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에 대한 주도권 잡기

연어입니다. 업무 관계에서도 군대에서 차용한 ‘사수/부사수’라는 말을 쓰곤 하지요. 이런 전투적인 용어를 일상사에서 쓰는게 적합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게 오래전 한 ‘사수’로 부터 전수받은(?) 노하우가 있습니다. 그 사수분의 설명을 풀어보자면..

“만약 세 명에게 각각 3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데 갑자기 갚을 수 있는 돈 300만원이 생겼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이런 경우 대개는 100만원씩 나눠서 세 곳에 돈을 갚게 돼. 아무래도 세 곳으로 부터 다 시달리게 되니까 돈을 나눠 일부씩 갚게 되는거지. 그런데 여러 업무를 맡아 처리해 나가다 보니 그건 아니다 싶더라구. 그럴바에는 차라리 300만원으로 한 곳을 먼저 갚아버리는 나아.”

“왜 그렇죠? 그러면 한 쪽은 해결되겠지만 나머지 두 곳에서 독촉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요?”

“이 사람아. 살아보면 알아. 결국 독촉의 크기보다 가짓수가 더 중요하다는 걸 말야.”

요즘들어 종종 이분의 말씀을 떠올리곤 합니다. 돈을 상환하는데 한정해서 설명했던 내용이지만 저는 이 해법을 좀 더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러나 분명 마음 속이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말이지요. 굵직한 스트레스 요인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냥 ‘내가 지금 괜시리 짜증만 내고 사는걸까?’하고 넘기기 일쑤이지요. 요즘의 제가 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 많은 분들께서 자주 겪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가 더욱 힘든 것 같습니다. 한 두가지의 큼직한 스트레스가 다가오면 우리는 이것을 또 하나의 ‘숙제’나 ‘도전거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되려 해쳐나가겠다는 의지가 샘솟기도 하지요.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아주 가끔’ 생긴다 해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헌데 잔펀치를 맞듯 깨잘깨잘 다가오는 스트레스에 넉다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저런 자잘한 스트레스에 반응하고 있는 자신부터 싫어지기 마련입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생각조차 피곤해 지고.. 마침내 그냥 나몰라라 자리에 눕고 잠이나 청하기 일쑤겠지요.

이렇게 제 옛날 사수의 조언을 생각해 본다면.. 사람은 스트레스의 크기 못지 않에 가짓수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스트레스의 가짓수’ 줄이기가 큰 관건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방식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있을까요? 제가 생각해 본 바로는 분산된 초점을 줄여가는.. 즉.. 내가 고민할 내용을 줄여 조금 더 냉철해지고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생각해본 키포인트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입니다. 그 대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던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스트레스의 상황에 놓여있긴 마찬가지죠. 어차피 해결을 보겠다면 막연하게 대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보다는 직접 목도하고 생각할 수 있는 위치로 모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터 ‘나의 의지’가 조금씩 발동되게 되지요. 작고 많은 스트레스에 힘들어하게 되는 것은 내 의지를 어디에 소모시켜야 할 지 에너지 배분에 대한 계획을 잡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가짓수를 줄이고 초점을 좁혀가면 스트레스에 대항할 주도권을 갖고 오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께 제안하는 것.. 그리고 다시 제 스스로 마음을 잡아가려는 것도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이렇듯 저는 요즘 이래저래 마감이 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봅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의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가 곰곰히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지요. 뭔가 해결되지 못한 일이 쌓여만 가는 기분.. 매듭되지 않은 일들이 질질 끌려 오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지요. 그리고 뭔가 맥이 탁 풀려버리는 것 같습니다.

자, 그게 맞든 틀리든 뭐라도 원인이다 싶은 것을 잡아 냈고, 나름대로 해결 방안이 섰다면 이제 실천해 나가야겠지요? 그런데 첫 방에 스트레스의 요인을 제거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또 있죠. 스트레스와 조금 관련은 없더라도 그 무엇이든 가짓수를 줄여가는 것입니다. 즉, 내 주변정리를 하자는 것이지요. 청소도 좋은 방법입니다. 청소라는 것이 실제 현실의 물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 행동은 정신적으로도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마음이 산란하고 복잡하다면 그냥 청소부터 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자질구레한 물건을 치우고 정리하고 버리고.. 산만했던 시야를 다소 간단하게 줄여갈 수 있는 최적의 방법입니다.

