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ho is @jack8831?/ Show me the money!

[NOTICE] Who is @jack8831?/ Show me the money!

연어입니다. 그리고 이름은 신진수(申進秀, 申进秀, Jinsoo Shin)입니다. 오늘은 저의 개인 계정이지만 어느 정도 공식적인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그래서 [NOTICE]라는 태그를 붙였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Kr 커뮤니티에서는 그저 ‘연어’란 이웃이지만, 스팀코인판(SteemCoinPan)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해외 유저들에게는 @jack8831이란 계정이 어떠한 사람의 것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이상한 생선 그림.. 그리고 늘 ‘Salmon.’으로 시작하는 이상한 인사. 번역기를 통해 제 글을 읽는 해외 유저에게는 제가 꽤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우선 기본적인 글은 한국인을 위해서 찰진 한국어로 적겠습니다. 번역기를 사용해 제 글을 읽는 분들로서는 글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은 어려우실 겁니다. 그래서 글의 후반부에는 번역기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쉽도록 요약된 프로필을 따로 적어 두겠습니다.

그러면 제 소개와 저의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스팀잇 활동 이력

2016년 8월 방콕(Bangkok)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스팀잇에 가입했습니다. 함께 스팀코인판의 운영을 맡고 있는 이선무(@kopasi, @leesunmoo, @stablewon)님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스팀잇 가입과 활동을 저에게 정확히 세 번 권유해 주셨고, 방콕으로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세 번째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건 뭐 삼고초려(三顧草廬)가 따로 없더군요.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나 가입 좀 해보라고 권유를 하실까… 그 때도 이선무님의 권유를 거절했다면 아마도 저는 이 자리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스팀잇 활동을 권유한 이유는 당시 애절했던 한국 커뮤니티의 상황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clayop님을 증인으로 두고 있었지만, 한국 커뮤니티는 비영어권 커뮤니티로서 냉대를 톡톡히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보려는 노력으로 크게 두 가지 제안들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 영어로 된 포스팅을 작성하여 해외 커뮤니티를 두드려 보자.
  • 재능있는 작가를 많이 영입하여 한국 커뮤니티에 활기를 불어 넣어보자.

@oldstone님의 경우에는 스팀잇 활동 초기부터 @slowwalker라는 계정을 통해 해외 유저와 소통하고 한국 문화를 알려왔습니다. 첫 번째 경우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 이선무님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려고 저의 스팀잇 입성을 추진했던 것 같습니다.

전에게 전화를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의 @jack8831 블로그를 이 잡듯이 뒤져보시면 이 내용과 앞으로 적을 모든 내용이 예전에 적어둔 글과 일치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저는 저의 계정에 사실만을 포스팅하며 일관되게 활동해왔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한국 커뮤니티에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필요하다.
  • 영어 사용에도 능하고 창조적인 포스팅을 할 줄 알지 않느냐.
  • 외국에 비해 너무 힘이 없고 활동이 위축되어 있어 답답하다.
  • 네가 예전에 블로그 활동을 했던 것처럼만 해줘라.
  • 크진 않지만 글에 대한 보상도 있으니까 재미있게 해볼만 할거다.

지금은 어떤 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인재를 꼬드기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선무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절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초라했던 한국 커뮤니티의 위상.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인적 투자와 자본 투자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부터 이선무님은 적어도 두 가지를 모두 실행하신 분입니다.

  • 꾸준히 스팀을 구매하며 스팀파워를 키워나갔고,
  • 저같은 젊은 사람과 지역 이웃들을 영입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이선무님 덕분에 스팀잇에 입성하여 ‘포스팅과 보팅을 통한 채굴’이라는 ‘충격적인’ 블록체인 환경을 목도하였고, 가입 후 한 두번의 몸빵 테스트를 거친 후 갖고 있던 주식을 일부 팔아 스팀을 매입, 스팀파워를 장착했습니다. 이쪽 판에서 힘의 대부분이 스팀파워에서 나온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제곱 보상 때문에 어지간한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힘을 쓸 수 조차 없었지만, 스팀잇 활동이 나름 재미있겠다고 생각되어 두 개의 계정을 더 만든 후 마카오와 대만에 있는 외국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제가 포스팅마다 인사글에 올리는 이 물고기 그림도 마카오에 있는 외국인 친구가 그려준 것입니다. 좀 이상한 그림이라구요? 음.. 네, 저도 처음에 이게 연어인지 고등어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게 가장 소중한 작품이고 이제는 정이 들어버린 그림입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곳 스팀잇에서 이런 저런 프로젝트와 이벤트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나는 것만 좀 적어보겠습니다.

