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이런 우스개 얘기가 있었죠. 외제차 구매를 망설이는 청년에게 딜러가 말합니다.
“외제차는 돈으로 사는게 아닙니다. 용기로 사는거죠.”
그렇다면 무한질주에 필요한 것은 ‘객기’일까요? 굳이 물리 공식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미친듯이 달리는 철덩어리는 하나의 흉기이고 그 위험은 운전자 본인도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는 아우토반의 광란이 독일 운전자들의 광기가 빚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적어도 직접 아우토반을 달려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아우토반은 그런 선입관을 싹 날려주었습니다. 3~4차선 도로를 점령한 대형 차량들은 그렇게 의젓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큰 덩치가 달리면서 절대 일반 승용차를 위협하거나 위용을 과시하지 않았으며, 조심조심 제 나름대로 추월을 시도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지요. 대개 박스형 차량이 대부분인 이유는 자칫 도로에 물건이나 내용물을 흘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한국 고속도로에서는 종종 여기저기 차량에서 쏟아진 내용물이 널부러져 있기 마련인데, 적어도 제가 지나다녀 본 아우토반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수준 높은 실력의 운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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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선을 메인으로 달리는 승용차들은 또 어떤가요? 좌우 깜빡이, 안전 거리 등등을 칼같이 지키며 달리더군요. 쌍라이트(상향등), 경적소리, 칼치기, 위협운전 등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승용차 운전자들의 운전실력들도 수준급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구요? 가장 쉬운 방법은 운전자들이 ‘slow in - fast out’이라는 운전 공식을 잘 지키느냐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captured by Google.com)
Slow in - Fast out 이란게 뭘까요? 원심력과 구심력때문에 코너를 도는 차량은 일종의 쏠림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쏠림 현상은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자칫 차가 전복되거나 주행 선로를 이탈하는 위험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정감 있는 코너링을 위해서는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속력을 줄여야 하고, 코너를 빠져 나올 때 속력를 높여줘야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너의 정점에서 부터 속력을 높여가는 것이죠. 실제 운전을 할 때는 코너링 전에 악셀레이터를 떼서 차의 속력을 떨어뜨린 후, 코너를 도는 과정에서 오히려 악셀을 밟아가며 속력을 높여가야 합니다. 이것이 원심력을 이겨내는 실제 방안이죠.
여러분도 이런 운전 습관을 갖고 계신지요? 대개의 여성 운전자분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시더군요. 여성 분들께 물어보면 오히려 코너링에 들어서고 나서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정말 위험하지요. 코너링을 돌 때 속력을 떨어뜨리면 (대개 그렇지는 않지만) 흡사 차가 전복될 것 같은 상황에 처해집니다. 당연히 승차감도 안 좋지요. 쏠리는 느낌을 몸으로 받아내야 하니까요. 남자분들도 절반 정도는 잘 모르시던데.. 그래서 저는 코너링을 돌 때마다 앞 차들의 운전 습관을 체크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코너링에서 후미등이 켜지면서 속력을 줄여간다면.. 음.. 좀 경계하는 편이지요.
헌데 정말 정말 특이하게도, 독일 도로에서는 모든 운전자들이 코너링을 돌 때 철저히 slow in - fast out을 실천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와.. 할머니고 할아버지고 예외가 없었어요. slow in - fast out 뿐이겠습니까? out - in - out 이라는 스킬도 잘 구사하더군요. 물론 도로가 좀 좁은 편이라서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만, 뭐랄까.. 이 독일 운전자들의 운전에 대한 소양과 기술 수준은 분명 한국보다 한 두 단계 위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 out - in - out 은 뭐냐구요?
