아보는 것, 아니 적어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며 여유를 되찾는 것.. 어쩌면 스팀의 시세 등락에 일희일비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보일 때까지 마음 졸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저라면, 박민규 작가가 전하는 조금은 여유있는 세상살이 방법을 한 번쯤 받아들여보는 것이 어떠한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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