  • 잘못된 영어 공부를 지양하고 새로운 이해 방법을 독려했습니다 (영어공부 시리즈)
  • 작가로서 뛰어난 잠재 능력을 보이는 뉴비들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뉴비 작가 소개)
  • 꾸준한 활동과 스팀파워 업에 대한 의지가 강한 10,000 SP 전후의 유저들을 독려했습니다 (일명 ‘중산층 시리즈’)

  • 서로간에 스팀 코인 지수를 예측하고 승부를 벌이는 형식의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결과를 예측한 유저에게 가장 큰 상금을, 나머지 참여자에게 짭짤한 수익을 분배했습니다)

  • 스팀을 한화(won)으로 바꾸는 것이 매우 까다롭고 비싼 수수료를 감내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불편함을 해소해 보려고 이선무님께서 스팀-원화 교환소를 운용해 보았습니다. 그 때 유동성 공급자로 참여하였습니다.

  • 이선무님의 제안으로 시작하였던 kr-market의 구조를 연구하던 중 힌트를 얻어 ‘스달깡’을 기획하고 운영해 보았습니다. 온갖 비난 속에 소위 ‘작살’이 나면서 결과적으로 ‘연어 @jack8831’라는 계정을 커뮤니티 안에 확실히 인식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선무님의 제안으로 공익과 재미를 겸한 로팀(@loteem) 프로젝트가 발촉될 때 부계정 포함해 (@jack8831계정으로 8구좌, 외국인 친구 계정으로 6구좌, 총 14구좌 2,800스팀달러 투자로 기억함, 나중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최대 지분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로팀의 최초 아이디어는 이선무님과 저의 대화에서 기인합니다. 랜덤 값을 추출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 하던 중 제가 해시태그에 대해 드렸던 질문에서 힌트를 얻어 이선무님께서 구체적인 로팀 구현에 대한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모르시는 스토리일 것입니다.

  • 증인이었던 @clayop님이 한 때 104주에 달하는 파워다운 기간에 대한 리스크를 줄여보고자 ‘스팀 마스터노드’라는 것을 기획하고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파워업을 하지 않더라도 스팀 상태로서 스팀잇 안에 묶어둘 수 있다면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는 악성 매물을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증인 자격으로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다른 증인과 재단을 통해 새로운 스팀잇 체계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큰 것 같았고, 현실적으로도 증인 보상에서 나오는 보상 중 매달 1,000스팀을 지원하며 재원을 어느 정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clayop님은 기부 형식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포스팅 수익과 이웃들의 기부를 통해 유(무)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해 보고자 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조금은 기여해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도 기부를 오래 하지는 못했습니다.

  • 호떡 이벤트를 열어 봤습니다. ‘찹쌀 호떡믹스’라는 상품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길래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습니다. 헌데 주문이 잘 못 되었는지 제 키 만큼의 높이로 큰 박스들이 배송되어 왔지요. 일부는 회사 사람들에게 뿌리고 나머지 모두 한국 커뮤니티에 호떡 이벤트를 열어 배송해 드렸습니다. 혹시 호떡 누르개가 없어서 사발 같은걸로 요리하실까봐 누르개도 구매하여 같이 보내드렸습니다. 참고로.. 집에 놔둔 제 호떡은 가족이 건강이 염려된다며 없애 버렸습니다. 정작 저는 하나도 못 먹어 봤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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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주는 못했지만 오프라인 모임에 몇 번 참여해 봤습니다. 특히 의정부 밋업이 생각납니다. 1회 때는 회사일이 너무 바빠 주말이었음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다행히 2회와 3회 때는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3회의 경우에는 제가 스달깡 사건(?)으로 뭇매를 맞고 있을 때라 홀연히 많은 분들과 건설적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기회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의정부 밋업을 통해 많은 분들의 스팀잇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확인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에외 몇 번의 번개성 밋업, 소규모 밋업에 참여는 해 보았습니다만 비교적 공식적인 밋업 성격으로서는 의정부 밋업이 가장 적합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 때 제 얼굴을 보신 분도 많으실 겁니다. 그러니 염려하시는 대로 @jack8831이라는 익명으로 계속 속에 숨어 지내지는 않았다는 것은 확인될 것입니다.

  • 오사카 일본인 스티미언 모임에 kr 유저로서 초대 되어 참가해 보았습니다. 공식적인 모임은 아니었고, 일본인 스티미언의 오사카 지부장을 맡고 있는 @miho라는 분의 초대로 오사카 번개 모임에 참여한 것입니다. 사적인 모임에 사적인 초대로 가게 되었으니 당연히 자비(自備)로 다녀왔습니다. 일본어는 거의 못하지만 다행히 @miho님이 영어 아카데미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했던 분이라서 대부분의 이웃 분들도 영어를 할 수 있더군요. 일본 분들에게 한국 특유의 ‘스팀 가즈아~’와 ‘존버’ 정신을 설파하긴 했는데.. 일본분들은 스팀잇을 투자라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 일상 기록을 남기는 블록체인형 일기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 많은 이웃 분들이 매일 새로운 포스팅 주제를 선정하고 글을 써야하는 고충을 호소하시더군요. 그래서 부담 없이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연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했던 활동중에 가장 재미를 느꼈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환상적인 글쓰기는 태어난 재능이 아니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글쓰기 방식을 어느정도 숙련하면 상당한 수준의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꽤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학문도 없지요. 그래서 한 번 시도해 봤습니다.

