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ν•˜λ‚˜μ˜ λ―Όμ‘±, ν•˜λ‚˜μ˜ μŠ€ν‹°λ―Έμ–Έ

연어입니다. 예전에 중국 여자친구와 대만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참 마음이 답답하고 일도 잘 안 풀리던 터에 왠일로 여친이 대만으로 여행을 가자고 졸라대더군요. 지금과 달리 뭔가 마음이 후련하지 않을 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괴롭다고 술을 마셔도 정작 술이 깨면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기분 좀 내겠다고 한동안 여행을 다녀와 봐야 다시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 해야할 상황이라면 그런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서였죠. 헌데 뜬금없이 글을 써야하는 일이 하나 생겼고, 이게 얼떨결에 아르바이트가 되어 본의 아니게 꽁돈같은 여비가 마련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상황반 타의반으로 대만행 티켓을 끊으려 하는데.. 왠걸? 여친의 비자 문제 때문에 처음 계획보다 일정을 한 주 정도 미뤄야 하더군요. 무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저와 달리 북경 출신의 중국이었던 여친은 대만을 가기 위해 본국으로 비자 신청을 해야했고, 발급 후 한국으로의 배송 일정이 너무 아슬아슬했던지라 부득이 일정에 여유를 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친과는 종종 서로 자신의 나라가 부럽지 않냐고 장난삼아 티격태격 하곤 했는데, 이 때 제가 장난 삼아 한 얘기에 여친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좋지? 대만도 비자 없이 갈 수 있고 말이야~~” “우리 중국이 얼마나 좋은데? 난 북한도 그냥 갈 수 있거든! 오빠는 갈 수 있어?”

저는 이 얘기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건 뭐.. 비자 좀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북한 땅을 디디려고 했다가는 어떤 위협과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제 외국 친구들은 한국인이 누리는 대한민국 여권의 위력을 매우 부러워 합니다. 대한민국 여권은 언제나 전세계 TOP 5에 들 정도로 해외를 다닐 때 무비자 등의 혜택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는 싱가포르와 공동으로 세계에서 가장 여향력 있는 여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 가까운 북한땅조차 밟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저는 순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평소 언어에 관심이 많던 저는 대만이 어떤 성격의 중국어를 쓰는지, (엄밀히 말하면 북경어가 따로 있긴 합니다만) 표준어를 쓰는 여친과 대만 친구들이 큰 무리 없이 소통이 가능할지 등이 자못 궁금했었습니다. 헌데 약간의 표현 방식과 단어 선택에 차이만 있을 뿐 옆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정말 중국 대륙과 대만은 하나의 언어를 쓰는 같은 뿌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죠. (물론 중국 대륙과 대만의 관계나 역사를 파고 들어가면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닐겁니다)

얼마전 남북 두 정상이 도보다리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방송된 것은 잘 아실겁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힐링될 듯 푸르른 녹음과 지저귀는 새소리에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그 보다 더 심금을 울렸던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아무 불편함 없이 서로의 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다는 점이겠지요. 여타 외국인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마치 제가 중국과 대만 친구들이 서로 격이 없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본 것 같은 잔잔한 감회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추구하는 이상도 다르고 생활하는 환경도 다르지만 그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마음을 한데 모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요새 이런저런 논란을 중심으로 많은 이웃분들이 서로 마음이 상한채 활동을 지속해 오셨었나 봅니다. 헌데 오늘 보니 조금씩 마음들을 추스리고 접점을 찾으려 나서는 모습에 다시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네요. 부디 한 발자욱씩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리 못 풀 문제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린 지금껏 그렇게 밀고 땡기고 반복해 왔는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내일 친구들과 함께 홍콩으로 출국합니다. 급하게 잡힌 일정인데.. 어쨌든 홍콩과 마카오를 함께 다녀올 예정입니다. 간만에 마카오에 살고 있는 스팀잇 이웃 양양님도 잠깐 만나고 올 예정인데.. 일정이 너무 빠듯하여 차 한잔 마실 시간이나 있을까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먼 곳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지요. 친구들과 여행도 잘하고, 현지 친구도 잘 만나고, 잭팟도 팍팍 터트리고 오겠습니다. (마카오에 가는 길이니 잠깐 짬을 내어.. ㅋ) 요새 핸폰으로 글 쓰는건 도가 트고 있으니 시간 되는대로 소식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단상] 하나의 민족, 하나의 스티미언

λ‘œνŒ€, 고팍슀, 그리고 1μ–΅ μƒκΈˆ

연어입니다. 간만에 빨래방에서 글을 써봅니다. 요즘은 피씨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다보니 빨래방이라고 딱히 불편한건 없네요.아까 저녁을 함께 먹던 후배 동료가 제게 묻더군요.

“혹시 아직도 군번 외우고 계세요?”

이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껏 수많은 숫자를 외우고 또 잊으며 살아왔지만 이 넘의 10자리 숫자는 20년이 넘었는데도 도통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물론 제게 질문을 던진 후배도 마찬가지더군요. 아마도 블록체인은 이미 우리 자신에게 있었거나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생체기록용으로 최초 개발해 두었던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로 넘어오는 자정.. 왠일로 제가 로팀 당첨자가 되었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13자리 숫자를 맞춰야 하는 8천9백분의 1인 당첨 확률을 뚫고 말입니다. 로팀은 이미 커뮤니티의 발전 기금 조성 명목으로 일정 부분을 떼어 두기 때문에 굳이 배당금을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의 기분을 놀래켜주는 행운의 당첨금인 것이죠. 한동안 요걸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고민끝에 새로운 거래소 계정을 하나 터서 의미심장한 가격에 매물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옵션은 아래와 같습니다.

