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일까 G1일까?

G2일까 G1일까?

연어입니다. 북경 출신 여자친구와 사귀었을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과일을 챙겨먹는 여자 친구의 건강한(?) 식습관 때문에 데이트를 마치고 바래다 줄 때 이마트에 들러 과일을 잔뜩 사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헌데 가만히 보니 한 겨울에 수박을 찾는다거나, 한 여름에 귤을 찾는 식이라서 어릴 때부터 ‘제철 과일을 먹어야 좋다’는 교육을 받아온 제 눈에는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질만 했습니다. 게다가 바나나나 파인애플 같은 수입 과일이면 모를까 한국에서 재배한 과일의 경우 아무리 하우스 재배가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한 겨울의 수박이나 한 여름의 귤 같은게 제 눈엔 맛있어 보일리가 없지요. 그런데로 불구하고 가격까지 더 비싸니 왜 굳이 더 싱싱하고 가격도 저렴한 제철 과일을 사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헌데 여친의 대답이 걸작이더군요.

“우리 중국에 제철 과일이란게 어디있어?”

전 이 대답을 듣고는 살짝 쇼크(?)를 먹었는데, 말 그대로 더운 남쪽부터 추운 북쪽까지.. 건조한 내륙부터 습한 해안 지방까지..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살아온 사람이기에 왠만한 과일은 계절에 구애 받지 않고 챙겨 먹을 수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세계의 중심이 중국, 그 중국의 심장이야 말로 북경이라고 뼛속 깊히 생각하고 있는 북경인 특유의 사고관을 순간적으로 엿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좋아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연인의 사이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한국 남자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중국 북경 출신의 여자가 사귀는 것이다 보니 늘 티격태격 작은 한-중 전쟁이 일어나기 일쑤였습니다.

한 번은 여자 친구가 북경에 대한 자랑을 하도 늘어놓길래.. 왠만하면 건드리지 않으려 했던 북경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읊어 주다가 대판 싸울뻔 하기도 했습니다. 전에 한 번 말씀드리적 있지만 어릴 때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넘쳐나다 보니 늘 다큐멘터리나 이런저런 서적들을 끼고 살았고, 그러다 보니 한 때 한국 고대사, 아시아 역사, 세계사 등에 대해 푹 빠져들어 나름 정사와 이면사(감춰진 역사)는 물론, 온갖 음모론 까지 넘나들었던지라 언제나 여자 친구와 한 판 겨뤄볼(?) 준비는 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긴 서로 자존심과 자긍심이 넘쳐나는 젊은 한국인과 중국인 연인이 별 것도 아닌걸로 싸우면 뭐가 좋겠냐 싶어 어지간하면 적당한 선에서 매듭을 짓곤 했지만요. 아.. 북경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란게 뭐 대단한건 아니고.. 자신이야 말로 북경 출신 오리지널 ‘한족’이라고 자처하는 여친에게 한 마디 해준게 발단이었던거지요.

“과연 북경이 진짜 한족이 만들고 키워온 도시일까?”

여기에 대한 얘기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일단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북경 출신의 여자 친구를 사귀고, 공교롭게도 그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상해로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며 중국이란 실체를 조금씩이나마 직접 경험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중국 상해에서의 경험은 ‘잠에서 깨어난 사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중국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기준점을 갖추게 된 계기가 되었던지라 이후 국제 정치나 중국과의 비즈니스 등에 대해 해석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 참.. 상해에 거주하면서 투자했던 암호자산들을 다 빼앗기게 된 경험까지 더해서 말이죠. ㅋ

오랜 경험도 아니고 깊은 통찰도 아니지만 제가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시각은 ‘제대로 까봐야 한다’입니다. 언제 부턴가 미국과 중국을 G2로 부르며 세계를 호령할 양대 강국으로 꼽고 있는데.. 그에 대한 저의 반응은 ‘정말 그럴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치로 보았을 때 한층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중국이다 보니 기존 추세대로 나간다면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 1의 패권국으로 올라선다고 보는 의견이 다수이지요. 그러다 보니 국제 정세에 어두워 임진왜란, 병자호란, 게다가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일제강점기 까지 겪어야 했던 우리로서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새롭게 떠오르는 세력, 즉 중국이 뻗치고 있는 영향력에 대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조만간 중국이 제 1의 패권국이 될, 바꿔 말하면 미국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국제 정세란 것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잊을만 하면 제기 되는 주장으로 ‘달러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비트코인이 서서히 존재감을 알릴 때도 비트코인이 달러를 대체해 나갈 것이란 주장이 널리 퍼졌었지요. 그러나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달러는 여전히 강건한 위치를 잃고 있지 않습니다. 달러가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 시기가 이제 임박하였다는 얘기가 벌써 25년 째 지속되고 있는데도 말이죠. 하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으니 언젠간 달러가 그 지위를 잃고 그저 한 국가의 화폐 수준으로 전락할 날이 올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이 여태껏 행사했던 영향력을 점점 잃어가며 그 지위를 중국에게 내준다는 생각은 적어도 제가 중국에서 생활을 해 본 이후론 싹 지운지 오래입니다.

당연히 중국은 현재 매우 강력한 나라가 되었고, 과거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언제든 세계 최강의 패권국으로 올라서도 이상하지 않은 잠재력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아직 멀었다’입니다. 이런 저런 소소한 경험만으로 거대 담론을 논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때로는 일상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종 output으로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듯해 보이는 진실을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중국은 그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계속 전진 중이죠. 그리고 미국은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을 쉬 놔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엊그제 트럼프의 ‘북미회담 보이콧’이란 기사 대문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대문만 보았을 뿐 세부적인 내용이나 여러 시사 평론들은 하나도 보지 않은 상황입니다. 왠지 이번 판이 어떻게 돌아갈런지 그냥 제 머릿 속으로만 조각을 짜보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남북 정상 회담을 지켜보았던 지난 번과 달리, 남한과 북한을 둘러싼 세계 정세를 살짝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지금으로선 설왕설래 오가는 사안들이 왠지 미국과 중국의 제 1 패권국을 둘러싼 여러 포석들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트럼프의 액션이 대한민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어느 지점에서 포지션을 잡으려 하는 것인지, 특히 주목 당사자인 북한이야말로 어느 정도의 포지션에 방점을 찍으려 하는지 슬그머니 확인해 보려는 차원처럼 느껴지는데.. 저에겐 북한 핵폐기를 시작으로 펼쳐질 많은 정세 변화가 국제 사회에서의 서열(?)을 다시금 확인해 보려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 알력의 연장 선상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의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시점에 사며 역사적인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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