  • KR-FUND(@kr-fund), 일명 ‘사딸라펀드’를 기획하고 운용하는 중입니다. 스팀엔진이 출시 되었을 때 초기 참여한 몇 분의 한국 유저들이 있습니다. 그 중 이선무님이 STEEMSC라는 토큰을 발행했고, 그 장점을 눈여겨 본 제가 STEEMSC 토큰 매입을 통해 스팀 수량을 불려갈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한 FUND라는 토큰을 발행한 것입니다. 토큰 한 개가 1%의 지분을 나타낼 수 있도록 총 100개의 FUND 토큰을 발행했으며, 그 중 20개를 제가 매입했습니다. 엊그제 25개는 @null 계정을 통해 소각했으므로 총 75개의 FUND토큰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 프록시(@proxy.token)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스팀엔진을 통해 스팀파워와 연계된 토큰들이 나오는 현상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스팀파워에는 보팅파워 뿐만 아니라 증인 투표권이라는 매우 소중한 권리가 함께 있습니다. 그 전에는 하기 어려웠던 일이 토큰 시장이 열림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토큰 시장을 통해 나름의 경제를 일으켜 낼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proxy.token 계정을 만들었고, PROXY 토큰을 발행했습니다. 증인 투표에 대한 권한 위임을 받고 그 증표로서 PROXY 토큰을 배분하며 시작되는 프로젝트입니다. 말로 아무리 떠들어 봐야 증인 투표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스팀잇입니다. PROXY가 투표율 제고부터 시작하여 많은 가능성을 열여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다만, 해외 계정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팀코인판 같은 공간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조만간 스팀코인판에 국내외 유저들 사이에 프록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있을 것입니다.

  • CU 코인을 발행하고 @curating 계정을 통해 작지만 newbie 보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과거 짱짱맨(jjangjjangman) 프로젝트가 큰 일을 하고 서비스를 멈추게 되어 비슷한 컨셉의 보팅 지원 계정을 운영해 보는 것입니다.

  • 스팀코인판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상이 개별적인 포스팅과 별개로 제가 이 스팀잇 한국 커뮤니티 공간에서 활동했던 소소한 이력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jack8831에서 벗어난 제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가겠습니다.


■ 약 6년간 펀드매니저로서 활동하다

펀드매니저 경력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저의 경력중 스팀코인판의 운영에 가장 마음 든든하고 보실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4월 부터 2015년 11월까지 모 투자자문 회사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했습니다. 펀드매니저의 공식 명칭은 ‘자산운용전문인력(資産運用專門人力, Fundmanager) 입니다. 이름이 매번 바뀌기는 합니다만, 제가 그 자격증을 취득할 때의 공식명칭은 그러했습니다.

펀드매니저라는 것을 어렵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펀드’라는 것은 다수의 계정으로 부터 자금을 받은 ‘하나의’ 계정을 말합니다. 그 계정을 전략 운용하는 책임을 맡습니다. 옛 선배들은 투자회사의 직원으로서 교육 수료를 통해 받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런거 얄짤 없습니다. 시험을 봐야하고 붙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산운용전문인력’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을 투자회사에서 고용을 해줘야 합니다. 시험만 붙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죠. 결국 시험에 붙고, 투자회사에 취업이 되어야 비로서 정식 ‘펀드매니저’가 되는 것입니다.

펀드매니저가 되면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던가?)에 정식 등록을 해야합니다. 투자 회사가 되기 위한 법인을 2010년 4월에 설립했고, 자산운용인력과 자본금, 기타 여러 요건을 확인받아 정식 투자회사로 인가를 받습니다. ‘투자회사’라는 명칭도 그때부터 쓸 수 있고, 운용인력 등록도 그 즈음부터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저의 실제 공식적인 펀드매니저 이력은 2010년 6월이나 8월 사이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금감원(금융위, 금융협회)에 과거 운용인력도 조회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역만 조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조회해 보시려면 제 주민번호나 생년월일도 까라는 얘기인데, 그래도 꼭 봐야겠다면 어떻게든 명단을 찾아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요지는 적어도 투자에 관한한 아마추어라고 할 수는 없으며, 나름대로 ‘거래 철학’이란 것이 서 있다는 것입니다. 거래 전략, 원칙, 방법, 베팅론 등은 체득될 대로 체득되어 있고,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일반인에 비해서 수익과 손실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사람은 대부분 시장에서의 수익과 손실을 ‘현실의 가치’로 따져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300만원쯤 잃으면 ‘한 달치 월급’을 날렸다고 생각하고, 3000만원 쯤 잃으면 ‘차 한대’ 값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3억원 쯤 잃으면? 집 한채 또는 전세값이 왔다갔다 한 것 같지요? 프로 트레이더에겐 그런거 없습니다. 그런 마인드로 이 시장에 덤볐다가는 심적으로 못 버텨내니까요.

