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상해에 설립했던 현지 법인 정리 준비를 위해 모 부장님과 제가 출장을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상해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하지만 역시 듣던대로 중국에서는 공항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영어를 배제한 채 의사 소통을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나마 중국어 몇 마디라도 아는게 저였던지라 얼마 되지 않는 단어와 표현들을 쥐어짜며 하나씩 대응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간단히 행선지 얘기를 나누고 나서 기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척 봐도 외지에서 온 우리 일행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는지 기사님이 먼저 말을 건네시더군요. 한국말 버전으로 풀어보면 대충 이러했습니다.
- 어디서 오셨나요?
- 아, 한국에서 왔습니다.
- 오~ 대한민국! (따~한~민~궈)
- 네, 사실 한국 땅은 그닥 크지 않은데 우리는 스스로 대한민국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땅의 면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성격 좋아보이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사는) 중국 기사님과 재밌게 얘기해 보려고 해번 말이었지요. 그런데.. 위트랄까 농담이랄까.. 어쨌든 저의 이 대답이 재밌게 들렸던지 기사님이 연실 박장대소를 하시더군요.
- 그래 맞아요, 대-한-민-국! 그래도 한국 정도면 큰 거에요.
- 에이… 상해 인구가 한국 절반은 될걸요?
이걸 한국말로 풀어서 이렇지, 정작 제가 썼던 표현들이야 무진장 쉬운 단어들만 나열한 것에 불과했지요. 중국어를 좀 아시는 분들은 이런 표현을 단어 몇개로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헌데, 이뿐만이 아니라 구글맵을 보고 대충 방향을 가늠해서 제가 한 두마디 한게 또 화근(?)이었지요.
- 왼쪽으로요. (좌변 左边 )
- 아, 오른쪽이요. (우변 右边)
- 뒤로요. (후면 前面)
뭐, 이런 표현이 어려운 것은 아니에요. 수학 시간이라 생각하고 ‘좌변 - 우변 - 전면 - 후면’ 뭐 이런식으로 얘기하면 되거든요. 근데 이 단어를 막상 중국어로 발음해 보면
쭈오비앤 - 요우비앤 - 치앤미앤 - 호우미앤..
뭐, 이렇다 보니 얼핏 들으면 생소한 외국어 단어처럼 들리지 않았겠습니까? 이쯤되면 부장님께서 이렇게 생각을 하실법도 하죠.
‘오… 연어가 중국어 좀 하는데?’
한국에 돌아와 저와 출장 다녀온 보고겸 얘기를 하시던 모 부장님이 이런 말씀을 꺼내셨지요. 이게 어떻게 보면 이후 저의 역사에 있어 순간의 시작점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연어가 말입니다, 인재에요 인재! 영어면 영어, 중국어면 중국어 다 통하더라구요. 아, 글쎄 기사님하고는 중국어로 서로 깔깔거리면서 얘기도 나누는걸 제가 봤다니까요!”
함께 출장길에 고생했던 저를 북돋아 주시려고 칭찬겸 좀 오버해서 얘기해주신거긴 한데, 실상 따지고 보면.. 아시겠지만 공항이나 호텔 같은 서비스 업종에선 어지간한 영어들은 다 알아서 이해해주고, 같이 비영어권 현지인과 영어를 하게 되면 일종의 ‘인터내셔널 영어’를 쓰는거라 그닥 서로 피곤하게시리 어렵게 얘기할 필요도 없지요. 게다가 제가 쓴 중국어야 기껏 저정도 수준.. (단어 몇 개 조합하면 얼추 뜻이 통하거든요)
어쨌거나 부장님의 이 극성스러운 평가가 순시간에 ‘현지 법인 정리’에서 ‘현지 법인 재개’로 바뀌어 버리고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요 ㅋ), 누군가 나가서 교통정리를 할 사람으로 저를 우선순위 1위로 만들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물론, 최종 의사는 제가 오케이를 한 것이지만 이후 내용은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 상해 파견
- 현지 적응, 안착, 기초 임무 완수
- 어느날 저녁 심심풀이로 양꼬치 먹으러 가다가
- 아이패드로 주식 차트를 보고 있는 사과 행상을 하는 아저씨 목도
- 다음날 중국 가상화폐 거래소 물색 (OK코인, 후오비 발견)
- 중국 인맥 총동원해서 가입 완료 (중국 현지 거주인 자격 증빙)
- 한국 거래소에 있던 비트코인 이체, 일부 (한국에 없던) 라이트코인으로 변환
- 중국에서 받은 월급 추가로 들이 박아넣음. (ATM으로 진짜 현금 집어넣었음)
- 비트코인, 라이트코인 매집한답시고 되는대로 추가매입
… 그리고 최종 결론은… 외국인 계정 블락(Block), 코인 및 현금 인출 불가. 진짜 최종 결론.. ㅈ ㅔ ㄴ ㅈ ㅏ ㅇ
이것도 나비효과라면 나비효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끔은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가 내가 중국 거래소 계정을 블락당해 투자해둔 모든 코인을 날려먹게 된 시작이 어디였을까 생각해보면.. 왠지 그 때 그 기사님과 키득키득거리며 담소를 나눴던게 아니었을까 하며 농담처럼 웃어 넘기곤 합니다.
헌데 이게 나비효과의 과정이라면 지금 거기서 그칠 것이 아니겠죠. 몇 십억이 손아귀에 잡히지도 않은 채 날아가 버렸지만 그 때문에 나중에 암호화폐로 몇 백억(?)은 벌어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농담삼아 호언이라도 하게 되었으니.. 누가 압니까? 정말 몇 백억 벌게되어 ‘나의 성공 스토리’에 이 에피소드를 꼭 넣어야만 페이지가 채워지는 사람이 될지 말입니다.
왠지.. 작은 사건 하나가 불씨가 되어 점점 더 깊고 광범위한 사건으로 옮겨가는 상황들을 티비를 통해 보게 되니 그냥 이런 잡설이라도 끄적거리고 싶은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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