  • 고팍스(GoPax) 계정
  • 스팀달러 25만원 가격 매도 주문

공시된 상금이 400SBD 이므로 이걸 모두 25만원에 걸어두면 언젠가 1억이란 열매로 제게 돌아올 것입니다. 종종 스팀(스달) 5만원설이나 10만원설… 또는 스팀 가즈아 10만원 쯤 외치시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일단

가즈아~ 스팀달러 25만원!

인 셈입니다. 오늘 보니까 우리의 @ned 형님.. 아니 아우님도 한국에 오셨던데 밋업 주최자 분들께서 스팀-스달 공히 25만원을 넘어 100만원을 넘어가주십사 하고 고사라도 한 번 지내주셨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아하, 여기서 떠오르는 신성 고팍스 거래소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는 오늘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고팍스에 첫 계정을 터두었습니다. 아직 스마트폰 앱은 없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웹 상으로 구동되는 거래소는 상당히 깔끔하고 직관적으로도 심플하게 잘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주더군요. 가입절차도 상당히 순조롭고 해서 딱히 눈쌀 찌뿌릴 일도 없었습니다. 처음 대면한 인터페이스로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저는 로팀의 페이아웃 후 400스달의 상금이 들어오면 계획대로 25만원 호가에 전 물량을 매도주문으로 걸어두려 합니다. 헌데 주문 호가에 제한이라도 걸려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빗썸이 그렇더군요) 그래서 계정을 만들고 기본적인 인증을 다 마치자 마자 스팀잇 계정에서 1SBD를 고팍스 스팀달러 계정으로 보내보았습니다. 그리고 과감히 1스달을 25만원 호가에 걸어두었더니..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

라고 반가운 메시지가 뜨더군요. 아무 문제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저 높이 걸려있는 1 스달에게 얘기해주었죠. 기다려라, 곧 400개의 우군이 달려갈거다. 넌 그저 나중에 알찬 수수료가 되어주려무나…

그러고 보니 어느날 갑자기 우리 주변에 암호자산 투자를 위한 인프라들이 생긴게 아니었습니다. 이런저런 불편을 감수해가며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거래하고 투자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수요는 곧 크고 작은 기반 투자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수요가 기반산업을 일으키고, 또 확산되는 기반들이 보다 큰 수요를 창출합니다. 이 거대한 암호자산 시장과 우리의 스팀잇 역시 이렇게 영역을 넓혀나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제 제법 좋은 선택안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로팀 상금을 다뤄야 하는 제겐 소소한 재미도 더해진 것 같습니다. 아.. 페이아웃 후 25만원빵.. 아니, 25만원 호가에 상금을 걸어둘 때 고팍스를 비롯하여 거래소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한 번 읊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스팀잇과 가까이 하려는 고팍스의 노력을 꾸준히 지켜본 저로서는 왠지 로팀 당첨의 행운 만큼은 함께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고팍스 관계자 분들께서도 늘 초심을 잃지말고 사용자들의 편의와 자산 안전에 만전을 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우와.. 이거 당첨자 치고는 너무 젊쟎게 떠들었나요? 하긴 뭐.. 여러분과는 글로써만 소통하고 있으니 입이 귀에 걸린 제 모습은 못 보고 계시겠지요? ㅋㅋㅋ

어쨌든 행운도 함께 하고픈 연어였습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로팀, 고팍스, 그리고 1억 상금

μ—°μ–΄μ˜ 냉면 이야기

연어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이 냉면~냉면~ 합니다. 그렇담 이 연어가 빠질 수 없죠. 냉면에 죽고 못사는 저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저의 외삼촌 중에 몸과 얼굴 모두 성룡을 닮은 외삼촌이 계십니다. 어릴적부터 태권도(당수)를 연마하셔서 그런지 종종 이소룡 흉내를 내곤 하셨는데, 그럴때마다 조카인 저로부터 원성을 듣곤 하셨죠. 제발 (생김새답게) 성룡 흉내를 내달라고 성화를 부렸으니까요.

제가 초등학교 입학전 무렵의 꼬마였을때, 외삼촌께서 저희 집으로 멋드러진 바둑판 두 대(바둑판의 양사가 뭔지 모르겠게요. 두 개? 두 판?)를 들고 오셨습니다. 당시 군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오셨는데 공병대 소속이었던 외삼촌이 직접 덩치 큰 나무도 베고, 각 내고, 줄 긋고, 다리까지 붙인 후, 니스칠로 마무리를 해서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헌데 핸드메이드 바둑판을 선물로 받으신 아버지께서 곧장 흑백의 바둑알을 사오시더니 외삼촌과 기념 바둑 한 판을 두시더군요. 아버지께서 바둑을 두시는걸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 덕분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외삼촌으로 부터 바둑을 배워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이번엔 이 두 분이 장기라는 것을 두시더군요. 이건 또 뭔가요? 흑백의 바둑돌이 아닌 글자가 새겨진 장기알로 두는 장기란 것을 즉석에서 배웠는데, 뜨아… 거의 다 져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상황에서 한 방에 전세를 뒤집으며 ‘장이야!’를 외치고 상대로 부터 항복을 얻어내는 ‘한판 뒤집기’에 눈이 번쩍 뜨이며 매료 되고 말았지요. 그 때 부터 바둑은 손에서 놓았을 만큼 저는 장기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저에겐 냉면이란 음식이 그러했습니다. 언제 처음 냉면을 맛보았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초등학생 때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걸 처음 맛 본 순간..