A라는 사람이 1천만원을 잃고, B라는 사람이 10억원을 잃었다면 대부분 B라는 사람이 안타깝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같은 사람은 이런걸 묻습니다. 예를 들면, ‘베팅에 들어간 금액과 원금은 얼마였습니까?’

A의 원금이 5천만원인데 한 번의 베팅에 1천만원을 잃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1회의 베팅에 자산의 20%가 날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B의 원금이 500억원 인데 한 번의 베팅으로 10억원을 날렸다면 2%의 자산을 날린 것입니다. 시장에서 우위가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해 시도했고, 그 한 번의 베팅에 의해 2%의 자금을 날렸다면 이건 그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셈법은 투자의 영역이니 더 이상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요지는 제 개인적으로 블록체인과 코인 시장에 뛰어들게 된 가장 큰 동인이 투자와 거래(trade) 영역에서의 경험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저는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출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금융인 출신으로서의 관점으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금융회사 근무시절 가장 주력으로 했던 일은 거래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시스템트레이딩(알고리즘 트레이딩)을 주력으로 하는 투자회사에 있었고, 회사는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략들이 꾸준히 필요했습니다. 이 업무를 맡게 된 이유는 잠시 후 제 인생 경력의 다른 부분, 정치권 활동까지 얘기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핵심은 ‘시장에서 승리하는 근본 원리를 활용하는 전략 개발’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 금융회사 근무 이력중 6개월은 중국 상해(上海)로의 파견활동이 차지합니다. 원래 3년 정도 있기로 했는데 중국의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급작스런 발표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해외 투자자들을 장려하던 정책과 약속들이 한 순간에 바뀌는 사건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제 당신들이 필요없으니 꺼져주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의 몇몇 기업들이 어렵사리 중국 상해에 진출하여 혁신적인 성과를 올리며 기술과 노하우를 뿌리 내렸는데 그 결실들을 크게 맺기도 전에 추방 당하다시피 해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에 중국 거래소에서만 볼 수 있던 라이트코인에 대한 호기심에.. 뭐 그 다음 이야기는 잘 아실겁니다.

투자금융회사의 직원이자 운용인력 활동을 그만둔 것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기 때문입니다. 돈의 세계는 참으로 무서워서 오래 일하면 지치고 몸이 망가지기 십상입니다. 2015년 가을에 한국으로 돌아와 일주일 정도의 휴가를 내었고, 마침 한국에 단풍 여행을 온 외국 친구들과 신나게 한국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때 삘(?)을 좀 받아서 사표를 던졌고, 왠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룰루랄라 살 수 있을 것 같아 에어비엔비 호스트 생활을 시작해 보기도 했습니다. 친구의 부탁성 러브콜 때문에 한 달 준비하고, 한 달 쯤 하자마자 접긴 했지만.. 제게서 게스트하우스를 인계받은 호스트가 아직 잘 운영하는 듯해서 후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게스트로 온 전 세계 친구들과 한국 여행 가이드도 하면 신나게 지냈던 것 같네요. 짜장면 먹어보고 싶다고 하면 탕수육도 사주곤 했습니다. 당연히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았을 겁니다. 아마도 금융권에서 지쳤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달래보고 싶었나 봅니다.


■ 정치권에서 활동하다

정치권에서 활동했던 이력은 사실 세세히 밝히기가 좀 꺼려집니다. 그냥 활동했다는 정도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제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나 신념과 그닥 맞지 않는 쪽에서 일한 것도 이유겠고, 정치와 관련된 입장은 개개인별로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권이라는 선입관과 매우 다르게 굉장히 배울 것도 많고 매일 매일 느끼는 바가 큽니다. 똑똑한 인재들도 많고 늘 할 것이 많지요.