여러분들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계신 운전 스킬일겁니다. 바깥쪽에서 시작하여 코너의 안쪽을 지나 다시 바깥쪽으로 빠져 나오는 기술이죠. 왜 이렇게 할까요? 네, 바로 원을 크게 그리기 위해서입니다. 원을 크게 그린다는 것은, 즉 코너링을 크게 도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평평한 직선에 가까운 모양새를 그리기 때문입니다. 쩝. 이거 죄송합니다. 어쩌다 여러분께 운전 강의를 ㅋㅋ (베테랑 분들께 실례했네요. 양해 바랍니다. 이야기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ㅋ)
자, 원점으로 돌아와서..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얘기가 뭐였을까요? 네! 매너도 좋은 운전자들이 운전 스킬까지 좋더라.. 바로 이거죠. 운전 실력과 소양이 이렇게 받쳐주는데 어찌 기분이 편하지 않았겠습니까?
탄탄한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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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인가요? 이번엔 도로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아우토반이라고 해서 땜질 한 군데 없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드문드문 땜질한 흔적도 보이곤 하지만, 확실히 도로의 탄탄함이 남달랐습니다. 저도 귀국 후에 아우토반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며 알게 된 사실인데, 아우토반 도로는 하층 구조를 매우 탄탄하게 다져놓은 지반 위에 깔아둔 것이고, 그 두께 또한 일반 고속도로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아스팔트 두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까지 구성되어 있는 도로 전체를 말하는 거지요. 마치 카스테라처럼 말이죠. 진갈색의 카스테라 껍질이 아스팔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도로란 것도 몇 단계의 겹층 구조라고 합니다.
헌데 이 도로가 매우 탄탄하다는 것은 운행을 해보면 바로 느끼게 됩니다. 곡면도 그리 많지 않고, 대개는 쭉쭉 뻗어 있거나 심한 곡률이 없어 운전 시야도 좋고 직진성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죠. 그게 바로 아우토반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음푹 패인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비가 와도 웅덩이지는 곳이 없다는 것이죠. 이건 제가 직접 비오는 상황에 확인한 바인데, 게다가 배수 또한 완벽해서 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는 현상을 최대한 잡아내더군요. 김진표씨가 아우토반 운행 영상에서 외친 소리가 기억나시나요?
“물이 고여있는데가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말이죠!”
연어가 마귀에 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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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X-drive 4륜 주행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4륜은 저속에서는 알기 힘들지만 고속에서 안정성을 좀 더 느낄 수 있게 되지요. 탄탄한 도로에 성능 좋은 타이어.. 좋은 차와 좋은 도로가 만나 특유의 안정감을 뽐내더군요. 2차선에서 시속 150km 정도로 달리던 저는 조금씩 1차선을 넘보기 시작했습니다. 아.. 날씨는 왜이렇게 좋대! 상쾌한 기분이 전신을 감싸더군요. 150km/h는 어지간해서 달려보지 않는 속도였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최고로 달려본건 기껏 170km/h. 외국 친구들을 데리고 동해로 새해 첫 해돋이 구경을 가다가 시간에 늦을까봐 동해쪽 고속도로를 달린게 최고였거든요. 그리고 간혹 160km/h를 밟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밟으면 뭐합니까? 속도 줄이라고 네비게이션은 삑삑대고, 여기저기 카메라가 호심탐탐 제 주머니를 노리고..
하지만 여기 아우토반은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규정만 잘 지킨다면 말이죠. 저는 깜박이를 켜고 1차선으로 옮겨 본격적인 악셀 공력을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도로는 4차선, 전방 시야도 멀리 잘 보이는 도로에 들어섰으니까요. 차들도 비교적 띠엄띠엄 달립니다. 1차선은 텅 비고.. 2차선도 널럴하네요.
160 km/h.. 170 km/h..
이 때쯤 조수석에 있던 소심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야, 운전하고 있는 넌 잘 모르겠지만, 몸이 뒤로 쏠리는게 느껴진다”
180 km/h.. 이미 저의 최고 속도는 깬지 오래입니다. 190 km/h.. RPM이 슬슬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200 km/h..
드디어 200! 제 평생 관심도 없던 시속 200km를 밟은거지요. 오… 이건 여행 계획에 없었던 건데… (전 아우토반에서도 그냥 정속주행 + 연비운전을 하려 했습니다) 저도 남자인가요? 200km를 찍은 쾌감이 차분하게 다가왔습니다. 왜 차분했냐고요? 아우토반에서 달리는 것은 ‘광란’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그냥 매너 지킬거 다 지키고 차의 성능과 주변 여건이 충분할 때 지를 뿐이니까요!