“엄마, 이게 무슨 음식이에요?”

라고 어쭈어 보았을 말큼 미친듯이 매료 되었죠. 라면, 국수, 칼국수 등등 워낙 어릴적 부터 면을 좋아했던 터에 (이 쯤 되면 ‘연어’가 아닌 ‘면어’임) 굵은 면이 아닌 가는 세면에, 뜨겁기 보다는 찬, 탱글탱글한 식감 등은 제가 원하던 딱 그것이었고, 특히나 밍밍한 국물보다는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비빔냉면이란 존재는 어린 저의 마음을 훔쳐가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부터 저의 (비빔)냉면 열정은 지금까지 식지 않고 있으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도 늘 비빔냉면을 꼽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던가 중학생 때던가.. 한 번은 비빔냉면을 먹다가 어머니께 이렇게 얘기한적도 있었습니다.

“엄마, 저 나중에 냉면집 딸한테 장가갈까봐요.

이 얘기를 듣던 어머니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시더군요…

“아들아.. 이왕 결혼하겠다면 포부를 좀 키워서 냉면회사 오너 딸하고 하면 어떻겠니?”

워낙 표정이 진지하셔서 이게 농담이신건지 진담이신건지 아직도 알길이 없지만 워낙 냉면에 꽂혀 사는 아들의 모습을 보셨을 테니 그냥 웃자고 하신 말씀은 아니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데 제가 사회에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던 무렵, 하루는 어떤 비즈니스 회의 석상에 참여중이었는데 잠시 쉬는 막간을 이용해 사람들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던 중 상대측 참석자 한 분이 정말 ‘냉면 회사 회장님 딸하고 결혼하신 분’이시더군요! 냉면 매니아 분들이라면 다 알고 계실법한 ‘청X 냉면’ 오너일가의 사위라니! 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진짜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었구나(어머니의 권유를 듣고 진지하게 생각하보진 않았으니까요ㅋ), 정말 맨날 냉면 먹고 살 수 있는걸까, 그 여자분은 어떻게 만나셨을까, 냉면하고 상관 있는 인연이었을까 등등 매우 혼란(?)스럽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왠지 부럽고, 저의 꿈(?)을 빼앗긴 듯한.. 그러나 그분 연배상 어느 걸출한 냉면 회사 오너분 따님이 저보다 나이가 몇 살은 많거나 비슷했겠구나 하는 (아무 쓸 데 없는) 추측성 정보 하나 얻게 된 셈이었습니다. 헌데 농담같지만 그 때 그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남자로 보였습니다. ㅋ

대학생 때 친구 한 명이 아는 선배의 꼬드김으로 방학동안 인기있는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음식점에서 일하면 부수적인 먹방이 가능하단 이야기를 듣고 다른 친구 녀석이 후다닥 냉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더군요. 저처럼 냉면을 좋아해서 같이 냉면 식도락도 하던 친구인데, 한 번은 같이 고기를 먹고 후식인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비빔냉면은 달고 고소하게 먹어야 제맛이라며 설탕도 뿌려대고 참기름도 더 주문하고 맛나게 비벼대더니 냉면의 종류부터 온갖 지식을 얘기하는 통에..

역시 사람은 현장에서 제대로 배워야 해!

라는 생각이 들어 저도 3층 짜리 건물을 지어 영업하던 유명 냉면집에서 (위장취업의 각오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늘 과외 아르바이트만 하다 현장에서 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건데, 이렇게 일하고 나면 나도 냉면박사가 되어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요.

헌데 홀에서 서빙 정도 하려나 싶었는데 사장님은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시곤 곧장 저를 주방으로 배치하셨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임에도 주방보조로 발탁(?)된 후 그야말로 ‘개고생(개들아 미안)’은 시작 되었습니다. 일이 어찌나 힘들고 진이 빠지던지 첫날 그냥 그만둘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한 번 일을 맡으면 일단 하고 마는 (쓸데없는) 책임감에 삭신이 쑤셔대는 몸을 이끌고 다음날도 출근을 하였습니다. 주방장 형님은 대분분 첫 날을 못버티고 사라지는데 기특하다며 제게 마음을 터놓기 시작하셨고, 덕분에 저는 냉면을 만드는데 대한 여러 잡다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슬슬 기계로 냉면을 짜내는 방법도 버우기 시작했는데.. 아차 이게 큰 화근이 될 줄은 당시엔 생각도 못했지요. 대형 기계로 면을 직접 내리는 일은 제겐 자못 긴장되는 것이었고, 한가한 시간에 테스트 삼아 소량 해보는 정도면 모르겠는데 한 참 바쁘게 영업중인 상황해서 저보고 직접 하게 만드니.. 물론 숙달된 조교, 아니 싸부의 지도와 수습이 있지만 어쨌든 진땀 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사단이 터지고 말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주방장 형님이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연락도 되지 않고 곧 영업 피크 타임은 올거고, 수백 명의 손님이 한 번에 몰릴텐데 면을 내릴 줄 아는 직원의 그 많은 (분업화 된)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 중 아무도 없고.. 모두가 저만 말똥말똥 쳐다보는 기분.. 상상이 되시죠? 결국 사장님의 폭탄선언이..