정치 영역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게 관여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맡았던 업무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전략 그리고 글쓰기였습니다. 정치권도 뭐.. 전략이란게 있습니다. 그리고 실무 측면에서 글을 많이 다루게 됩니다. 분명 정치권은 글을 많이 쓰는 곳이고, 모든 메시지와 발언들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않는 선명한 정치 철학까지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한 번 그 일을 맡으면 그 사람이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이 맡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 생활이 없다시피 했고 쉬어도 쉬는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정치인이 되거나 정치를 통해 어떤 자아실현을 하고픈 욕구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그런 고충까지 참아가면서 버티는 것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인정받고 책임이 강해질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곳이었기 때문에 평소의 관심 영역이었던 투자의 세계로 옮겨가면서 공식적인 업무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 쌓은 인맥은 제게 주어진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합니다.


■ 글과 관련된 활동들

제 전공은 공학쪽이었지만 저의 사회 활동의 대부분 글과 인연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마치 지금 여러분과의 인연이 @jack8831이라는 계정의 포스팅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죠.

이선무님과의 만남도 어찌 보면 글이 매개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게 2001년 초의 일이었고, 벌써 18년이 넘은 인연을 이어온 것이네요. 이선무님은 저의 글재주를 가장 먼저 알아봐준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연어’를 테마로 한 글을 한 편 썼었고, ‘이선무’라는 분이 만약 제 글이 향후 저작권이나 글의 선후에 관련된 문제에 휘말릴 경우 명백한 창작글이며 최초의 글임을 증명하겠다고 나서 주었습니다. (그 땐 블록체인을 통한 증명도 없던 시절이지요) 어쨌든 제 글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고, 이런 대우를 해 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선무님은 막 사회에 뛰어든 저에게 작가가 되기를 권유하였고, 실제 작가가 되기위한 일련의 과정으로서 코디네이터를 소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작가’라는 타이틀이 갖는 사회에서의 유용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작가’라고 하고 살면 되니까요. 그런데 중간에 제가 포기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는 나중에 스판이 아닌 스팀잇에서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후에도 e-book이라든가 출판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지인들로 부터 책 출판에 관한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별로 관심은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팀잇에서는 초기에 몇 십원, 몇 백원의 글보상에 아둥바둥 한 적도 있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지요)

글이란 것은 상당한 힘을 가집니다. 우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 비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적다는 얘기입니다. 글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만 잘하는 누군가에게는 되려 경계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글을 잘 쓰는 재주는 사람의 마음을 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돋보일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글을 잘 쓰면 대개는 누군가가 내게 먼저 문을 두드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많은 소개를 받기도 합니다. 제 인생의 여정은 그렇게 채워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무적으로 얘기하자면 글쓰기와 관련해 프로라면 프로라고 할 수 있고, 아마추어라면 아마추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제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책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신진수’라는 작가로서의 이름은 없습니다만 어느 코너 어느 쪽에 가면 저의 타이핑의 통해 세상에 나온 글들이 있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온갖 글을 다 써본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든건 역시나 연설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옛시절의 최고 문장가는 격문(檄文)을 쓰고, 현 시대의 최고 문장가는 연설문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연설문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인터뷰 글과 기사글도 많이 써본 것 같습니다.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기자의 이름으로 나간 기사들 중에 속칭 ‘그대로 받아먹는’글들도 많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기자분들이 발로 뛰고 직접 살펴보며 고민해서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관련 내용을 잘 아는 사람으로 부터 글을 그대로 받아다가 사용합니다. 자료가 아니라 글 그 자체를 받아 쓴다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 또한 저의 ‘작품’이라고 본다면 인터넷 상에 저의 작품수는 더 많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글 좀 쓴다는 소문이 나면 인생이 피곤해지기도 합니다. 글과 관련된 별의 별 부탁을 다 받게 되고, 심지어 이력서나 박사 논문을 손봐달리는 부탁도 많았습니다. 프로의 글쓰기와 아마추어의 글쓰기에 차이를 둔다면 수익의 여부가 아닌 ‘쓰고 싶은 글만 쓰느냐 / 쓰기 싫어도 최선을 다해 쓸 수 있느냐’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절했던 가장 큰 이유는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매일 빠짐없이 ‘써야하는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익히고 알게된 것들이 있습니다. 100% 남으로 빙의 되어 써야할 때 갖춰야 할 것, 글을 쓰는데 있어 재능이 차지하는 비중 등등 글과 관련되어 프로페셔널하게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일 재미있게 글쓰며 활동했던 곳이 스팀잇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타가 나든말든 한 방에 쓸거 쓰고 산 곳이기도 합니다. 유일하게 힘든 점이 있었다면 스팀잇 활동을 하는 기간 동안에 저의 스팀잇 활동을 동료들한테는 숨기고 살아야 했다는 점입니다. 스팀잇 안에서는 저를 공개해 가면서, 오히려 밖에서는 스팀잇 활동을 가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팀잇 안에서 저를 ‘제대로’ 공개하라고 하니…


■ 내 인생의 화두 : ‘승자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정치와 투자의 영역에서 활동했던 기간을 합치면 근 10년은 될 것입니다. 전혀 별개로 보이는 두 영역을 오갔던 이력이 참으로 이상해 보이실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늘 궁금해 하고 연구해 보고 싶었던 화두가 바로 ‘승자’에 대한 호기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가 펀드매니저로서 운용 전략을 개발하던 시절의 핵심이 ‘시장에서 승리하는 전략’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최종적으로 승자가 되느냐, 어떻게 하면 승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측면에서 봤을 때 정치와 투자(거래)의 영역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습니다.