그 뿐인가요? 취미든 뭐든 이래저래 얽혀있는 일들도 가짓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저기 손댄 일들이나 참여하고 있는 일들이 지금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한 번 신나게 줄여보세요. 어차피 에너지가 바닥나고 힘빠진 상황에서 여기저기 걸쳐봐야 잘 될 것도 없습니다. 가짓수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중요함에 우선순위를 정해 줄여나가던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더 몽롱하게 만든다 싶은 것에 우선 손을 떼도록 합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짐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말이죠. 필요하다면 과감히 결단을 내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잠시 소원해져 있던가.. 과감히 끊어버리던가.. 어쨌든 이것 저것 모든 것을 손에 붙잡고 있다가는 일은 일대로 해결되지 않고 정신은 정신대로 산만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지 않을까요?

결국 나를 스트레스로 몰아가고 있는 직간접적인 대상을 의도적으로 줄이면 이후 집중할 수 있는 한정된 대상을 확보하게 되고 그로인해 흩어진 마음을 조금씩 내 쪽으로 끌어오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해 본 ‘스트레스에 대한 주도권을 잡는 방법’이였습니다. 당장 저부터 실천해 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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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운명 공동체

연어입니다. 연이어 쓰기로 한 글들이 조금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좀처럼 짬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또 한 하루를 넘겼네요. 그러는 동안 코인들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엊그제는 이오스가, 어제는 스팀과 스팀달러가 여타 코인들에 비해 강세를 보였지요. 그러나 한화로 잘 환산된 업비트 같은 곳을 통해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코인들이 ‘기지개’를 펴는듯한 모습입니다.

‘기지개’란 표현은 꽤 감상적인 단어겠군요. 은연중에 오래기간의 침체를 마무리하고 가격 상승을 하지 않겠냐는 추측 내지 바램이 섞여 들어가 있나 봅니다. 그러나 이후 결과가 어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굵직한 흐름만 본다면 최근까지 지속되어 온 추풍낙엽같은 가격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해 보겠다는 에너지가 모여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를 디딤돌 삼아 반등에 성공할지, 일시적인 몸부림이었는지는 이후 역사에 맡길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두어 가지 재미있는 점이라면.. 우선 이 다양한 목적의 코인들이 탄생 과정을 불문하고 상승하락에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는 점, (제가 느끼기에) 갑자기 댓글 등의 소통 노력이 많아진 것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특히 스팀잇의 경우.. 어제 밤 포스팅한지 이틀이 되어가는 글에 상당히 많은 댓글이 추가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스팀잇에 오래 머물러 본 유저로서의 느낌은 최근 스팀의 가격 상승과 코인들의 기지개가 그간 힘빠져 있던 스티미언들에게 “얍!” 하며 긍정적 자극을 주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지치고 지루한 나날에 다시금 에너지를 충전시켜 준다고나 할까요? 비록 멘션 기능을 통해 이런 저런 댓글이 오고 있다는 것만 확인했지만 우리도 모르게 서로 ‘슬슬 입질이 다시 오고 있어요. 같이 힘내 봅시다.’ 라고 격려하는 듯 합니다.

저도 다시 힘이 좀 납니다. 얼마전 @leesunmoo 님께서 남기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많이 공감되는 내용이었는데.. 그렇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은 좀 비껴놓고 일단 막강한 처리 기능을 지니고 있는 스팀잇을 우리 모두 제대로 한 번 굴려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포스팅, 보팅, 댓글, 전송 등등 스팀잇과 스팀코인이 처리할 수 있는 막강한 속도와 대역폭을 한 번 풀가동할 수 있을 때까지 달려보는거죠.