“자네가 좀 해줘야겠어”

졸지에 저는 인기 냉면집에서 면을 내려야 하는 중대 업무를 맡아야 했고, 이미 모든 재료가 다 준비되어 있는 냉면 장사의 특성상 성공과 실패의 여부가 얼마나 면을 탱탱하게 잘 삶아내느냐에 달려있으니 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치어찌하여 첫 날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연을 알고 보니 평소 사장님과 주방장 형님의 사이가 안 좋았던 사실, 가혹한 노동 요구와 의견 충돌로 적막한 기류가 흐르던 와중에 제가 ‘입성’을 하게 된거였고, 첨에는 견습생 아닌 견습생인 제게 재미삼아 면을 내리는 기술을 알려주었던 건데, 이게 저를 스페어 기술자로 만든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뭔가 사장님과 형님의 심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같고, 주방장 형님은 그간 나름대로 책임감으로 불만을 꾹 참고 일을 해오던 터에 이젠 후임자(?)급이 생겼으니 아쉬운대로 일은 돌아가겠거니 해서 무단결근과 사표아닌 사표를 던지고 말았던 겁니다. 솔직히 저는 그래도 형님의 마음을 이해했던게 시간이 지날수록 돈에만 눈이 먼 사장님의 행태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여자 교감으로 퇴임 후 냉면집을 차렸다는 사장님은 의사인 아들에게 그럴듯한 병원을 차려줘야 한다며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였고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며 친한 특정 직원들은 비교적 편하고 쉬운 업무를, 책임감으로 잘 버틴다 싶은 직원은 나가 떨어질 때까지 부려먹는(?) 스토리가 있던 터였습니다.

어쨌거나 그런대로 기술 연마가 된 터라 일은 제법 잘 수행해 나갔는데, 이게 참으로 희안한 것이 조금안 긴장을 놓고 방심을 하게 되면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손님들이 “오늘은 면이 예전만 못하네요”라며 한 마디씩을 하고, 제가 보아도 정말 잘 삶아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손님들로 부터 “이렇게 맛있는 면발은 처음이다”며 탄성이 전해지고 하다보니 일순간도 대충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께 저는 전문 주방장도 아니고 어떻게 땜질이나마 해 나가고 있는 동안 빨리 새로운 주방장을 뽑아두셔야 하지 않겠냐고 재차 말씀드렸는데도 도통 소식이 없던 겁니다. 왠지 저마저 뽑아먹을 대상이 된건가 어이가 없긴 했지만 최소한 인수인계(?)는 하고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갔습니다. 한 번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기전에 빨리 사람을 구해두셔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에 저보고 휴학을 하면 안되겠냐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때부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인 냉면은 만드는 일이란 마음가짐이 사라지며 그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 순간 한 순간이 지치고 짜증이 났었습니다. 냉면집에서 일을 하면 그렇게나 좋아하는 냉면을 매일, 그것도 전문가들에게 코치를 듣고 더 맛나게 젓가락질 하겠다는 저의 푸르는 꿈은 이미 날아가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초반 몇 일간은 너무 진이 빠져 식욕이 사라진 통에 냉면은 커녕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였고, 나중엔 홀에서 먹음직스럽게 받아만 먹던게 아니라 생산(?) 현장에서 기계적으로 나오는 제품같은 기분이 들어 영 식욕이 돋질 않는 통에 냉면은 손도 안되고 밥이나 좀 입에 넣을 정도였습니다. 희망이 물거품 된 통에 정말 힘들 시간들이었는데..

마침내 구세주 한 분이 나타났는데, 갑자기 새로운 주방장이라며 한 분이 출근하였고 저는 이제야 살았구나 하며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헌데 알고보니 그 얄미운 사장님이 서의껏 뽑은게 아니라(계속 저를 부려 먹으려 했을테니까요 ㅎ) 주말에 가족들과 근처에 지나가다 우연히 이 집 냉면 맛을 보게 되었고, 육수에서 (전문가로서) 느낄 수 있는 향긋한 내음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너무 궁금하여 바로 사람 좀 구하냐고 알아왔던 겁니다. 다행히 몇 달 쉴 요량으로 한적히 지내던 이 주방장 덕분에 저는 복학전에 빠져나올 수는 있었는데, 냉면에 빠져살던 1인으로서는 냉면과 엮인 가장 희안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뭐, 추억이라면 추억일지도 모르죠.