수많은 활동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슈퍼 트레이더가 나오고 대통령이 나옵니다. 이들이 오랜 기간의 어려움과 파고를 넘고 승리를 일구어 낼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그렇게 깨닫게 된 부분을 실전으로 활용하거나 목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정치권에서의 러브콜, 그리고 금융권으로의 탈출(?).. 이 모두 어쩌면 제가 확인해 보고픈 ‘승자로 나아가는 길’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권에서 일할 때 참으로 적성에도 맞고 재미도 있었지만, 그래도 투자의 세계로 뛰쳐 나온건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습성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치 권력을 잡기 보다는 금융 영역에서 투자로 돈 좀 벌어 탱자탱자 사는 것을 더 바랬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좋은 결과까지 이어진다면 최적인 곳이 ‘투자’ 영역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블록체인을 처음 이해하고 비트코인이 거래되는 시장을 보았을 때 ‘투자와 매매’의 관점에서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혹시 제가 엔지니어로 살고 있었거나 전산에 매우 능한 능력자였다면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시작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시 스팀잇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되다.

아까 잠시나마 엔어비앤비 호스팅 활동을 맛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괜찮은 호스트가 되어 외국인 게스트들과 교류하며 살아보고자 했었는데, 모 법인의 전문 경영인이 된 가장 친한 친구가 거래소 상장(上場)을 목표로 딱 3년만 일해보자고 권유하여 투자 손해를 감수하고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전혀 해보지 않은 제조업 기반의 영역이있고, 업무 또한 해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익히며 적응하긴 했지만 늘 서울권에서 활동하던 생활에서 본격적인 지방 활동을 하게 되니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유능하면서 일 중독자에 가깝기까지한 친구 덕분에 할 일은 산더미 같았고, 유일한 탈출구가 스팀잇 활동, 코인 투자, 그리고 해외로의 여행이었습니다. 이중에 스팀잇 활동과 코인투자는 친구에게는 거의 비밀이다시피 했습니다. 한 번은 친구가 잠꼬대로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24시간 일에 올인하는 녀석 앞에서 한가로이(?) 스팀잇 활동이나 보여줄 순 없었습니다. 물론 스팀잇 활동은 나름대로 매우 치열한 것이지만 그런 사정을 친구가 알아줄 리는 없겠죠. 한 번은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핸드폰 메모장에 스팀잇 글을 써두다가 걸릴 뻔 하기도 했습니다. 최대의 위기였는데 무사히 잘(?) 넘겼습니다.

2019년이 되면서 드디어 3년이란 약속을 지킬 수 있었고, 대박이 나든 쪽빡을 차든 3년이 되면 뛰쳐나온다는 결심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인수인계 과정 때문에 1달을 더 다녔으니 정확히는 3년 1개월이었네요. 그쪽 일을 그만두고 몇 일간 정말 밥은 먹는둥 마는둥 잠만 잤던거 같고.. 드디어 6개월에 가까운 공백을 깨고 스팀잇으로 컴백을 했습니다.

제가 그쪽 일을 그만둘 때 스스로 결심했던 바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영혼을 팔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너무 심각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죠. 비유하자면.. 삼성에 다니면서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부회장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대개 자신이 속한 영역으로 부터 어떤 이권에 매이게 되면 머리 아픈 일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하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는 것이죠. 명색이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사람인데… 저도 젊을 때야 열정, 경험, 책임감 등등의 이유로 제 자신을 옭아맬 수 있었겠지만 앞으로 남은 여생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렇게 하기는 참으로 싫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은 제 자신을 어떤 소속에 감금(?)시키는 상황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원년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첫 한 달 정도는 무조건 쉬려고 했고, 상반기에는 그동안 따라잡지 못한 크립토 세계의 흐름을 찾아보고 투자에 집중하며 스팀잇에서 글로 교류하며 살려고 했습니다. 올 하반기는 본격적인 작가로 한 번 등단해 보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헌데 스팀코인판을 만들며 뛰어든 지금으로선 이게 제 계획대로나 될런지 잘 모르겠군요.