다행이 우리에겐 인연중에 무언의 교감이 있는것 같군요. 그런면에서 우린 확실히 코인 운명 공동체임이 분명합니다. 오랜만에 아침 글을 남겨보네요. 간신히 핸드폰으로 말이죠. 어쨌든 여러분 모두 조금 더 힘내시길 바랍니다. T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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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친구가 보내준 심리테스트

연어입니다. 뜬금없이 대만 친구가 심리테스트를 해본다며 장문의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제가 간략히 정리해 남겨보겠습니다. 이걸 19금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심리테스트려니 생각해 보시고 각자의 의견을 한 번 남겨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많이 아팠고 아내는 남편을 구할 방법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아내는 남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위험한 강을 건너야만 했다.

강변에는 한 뱃사공이 있었고, 그 뱃사공은 아내를 강 건너편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뱃삯을 내야 했지만 아내는 돈이 없었다.

그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아까부터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보아하니 돈이 필요하신듯 한데 제가 당신에게 돈을 줄 수 있습니다. 대신 저와 한 번 자는게 어떻습니까? 저는 쭉 당신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아내는 동의했다. 마침내 돈을 받았고 배삯을 내며 건너가 약을 구해올 수 있었다. 아내 덕분에 남편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남편의 친구가 보게 되었다. 친구는 아내가 어떻게 약을 구해올 수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남편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매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던 것이었다.

결국 남편이 얘기를 꺼냈다. ‘나를 구해준건 너무 고마워. 하지만 난 당신이 어떻게 약을 구해왔는지 이미 알고 있어. 난 매일 그 일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는 살 수 없을것 같아. 우리 그만 헤어지자.’

이렇게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었다.

자, 이 이야기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남편, 아내, 뱃사공, 그남자, 친구


좀 껄끄러운 내용인지는 몰라도 종종 소설이나 영화 등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 하니 한번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긴 하셨을겁니다. 대만 친구의 의도는 ‘심리테스트’에 있는 만큼 유독 윤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나쁜 사람 순서와 그 이유를 한 번 간략히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댓글엔 제가 성의껏 보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여기에 대한 의견과, 이 테스트가 저번에 이어 쓰려고 했던 kr의 민심과도 얼추 연관된다고 생각되는 바가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적어볼까 합니다.

자, 여러분의 의견들이 어떠하신지 자못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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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 민심 읽기 - 전편

연어입니다. 창문 너머 동산에 벚꽃이 만개했는데 갑자기 왠 눈인가요? 벚꽃과 눈으로 하얘진 세상은 저도 처음 봅니다. 제법 쌀쌀했던 주말 잘들 보내셨는지요. 오늘은 뜬금없이 우리 KR 민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LA에 살고있는 미국인 (여자 사람) 친구는 클린턴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열렬히 반대하고 있었죠. 하루가 멀다하고 내뱉는다는 막말쇼 때문이었을 겁니다. 친구는 트럼프같은 저질인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클린턴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 때문인지 좀 시끌시끌하지만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헌데 저의 예측을 묻는 질문에 저는..

“글쎄? 내 생각엔 트럼프가 당선될 것 같은데?”

라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친구는 기질상 민주당 후보에게 더 호의적일 것 같은 제게서 엉뚱한 대답이 나오니 꽤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지지 후보가 아니라 당선 예측에 대한 것이었으니 그저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었지요.

그런데 오래지 않아 진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친구는 걱정스러움(?)과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제게 다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넌 어떻게 트럼프가 이길거라고 생각했던거야? 난 정말 그가 당선될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거든.”

“그냥.. 뭐.. 알쟎아. 난 미국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니까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겠지. 그리고 정치권에서 일해본 경험도 있고..”

“아. 그렇네. 넌 그쪽에 프로페셔널이었지..”

이런.. 아직 친구는 제가 정치권에서 일할때 100만원빵 내기에서 진 흑역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어쨌거나 제가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던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자니 그냥 ‘난 나름 프로페셔널’ 이란 신비주의로 덮어버리는게 편할듯 하여 그리 마무리지어 버렸습니다.