상해에 혼자 지낼때는 까르푸에 현지 풀무원에서 생산한 냉면을 발견해 거의 매일 요리를 해 먹으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먼곳도 아니고, 하도 한국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터라 타지 생활에 나름 만족해 향수병은 없었지만 괜히 삼시세끼 어촌편을 중국 채널로 보다가 매운 짬뽕 생각이 나기 시작하더니.. 김치 찌개, 비빔냉면.. 이렇게 3종 세트는 정말 먹지 않으면 미치겠더군요. 그래서 냉면은 직접 만들어 먹고, 김치 찌개는 좀 불편한 면이 있어 그냥 한국 식당을 찾아가 먹고, 짬뽕은 한국에 들를 때마다 친구와 먹고 그런식으로 해결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5월을 전후로 냉면이 가장 땡기는 시즌이란 얘기를 주방장 형님으로 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한 참 날이 더울 때 인기 있는 음식이 아닌가 생각들 하실텐데, 봄 기운에 따스함이 느껴지면 은근히 새콤매콤하거나 산뜻하고 시원한 음식이 생각나는 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문 냉면집들에겐 지금이 시즌상 피크이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남북정상 회당 의 이슈까지 겹쳤으니..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냉면 열기가 얼마나 뜨거울지 실감이 나네요.

한 그릇의 시원한 물냉면, 그리고 새콤달콤 감칠맛 나는 비빔냉면.. 한 번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최고의 타임입니다. 여러분 놓치지 마세요~^^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연어의 냉면 이야기

코인 투자자둜 κ±°λ“­λ‚˜κΈ° - 쑰지 μ†Œλ‘œμŠ€

연어입니다. 최근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해 주시는 이웃분 중 @eunsik 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어제 제가 이 분의 최신글 한 편을 리스팀 해두기도 했는데요,

https://steemit.com/kr/@eunsik/42g1fh

저는 이 분의 블로그가 회수를 거듭할수록 더욱 값어치 있는 기록물로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에 영구 박제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자신의 실수와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만한 것이 있을까요? 코인 시장에 뛰어들어 성공한 투자자로 남기 위해 매일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고 복기해 나가는 태도는 훗날 반드시 좋은 보답으로 돌아오고야 말것입니다. 시장은 결국 이런 분들의 편을 들어줄테니까요. 어쨌든 @eunsik 님 뿐만 아니라 스팀잇 이웃분들 모두에게 성공이란 보람이 깃들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간만에 주말이라고 뒹굴거리다 거래소 앱을 켜보니 코인 시장이 훈풍을 타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4월 초부터 틈틈이 진입해왔던 보유 코인들은 당연지사

Just let it go…

입니다. 제가 선택한 상승이란 방향은 시장의 흐름을 타고 지속되고 있으며, 이것은 가격들이 다시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거나 떨어질 것이 염려되어 포지션을 청산할까 고민 중인 분들과는 상대적인 입장으로서 아직은 제가 심리적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머니게임에서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이 쉽게 그 자리를 내주어서는 안됩니다. 추세가 내편이라면 상대가 두 손을 들고 항복할 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자신의 포지션을 굳건히 쥐고 가겠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트레이더가 지녀야 할 매우 중요한 자세 중 한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조지 소로스 옹(?)의 코인 시장 진출로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시대가 배출한 전설적인 투자자, 엄밀히 말하자면 초고수 트레이더로서 이미 역사에 남을만한 인물이지요. 나이가 상당히 많을진대 아직 현역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킬 만큼 암호화폐 시장이 매력적이었을까요?

오래 되어서 기억이 좀 가물거리긴 한데.. 한번은 조지 소로스의 매매 방식과 거래 철학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살짝) 탐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간략시 정리해 보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급작스레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말씀드리는 것이니 혹 미진한 내용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처음 주식이니 하는 금융거래에 관심을 두었을 때 너무나 많은 정보와 방법론 속에서 어떤 것이 제게 맞고 또 올바른 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길잡이가 없어 막막했던 것이죠. 결국 제 스스로 그 길을 찾아나설 수밖엔 없었습니다.

한 번은 이틀간 날을 잡아 당시 서울 강남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금융투자에 대한 모든 책들을 (대충 읽으며) 독파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틀간 꼬박 책장을 넘긴 후 내린 결론이 참으로 쇼킹했지요.

딱 두 권 빼고 다 거짓말이네..

그리고 그 두 권의 책 중 한권이 조지 소로스가 쓴 책이었습니다. 제목이 어떤 것인지는 가물거리지만 자신이 투자자로서 정립한 ‘재귀이론’에 대한 내용이었지요. 재귀이론이라.. 좀 따분한 내용이라서 책으론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일독을 권하진 않습니다) 이 재귀이론을 저만의 방식으로 쉽게 이해하고 정리해 보자면..

어쨌거나 저쨌거나.. 시장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고 있지 않다면 언젠가는 마땅히 가야 할 방향을 향해 스스로 돌아올 것(재귀)이다.

그러므로 소로스가 체크 하는 것은 시장이 자연스레 가야할 길이 있는데 어떤 (인위적인) 이유로 반대쪽을 향해 꾸역꾸역 가고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만약 그러한 정도가 심하다면 소로스는 기꺼이 시장이 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배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부터 철두철미하게 돈질과 손절 관리가 들어가지요. 지독하리만큼 냉혹한 트레이더가 되는 겁니다.

사실 조지 소로스에 대한 평판은 워렌 버핏과 같은 투자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워렌 버핏 보다는 소로스가 훨씬 (투자자로서) 정직하게 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부분은 나중에 얘기할 기회를 잡도록 하고..