다시 한 번 기록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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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시속 200을 찍었던 도로는 약간 능선을 타고 다니는 코스였습니다. 도로는 낮은 언덕배기들을 몇 개 지나는 코스였는데 그 길에서 200km/h를 찍었던 것이죠. 저는 200 고지를 밟아봤다는 만족감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마지막 언덕을 넘고 나니 정말 완벽한 직진 코스가 갑자기 나타난 것입니다. 정말 정말 완벽한 직진이었어요. 그리고 1차선은 텅 비었습니다. 몇 km 앞이 훤히 보이는데 차 한대도 없이 뻗어있는 1차선! 그리고 2차선에 달리는 차들은 띠엄띠엄 자신들만의 속도를 준수하면 추월차선은 쳐다도 보지 않으면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아…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맞딱뜨릴 수 있는 위험요소는 뭐지? 차도 많지 않고, 1차선은 텅 빈 채 직진으로 뻗어있고, 차는 BMW!, 도로도 완벽, 운전자들도 매너 만땅.. 어디선가 튀어 나올 차, 사람, 동물, 물건 그 어떤 것도 없는 조건에서 오직 불안한 것은 타이어! 펑크가 나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현실적으로 이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었습니다. 순간 타이거 제원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BMW에 장착 되어 있으니 아무 문제 없겠단 생각이었습니다. 속도계가 260km/h 까지 있으니 그 정도는 버틸 수 있는 타이어겠지.. !
저는 다시 악셀을 밟았습니다. 이번엔 차근히 밟는게 아니었지요.
“이번엔 좀 폭풍 질주 할련다.”
폭발적인 변속을 기대하며 풀악셀…
정말 운전자인 저도 몸이 뒤로 젓혀질 판이었습니다.
150 km/h.. 160 km/h.. 170 km/h.. 180 km/h..
순시간에 급 180으로 끌어 올린 후
190 km/h.. 200 km/h..
슬슬 디젤엔진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집니다. 참고로.. 이때는 일반 디젤유를 사용했고, 나중에 고급 디젤유를 써 봤는데 이거 정말 대박이더군요..
210 km/h.. 220 km/h..
친구가 슬슬 “으… “ 하고 신음소리를 내더군요. 운전은 제가 하는데.. ㅋㅋ
그리고 뒤에서 자고 있던 운전 베테랑 친구3이 깨어났습니다.
“뭐냐? 뭔 운전이 이렇게 터프해..?”
음… 친구가 깨버릴 정도로 박력있었나요? 200고지를 넘어서 220고지까지 급상승 할때 우리의 친구 BMW는 준마에서 야수로 변해버렸습니다. 차가 쉬 흔들림 없이 정말 속력 그 하나만을 위해 모든 퍼포먼스를 뽑아냈지요.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이 차는 240km/h에 리미트가 걸려있었습니다. 더 밟았다고 하더라도 240에서 멈췄을테니.. 전 어지간한 속력은 다 내 본것이었죠. 일반 디젤유, 컴포트 모드로 달린 것인데, 만약 고급 디젤유와 스포츠 모드로 달렸다면 또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의 170km/h기록을 독일에서 220km/h로 갈아치우며 든 느낌은 오히려 편안하고 안전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지요. 이런 도로에서라면 포르쉐로 달릴만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왠지 한국에서 목숨걸고 과태료 걸고 질주하는 청춘들이 안타까웠어요. 그냥 우리에게도 이런 도로, 그리고 이런 도로를 운영할 수 있을만큼의 기술, 자본, 운전 문화가 저별에 깔려있었다면.. 이렇게 편안하고 안전하며 재미있게 속력을 맘껏 만끽할 수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제가 만약 한국에서 포르쉐를 몰던 사람이라면.. 그냥 처분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적어도 한국 도로는 아직 포르쉐가 달릴만한 곳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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