■ 스티미언으로서의 연어가 스팀코인판을 바라보는 심정

어쩌다 보니 @jack8831이란 계정과 연어라는 필명이 스팀코인판에 대한 관심을 통해 한국 커뮤니티라는 울타리를 넘고 말았습니다. 비교적 조용히 활동할 수 있었던 상황은 이제 물건너 갔다고 봐야겠죠. 운용진 겸 설립자의 한 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제 @jack8831에 남기는 제 글은 번역의 대상이 되고 분석의 대상이 될런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포스팅을 통해 스팀코인판을 둘러싼 여러 논쟁과 관련하여 두어 가지의 변명을 남겨볼까 합니다.

제가 다니던 투자회사에서 한국 최초로 옵션상품 운용 펀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인이 나오기 전까지 옵션은 명실상부 최고로 화끈한 거래 대상이었고,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하며 왠지 겁을 먹게 하는 상품이기도 했습니다. 핵심은 시스템을 통해 최대한 리스크를 관리하고 운용해 나가는데 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운용 대산이 옵션 상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 많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모펀드가 결정되었고, 1차 시범으로서 100억 펀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펀딩이 시작되자 마자 저희 투자 회사의 오너가 바로 50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투자 설명회를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지요.

제가 절반인 50억을 담급니다. 여러분이 힘들다면 저도 힘들겠지요. 손익의 비율은 같겠지만 절대적인 금액으로 보면 제가 가장 클 것입니다. 제가 잘 된다면 여러분도 잘 된다는 뜻입니다. 부디 흔들리지 마시고 긴 여정을 잘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옆에서 이 말을 들으며 ‘겁나게’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임감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잘들 아시겠지만.. 이 스팀코인판을 시작할 때 사전 판매(교환) 때 제 돈부터 담궜습니다. 가장 먼저 산 유저 중에 한 명이고, 가장 많이 샀습니다. 스팀을 비롯해 여기저기 많이들 묶여있어 더 못산게 살짝 후회되긴 합니다. 어쨌든 제 돈으로 제가 산 SCT 토큰들입니다. 급은 다르지만 이를 통해 예전 회사 오너분의 메시지 같은 것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이선무님과 인연을 맺을 즈음, 주변에 이선무님과 비슷한 부류의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선무님을 나름 선택(?)한 것은 그 분이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모 경제신문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일반적인 금융권 영업맨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영업맨들이 고객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건 현명하지 못하다. 고객을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고객의 재산을 사랑해줘야 한다. 그래야 고객은 자신의 재산을 키우는데 집중할 수 있고 그 역할의 파트너로서 당신을 찾을 것이다.

저나 이선무님이나 이런저런 비판에 시달리더라도 크게 개의치는 않습니다. 물론 답답하고 짜증도 나겠지요. 저희도 사람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상황은 마치 위에서 ‘고객’이 아닌 ‘고객의 자산’을 바라봐야 하는 입장과 같다고 봅니다. 물론 투자자이면서도 스팀코인판의 이웃인 여러분을 하나 하나 바라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은 스팀코인판에 합류한 여러분의 활동이 투자 측면에서 볼 때도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참여자 분들의 자산 증대에 스팀코인판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함께 일하던 정치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오해 받고 욕을 바가지로 먹어가면까지 이렇게 해야겠냐고 말이죠. 그분의 대답은 심플했습니다. 다 우리 국민이다.

무언가를 이끌고 가려한다면 이 정도 마인드는 갖춰야 하나 봅니다.


■ 스팀코인판의 의미

스팀코인판의 컨셉은 명확합니다. 스팀잇에서 태어났지만 블록체인과 크립토 영역에 대한 관심을 따로 모아본 스팀엔진 기반의 커뮤니티! 그런데 이 스팀코인판에 대한 관심이 한국을 넘어 해외로 뻗어가게 되면 우리는 정말 큰 주제글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바로..

  • STC 얼라이언스 문제
  • PROXY를 통한 증인 투표율 제고 문제

등등입니다. 이것은 마치 ‘재단, 증인, 일반 사용자’로 구성된 스팀잇 구조에서 재단의 역할과 증인의 역할에 대한 발전을 논의하고 실행해 볼 수 있는 진정한 커뮤니티가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스팀코인판에 대해 가장 크게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물론 기존의 스팀잇에서 못할 바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껏 안 되지 않았습니까? 모두들 의견도 많고 발언도 많지만 안 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네드와 재단은 볼 장 다 본셈이고, 증인들을 둘러싼 온갖 불평과 억울함은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왜 입니까? 제대로 논의가 되지 못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대로 논의가 되지 못했습니까? 글쎄요.. 아마도 스팀코인판이 나오기 전에는 이러한 논의를 관심 불러일으킬 만한 공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팀잇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팀코인판의 지금의 아이덴터티를 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다면, 이 곳은 단순히 SCT 토큰 채굴과 포스팅의 공간을 넘어 스팀잇의 핵심 구조를 단단하게 다져나가기 위한 커뮤니티 논의의 장일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부분까지 관심을 갖고 일을 이루어 가고자 합니다.