자, 소로슨 배팅을 시작합니다. 어느쪽으로 걸어야 할까요? 그냥 동전을 던져 결정할 수도 있겠지만, 단 1퍼센트라도 높은 확률을 잡기 위해 소로스는 재귀이론을 펼쳐듭니다.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네가 원래 마땅히 가야할 방향이 어딘데?” 여기에 나름대로 답을 한 번 뽑아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답(방향) 쪽으로 소량(?)의 돈을 던져 봅니다.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먼져 던져본 자금은 손실을 보겠죠. 그럼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겁니다. 작은 손절로 그치거나 손실을 감내하며 다시 때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먼저 던져본 삥에 입질이 오면 슬슬 본격적인 배팅을 시작합니다. 돈질로 승부를 시작하는 것이죠. 소로스가 생각하기에 재귀이론으로 뽑아내 방향이 맞다면 삥으로 던져본 자금이 수익으로 화답할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시장은 원래 이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었어. 그럼 내가 그쪽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주지. 위선으로 흐르고 있는 시장의 가면을 벗겨낼 타임이 온거야!

소로스는 돈질을 시작합니다. 금융거래에선 선과 악, 옳고 그름이란게 없습니다. 시장이 흘러가는 것 자체가 정답이죠. 하지만 큰 물줄기란 것이 있습니다. 소소한 움직임은 용인할 수 있지만 소로스가 보기에 마땅히 가야할 방향으로 가지 않는 시장은 어차피 언젠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일테죠. 그렇다면 소로스는 그 서막에 불을 지필 뿐이죠. 그곳에 큰 수익의 기회가 담겨있으니까요.

소로스에게 돈질은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가 뻥카임을 확신해도 상대의 돈질에 누죽이 들면 레이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되어도 결국 돈의 위력에 무릎을 꿇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대규모의 사모펀드로서 충성심 강한 투자자들로 부터 늘 탄탄한 실탄을 장전해 두었습니다. 소로스 본인도 막대한 수익을 펀드에 쟁여두에 포화를 쏟는데 힘을 보탰죠.

어쨌든 시장에서 맞붙는다는 것은 결국 돈질을 통한 머니게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르느냐 내리느냐의 단순한 머니게임! 그래서 소로스는 선물시장을 주 대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올라야 한다, 아님 내려야 한다 중에 선택할 뿐이죠. 그리고 소로스를 신의 트레이더이자 공포의 투기꾼으로 등재시킨 역사적 사건이 바로 파운드화를 둘러싼 영국은행과의 대결이었을 겁니다. 소로스는 승리했고, 영국은행은 파산했죠. 소로스가 보기에 영국은행은 억지로 땡깡을 부리며 버틴 상대였을 겁니다. 올바른 포지션을 취하지 않은 댓가가 어떤지 확실히 보여준 것이죠.

기실 이런 원리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IMF 이전, 당시 김영삼 YS정부는 국민소득 1만불 달성인가 하는 제업(?)을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손을 댄 정책이 원화를 강세로 유지해 미달러(US$)로서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국민소득 평가치를 끌어 올리려 했지요. 원화 강세로 외국 물가는 싸게 느껴지니 ‘세계화’란 기치로 본격적인 해외 여행 시대마저 열어주며 원화 강세를 유지하려 했지요.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평가도 여기서 기인했을 겁니다)

이런 환경을 소로스 식으로 해석한다면, 원화 강세는 당시 한국 상황으로 볼때 아직 무리인 상태로서 중앙정부의 입김이 개입된 매우 인위적인 상태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외화시장 속에서 원화가 마땅히 가야할 길은 어느쪽입니까? 미달러 대비 원화의 가격이 올라야겠습니까? 내려야 겠습니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보다 더한 타킷으로 태국이 지목되었을 겁니다. 태국의 밧트화가 더 약점이 컸던가 힘이 약했을테지요. 세계 금융자본이 이 밧트화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기자본이 밧트를 눌러버렸고, 그 파고가 한국 원화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원화 방어를 위해 나섰습니다. 외환 트레이더는 절반쯤 한국의 국가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시장 경제 속에 있으면서도 국가의 귀중한 외환보유고를 실탄으로 쓸 수 있는 이면에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유지하고픈 환율을 수성한다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소로스를 비롯해 많은 금융 투기 자본이 묶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돈질을 해대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 머니게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을테고, 마침내 원화의 가치를 고평가로 유지하기 위해 원화를 사재꼈던 한국 외환트레이더들에게 가뜩이나 많지 않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실탄이 고갈되고 있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했을 겁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 마진콜(margin call), 즉 지급불능으로서 게임아웃 될것이냐 아니냐를 말이죠.

결국 한국 정부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친듯이 사재끼던 원화를 포지션 청산(소멸)을 위해 다시 미친듯이 팔아야 했고, 이제 상대와 같은 포지션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두손 든 한국 정부는 되려 괘씸한(?) 상대방의 편이 되어 시장을 걷잡을 수없는 변동성으로 끌고 갔습니다. 원화 가치의 폭락, 미화 대비 1천원을 밑돌던 원화의 가격이 2천으로 치솟던 배경에는 이러한 머니게임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소로스는 이런 종류의 전투를 즐겼습니다. 늘 승리했던 것은 아니지만 일정 이상의 손실은 과감히 잘라내 버리는 손절을 통해 아직ㅈ건재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갑옷을 입고 비트코인 선물시장이란 전장에 현역으로, 또는 코치로 나서려나 봅니다. 그가 지르려는 쪽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마땅히 가야할 쪽’일 것입니다.

