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엊그제 @oldstone 님께서 포스팅해두신 내용을 읽고 틈틈이 생각해 두었던 바가 있어 글을 한 번 적어 봅니다. 야심한 밤이긴 해도 해외에 계신 분들이 반갑게 드나들기 시작하는 시각이니 글을 적기에 그리 나쁜 시간도 아닌 것 같네요.
툭 터놓고 얘기하자면,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데 대찬성을 했었고, 새 정부의 열열한 지지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표현이 있으니, 바로 촛불 ‘혁명’이란 표현과 그에 대한 가치 부여입니다. 저는 단연코 ‘혁명’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으며, 차라리 촛불 ‘심판’이라는 어휘가 더 적절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생각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지요. 그렇다면 왜 제가 ‘혁명’이란 단어를 껄끄럽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이루어지기 까지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부재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매일 뜨겁게 이루어졌던 평화로운 촛불 시위가 대한민국의 자랑이 되었지만, 저는 그것보다 더욱 감명 깊었던 것이 대한민국 내 모든 부처와 기관, 그리고 사회 구성원 전체가 자신이 맡아야 하는 기본적인 임무에 그 어느때보다 충실했었기 때문입니다.
고작 대통령 한 명을 직에서 잠시 물러나게 했을 뿐인데, 이후 각 정부 부처, 국회, 검찰을 비롯한 사법부, 경찰, 군, 언론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공동체가 비로소 제 기능을 작동켰습니다. 국가 전체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의 역할도 컸지요. 저는 그 때 만큼 국군이 늠름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습니다. 실상 국가의 최고 책임자이자 국군 통수권자가 물러나 있는 상황은 안보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상황이지요.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은 그 어느 때보다 나라를 지키는데 집중을 하였습니다.
경찰도 마찬가지였지요. 평소 국민으로 부터 온갖 불평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경찰이지만 이 때만큼 국민들로 부터 신뢰를 회복한 기간이 있었나 싶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던 중차대한 사안이 눈앞에 있던 만큼 헌재와 검찰도 정말 한때나마(?) 사법부의 고민과 판단을 진행해 가면서 신뢰를 주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지요. 그 당시의 언론은 정말 언론이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해냈습니다. 사실을 파악하고, 문제를 지적하고, 필요하다면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가 제대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여론을 모색하는 전 과정에 제대로 대응했던 것이 당시의 언론이었습니다.
국민 개개인은 무거운 기류 속에서도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촛불 시위에 참여했든 하지 않았든 모두들 제 자리를 지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의견을 피력해 나갔다고 봅니다. 정말 박수칠 일이지요.
저는 이렇게 당시 박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행보를 국민의 강력한 제지에 의해 멈추자 마자 국가를 이루는 거의 모든 요소가 제 기능을 발휘하며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불만이야 많지만) 대한민국의 큰 저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불안하게 돌아가는 듯해 보이는 한국에 대해 제 외국 친구들은 우려를 많이 하였지만 저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설명하고 이런 질서와 저력은 적어도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자유 민주주의의 힘을 이런 순간에 느낄 수 있다니.. 그래서 저는 평화로운 촛불 집회보다 그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더 큰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혁명’이란 단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만약 다시 대통령과 집권세력이란 한꺼풀을 벗겨냈더니 대한민국에 곪아터진 문제들이 줄줄이 더 나오고 나라가 망가져가는 상황에 촛불의 역할이 이를 바로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새로운 기틀을 잡아갔다면 저는 그것이 성공적인 ‘혁명’이 될 수 있다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러지 않았죠. 그저 조금은 삐딱하게 갔던 길을 제대로 된 길로 가도록 제지를 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혁명이 아닙니다. 심판이지요. 조금 잘못된 리더십에 힘들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마침 @oldstone 님께서 네드가 스팀잇의 선장 역에서 물러난 이후 공교롭게도 스팀잇이 더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을 꼬집어 주셨더군요. 앞에 줄줄이 얘기한 부분도 어쩌면 이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러분은 평소 스팀잇이 그렇게 걱정이 되시는지요? 저도 여러분처럼 이런저런 불만이야 없겠습니까마는 요새 스팀잇 안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네드가 힘을 잃고) 자생적으로 가야할 길을 다시금 가는 스팀잇 커뮤니티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몇몇 증인이나 개발자 등을 중심으로 네드의 빈자리를 메워갈 만큼의 메세지가 오가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스팀잇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앞두고 그간의 제도와 저력을 바탕으로 더 탄탄해져갔던 대한민국과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네드가 스팀잇을 이끌어 왔다고 딱 잘라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동안 그의 역할과 희생 또한 컸던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이제 스팀잇은 네드와 재단의 리더십을 버리고 새로운 자양분을 스스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스팀잇은 달리고 있죠. 멈추지 않고 말이죠. 그러면서 채울 것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실로 대단하지 않나요?
말을 물가까지 데려오는 것은 쉬워도 물을 먹이는 것은 어렵다고들 합니다. 본인이 싫다는데 억지로 시키기 어렵다는 비유죠. 헌데 저는 이 표현을 자주 거꾸로 사용하고는 합니다.
말을 물가까지 데려오는 것은 어려운데, 일단 물가에 선 말은 신선한 물을 금방 마시고 만다…
조금만 더 가면 신선한 물을 먹을 수 있는데, 주인을 따라가는 말은 징징대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왜 이 험난한 길을 피곤하게 걸어야 하는지.. 그러나 정작 물을 보게 되면 그간의 투정은 어디갔는지 모르게 꿀떡꿀떡 물을 들이키겠지요. 그제서야 이 힘든 길을 걸어온 보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스팀잇에서 활동하면서 주변에 스팀잇에 대해 설득하고 독려해야 하는 여러분의 입장이 이렇게 말을 물가까지 어렵사리 끌고 가야했던 주인과 같지 않나 싶습니다. 꽤 오랜 기간 비리비리 한 스팀 가격을 지켜봐야겠지만 여러분이 투정을 부리며 물가로 다가가는 말이 아니라면 어렵고 힘들어 보여도 그저 인내하면서 설득해 나가는 주인의 자세로 스팀잇 활동에 임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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