@proxy.token을 통해 PROXY 토큰을 발행해 두었고, 현재 약 250만 스팀파워에 해당하는 투표권 위임을 받으며 PROXY 토큰을 분배해 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커뮤니티를 넘어 이러한 공론의 장을 만들기에는 저의 역량과 영향력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기존의 스팀잇 공간에서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모두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 덕분이지요.


■ 우리, 제대로 한 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찌보면 한국 커뮤니티는 지금껏 너무 지협적인 문제로 서로 힘을 뺀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 중요한 내용들이었죠. 그러나 이제 스팀엔진 기반의 SCOT 서비스가 오픈되었고, 언젠가 SMT가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행동하는 모습이 더욱 신뢰를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ned를 비판하더라도 대안을 보여주면서 비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단을 비판하든 스팀잇의 기존 구조를 비판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SCOT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토대로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논쟁은 검증의 일환이 될 수도 있으니 필요하고 장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논쟁에 매몰되어 시시비비를 가리기에는 SCOT의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ned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드는 나름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란 것이 단기적으로는 욕먹지 않을 수준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 욕먹지 않을 일을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는 것이 아닌,
  •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해 놓는 리더..

아마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스팀코인판을 이런 모습으로 채워 놓고 싶은데 솔직히 능력도 부족하고 여러모로 한계에 많이 부딪힙니다.


■ Show Me The Money !!

  • 제리 맥과이어에게 말합니다.
  • 내가 하는 얘기를 따라해 봐.
  • “Show me the money”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친구가 내뱉는 ‘show me the money’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번역으로 나타낼 수 없는 이 문구는 지금에 와서 보니 정말 큰 의미를 지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show me the money’의 다음 문장도 그 못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네요. ‘I love black people’

https://www.youtube.com/watch?v=_9hpiKb3KsM

  • Show me the money
  • I love Steemian & Steemcoinpanese

생각하며 관심을 둔다면 좋은 성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상 저에 대한 자기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글이 왜 이렇게 기냐고 불평하신다면 저로선 어떤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짧막한 프로필 몇 줄로 얘기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해 검증해 보고 싶다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알고 또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팀코인판의 출범으로 스팀잇 밖에 있는 신진수라는 사람의 프로필과 스팀잇 안에서 활동한 @jack8831이란 계정을 매칭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 그렇게 따라 본겁니다. 물론 엊그제 스팀피플에 등록도 해 두었지요. 올 3월에 국민/롯데/농협 3개 카드사와의 5년 가까운 소송끝에 일부 승소를 하여 소정의 보상금이 입금되었습니다. 소송의 발단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관리 부실이었죠. 개인 정보를 둘러싼 저의 양쪽 상황이 참으로 공교롭습니다.

이제 아무리 건전하게 활동하더라도 익명의 세상에서만 살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개인적으로 블록체인에 대한 기대 중 하나를 접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팀잇은 서로를 신뢰하기 쉽지 않은 익명의 계정들이 모여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커뮤니티였는데 적어도 스팀코인판의 운영진 자격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길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충분히 납득할만한 의견이니 그 또한 따라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jack8831이란 익명의 계정으로 그저 현실의 제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로 살았다고 오해받는 것만은 거부하고 싶습니다. 오늘 밝힌 저의 이력과 3년 동안의 포스팅 내용을 맞춰보신다면, 둘 다 진실이거나 둘 다 짜고 친 소설이거나 둘 중 하나임은 확실하겠지요. 적어도 저를 검증해 보겠다고 하신다면 지금의 이 긴 글을 다 읽어보실것, 그 다음에 3년 간의 모든 포스팅을 다 뒤져가며 내용을 맞춰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로서 할 수 있는 요구 사항은 그 정도겠네요.

다시 한 번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운영자 @jack8831의 프로필 (번역기 작업이 적합하도록 간단명료하게 작성합니다)

  • 이름: 신진수 (申進秀, 申进秀, Jinsoo Shin)

  • 남자. 서울 출생. 대한민국 내 거주

  • 스팀잇 내 주요 활동 : kr community, KR-FUND(@kr-fund), PROXY(@proxy.token) https://steemit.com/steemit/@proxy.token/please-join-us-to-raise-the-low-voter-turnout-on-electing-witness Curating supporter(@curating)

  • 주요 경력 : Fundmanager (2010년 4월 ~ 2015년 11월)

  • 스팀코인판(SteemCoinpan) 설립자 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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