참고로.. 헝가리 태생 유대인이었던 소로스는 독일 물리학자였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심취해 있었고, 그 이론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펀드를 ‘퀀텀(입자)’으로 지었던 것입니다. 불확정성 원리.. 세상은 결국 어느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불변이란 없는 것이고, 금융이야 말로 불변의 가격이 없이 늘 변동되는 가격속에 움직이는 세상이니 소로스에겐 자신과 마음속 스승의 이론을 검증하기엔 딱이었을겁니다. 그런 그가 우리 쪽으로 뛰어듭니다.(이미 뛰어들었을수도..) 그는 우리의 우군이 될까요? 적군이 될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코인 투자자로 거듭나기 - 조지 소로스

2018, μƒˆλ‘œμš΄ μƒμƒμ˜ μ‹œμž‘

연어입니다. 어느날 문득 나는 언제까지 살게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성인이 된 후엔 차츰 삶을 마무리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 또한 막을 순 없기 때문이죠. 영원한 생명이란 것이 없기에 저 또한 언젠간 생을 마감하리라는 사실을 담담히 되뇌어 봤던 것입니다. 그냥저냥 몸 건강히 살아왔으니 제 나이대가 보여줄 평균 수명 정도는 살겠거니 했고, 그럼 지금껏 살아 온 인생만큼 더 살아볼 순 있겠구나.. 그리 막연히 정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제 판문점에서 거행된 남북 정상의 만남을 잘 보셨는지요? 저는 일에 바빠 그 역사적 순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진 못했습니다. (심지어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언제인지도 몰랐네요ㅋ) 여러분도 그 기념비적인 순간 앞에서 많은 생각과 감회에 빠져들으셨으리라 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지요.

2018년은 왠지 제게 새로운 마음가짐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어제 늦게나마 유투브를 통해 남북 정상의 만남과 양측의 엄숙한 선언을 듣고는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절반쯤 남았으리라 생각된 저의 나머지 인생은 지금껏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패러다임을 한껏 벗어내고 새롭게 채워야 비로소 시작될려나 봅니다. 바로 과거 냉전에서 이어 내려온 대한민국의 틀, 그리고 블록체인이 부상하기 이전 사고의 틀.. 이 두 가지 말입니다.

제가 어렸을적 냉전의 기운은 자못 무시무시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찌르자 공산당’을 되뇌어야 했고, 온갖 반공 포스터 대회에 동원되다시피 했죠. 그 절정은 ‘금강산 댐’이란 실체 불분명한 북한의 공작으로 부터 서울 시민과 국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5공 정부의 선전놀음에 두려움을 떨며 저금통을 깨고 코묻은 용돈까지 털어 성금을 내야했던 때 같습니다. 전 세계 희대의 사기사건에 꼭 들어가야 할 전대미문의 뻥공작이었죠. 그런 고사리 손으로 낸 성금이 특정 정치권력의 부패 축적과 공작에 쓰였다는 사실이 참 씁슬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언젠간 남북한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맞잡는 세상, 평화통일을 기점으로 번영을 키워가는 하나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으려니 희망하기도 했지만 심하게 경색되어 버린 남북의 현실과 신냉전이 도래하는지 걱정케 하는 세계 정세에 어쩌면 저도 그런 상상은 접어둔지 오래였던가 봅니다. 헌데 어제 역사적 순간을 직접 화면으로 목도하면서 이제 엄청나게 달라질 앞으로의 정세 변화에 마음을 열어제끼고 능동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채워나갈 새로운 상상이 요구되는 시점이 온 것이죠.

또 한가지는 단연코 ‘블록체인 세상’입니다. 이걸 단순히 기술 혁명이라고 받아들이기엔 그 파급 효과가 너무나 방대합니다. 비트코인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블록체인은 아직 걸음마 단계일지 모르지만.. 기술, 자본, 가치관, 사회 등등 모든 분야를 걸쳐 대변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역사적 흐름에 늦지 않게 동참했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투자와 공부, 공감과 토론을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히 느끼고 있습니다. 단언컨데 제 앞으로의 생은 블록체인이 심어둔 뿌리 부터 시작하여 열매를 맺어가는 전 과정과 궤를 같이 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블록체인 없이 굴러가는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거꾸로 말하면 이제 블록체인과 함께 굴러가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상상이지요. 저는 블록체인이 태어난지 10여년이 된 2018년이야 말로 척박하게 걸어온 그간의 발자취를 뛰어넘어 고속질주로 달려나갈 원년이 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20대의 풋풋한 시선으로 인터넷 혁명을 지켜봤던 경험자로서 이에 비견할만 한 시대적 변혁이 무엇이 될런지 늘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로봇 혁명, 3D프린트 혁명, 핀테크, 사물인터넷, AI 등등.. 이런 저런 테마는 많았지만 제 눈엔 늘 무언가가 부족한 앙꼬없는 찐빵같았습니다. 그러다 블록체인의 원리를 접하는 순간 그간의 아쉬움과 의구심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고, 그것이 이 길에 한 발쯤 발담그며 살아가게 한 시발점이 아니었나 합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본? 지식? 기술? 전 그 무엇보다 바로..

우리의 상상력..

이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담아내고 새롭게 발현해 갈 수 있는 상상력.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역사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끊임없는 동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되지 않을까요?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2018, 새로운 상상의 시작

λ‹¨νƒ€λ‘œ 코인 갯수 늘리기의 μœ„ν—˜μ„±

연어입니다. 오늘 eos 코인의 급등에 많이들 놀라셨는지요. 그러나 우리는 상하한가 제도가 없는 코인 시장에 내포된 잠재적 변동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코인의 움직임은 금융 상품중에서도 핫하기로 소문난 옵션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 암호화폐란 것이 이런 상품임을 염두에 두고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 정체가 심한 구간에 들어서게 되면 다들 느긋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답답함과 짜증 섞인 기분에 휩싸입니다. 같은 위치에 있던 차량이 슬금슬금 차 한 두칸 정도 앞서 나가는 것만 봐도 열불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한 10 미터 이상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줄을 잘못 선 탓을 하기도 하고, 다른 차량들이 얍실하게 반칙을 쓰는건 아닌가 빼꼼이 쳐다 보게 되지요. 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이지요.

헌데, 우리 조금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해보도록 할까요? 저렇게 엉금엉금 기어가는 도로에서 앞서 나가봐야 얼마나 앞서갈 것이며, 빨리 달려 봐야 얼마나 빨리 달리겠습니까? 오히려 어느 순간 정체가 풀리고 차들이 제대로 주행을 시작하게 되면 그 때서야 제대로 거리를 벌일 수 있게 되죠. 살포시 잠깐 엑셀을 밟아 주기만 해도 훨씬 먼거리를 신속하게 벌여 놓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군요.

정체 구간에서는 용써봐야 어차피 별 차이 없으니 마음 느긋하게… 주행 구간에서는 제대로 달려 시원하게 거리를 벌리기..

네, 그렇습니다. 저는 주식이든 선물/옵션이든 코인이든 시세가 오르내리는 금융 상품은 모두 같은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혹시 엄청난 시세 폭등이나 장기간의 상승 곡선을 마음을 비운채 물끄러미 살펴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한 번 찬찬히 살펴 보시면 매우 단순하고도 엄청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습니다. 그 시세가 그린 어마어마한 수익률의 많은 부분이 매우 짧은 순간에 이루어 진다는 점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어떤 종목이 1만원에서 10만원 까지 올라갔다면 하루에 천원씩 약 100회에 걸쳐 차곡 차곡 올라간 것일까요? 아마도 오르락 내리락 지지부진해 보이던 시세가 야금 야금 오르다가 어느 순간 탄력을 받더니 아주 찰나의 순간 시세를 분출했을 겁니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이 거래하며 만들어 내는 시세 분출, 그리고 폭락의 궤적인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언제 시세가 터질지 모르니 적어도 상승 구간에 돌입해 있을 땐 절대 포지션을 놓고 있지 말라..

만약 어떤 이유로 물량을 쥐고 있지 못한다면 시세가 열 배, 백 배가 뛴다해도 그건 결코 나의 이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남의 집 잔치가 되는 것이지요.

저는 제 주변 분들에게 절대로 쥐고 있던 포지션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 신신당부하곤 합니다. 특히 상승장에 들어서게 되면 불변의 진리죠. 사람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지지부진하던 시세가 갑자기 뜨게되면 쥐고 있던 포지션을 털어버리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잡지 못한 대상이 팍 튀어오르면 잡을 엄두를 더더욱 못내죠. 그야말로 수익을 내기 위한.. 거래의 승자가 되기 위한 행동과는 정반대의 심리에 지배 당하는 것이죠.

가장 위험하고도 잘못된 거래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조금 더 저점에서 (싸게) 매입하겠다고 소소한 상승에 물량을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간의 작은 파고에 눈이 익어버려서 그런 것이죠. 그간의 짜잘한 패턴에 익숙해져 오판이 시작됩니다. 가공할만한 급상승이 올 수 있는 가능성을, 금융 거래에서 수익의 대분을 차지할 황금의 순간을 망각하는 겁니다. 자꾸 조금 오르면 팔아 뒀다가 다시 조금 내리면 조금 더 싸게 사는, 즉.. 물량을 늘리는 편법 아닌 편법에 물들어 가는겁니다. 시세 분출은 결코 이런 분들과 함께 하기 어려울 테지요.

차라리 그럴 바에는 조금 더 자금을 마련하여 추가 매입 하는 것이 낫습니다. 물타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코인 시장의 발전과 우상향 곡선을 기대하고 있다면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행동 패턴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최저점이나 최고점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새로운 사고의 기준점을 가지니까요. 이건 또 뭔 소리일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디ㅡ.

eos 코인이 1만원으로 최고가를 찍습니다. 사고는 싶은데 사질 못합니다. 최고점이라니..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내죠.

그렇게 2만원까지 치솟습니다. 그러다가 하락을 시작하더니 1만6천원 까지 빠집니다. 고점 대비 20%가 빠진 셈이군요. 이때서야 사람들은 eos가 싸다고 느낍니다. 최고점 기준이 2만원이니까요. 이제 사람들은 지갑을 엽니다. 싸다고 생각하면서..

1만원에 살 수 있던 것을 1만6천이란 가격으로 (싸게) 삽니다.

결국 좋은 대상은 언제 사고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저는 오늘같은 eos 사태(?)를 보며 현명한 투자행동이란 무엇인지 좀 더 마음 속으로 정리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단타로 코인 갯수 늘리기의 위험성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