지난 총선때는 안철수 공동대표가 몇몇 호남 터줏대감 격의 의원들을 이끌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나가는 순간 나중에 재탄생한 더불어민주당이 엄청난 결과를 낼거라는 예측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결과는 저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트럼프의 당선과 예상을 뛰어넘는 민주당의 승리, 그리고 이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어느 후보도 문후보를 넘어서지 못 할 것이란 점, 대선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거라는 점 등을 다 꿰맞췄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권 교체 과정에 나타난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이 있기도 했고, 어지간한 흐름은 여러분들도 다 예측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예측이란게 그리 용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면 결과를 다 알고난 지금에서는 지난 과정들이 모두 하나의 결과로 수렴되는 단계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정작 그 한 단계 단계마다 고비처나 변수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선거의 경우 어떤 변수는 그냥 쉬 묻혀버리게 되고 어떤 변수는 생각지도 못한 큰 눈덩이가 되어 판세를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쉽다면 쉽고 알쏭달쏭하다면 알쏭달쏭하기도 한 결과를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 걸까요?

저라고 여기에 해답이 있는건 아닙니다. 그런 재주가 넘친다면 정치 컨설팅을 하고 있거나 돛자리를 깔고 그 재주로 돈을 쓸어담고 있는게 낫겠지요. 그러나 저 나름대로의 판별법이 있긴 한데.. 물론 통밥이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법이기도 합니다만 그 비결을 간략히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정치 정당이나 정치인의 선호도, 지지율 등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격차가 적어도 10~15% 이상 나지 않는 경우라면 숫자 이면의 행간을 읽어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즉, 숨은 민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숫자로 표현된 민심은 드러나 있는 민심이기도 합니다. 종종 어떤 의도를 갖고 왜곡된 방식으로 조사 결과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숫자놀음의 결과는 무시할 수 없는 법이죠.

자, 먼저 숫자로 드러난 민심을 생각해 볼까요. 일단 이 드러난 민심이 열망에 기인한 것인지, 분노에 기인한 것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망에 기인하고 있다면 그 기대를 담고 있는 그릇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죠. 기대심리로 부풀어 있는 민심에 끊임없이 일관된 메세지를 뿌려주고 있는 정치 집단이나 정치인이 있다면 그 실체는 확인된 것입니다. 만약 분노에 가득찬 힘이라면 그 격정적인 불만을 애매모호하게 사회나 시대에 터트리게 하지 않고 특정 대상으로 몰고가 타켓화 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집단이나 정치인이 있는지, 그리고 그 불만에 대한 대안으로서 객관적인 자격을 갖추고 있거나 그리 할 수 있을법한 명분을 쥐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할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요소가 갖춰져 있다면 이 민심은 실체가 꽉 차있는 무서운 힘일 것입니다.

문제는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된 민심입니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우선 그 에너지를 읽어냈다 하더라도 개별적으로 잠자고 있는 민심이 결집되지 못할때는 결과적으로 큰 변수로 남지 못하게 되는데 있습니다. 이런 경우 탁월한 직관력으로 잠재된 민심을 읽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대 해석한 나머지 대세를 잘 못 읽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실패는 민심이 구체적인 대상을 정해 결집하지 못하는데 있는데,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결집되지 못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민심을 그 결과로만 판단하여 간과해 버릴경우 어느 순간 태풍이 되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풍이란 것이 일단 그 핵을 형성하면 엄청난 힘으로 커지는 것은 순식간이니까요.

가장 읽기 어렵고도 단언하기 힘든 강력한 민심은 대놓고 결집되지는 않았으나 최종 투표장에서 각개로 결집될 수 있는 민심입니다. 이른바 ‘두고보자’ 민심이지요. 저는 선거같이 정치 지형과 역사를 결정짓는 중대한 승부처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됨에도 불구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개별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인간이 벌리는 가장 큰 텔레파시적 행동이 아닐까 합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들이 하품을 할때 자신도 모르게 하품을 같이 하고 있듯이.. 누구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지만 마음 속에 비슷한 심적 작용이 작동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 심리는 ‘심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강렬해 지는데, 이것이 어떤 강력한 명분이나 구심점이 있을 때는 드러나는 민심으로 변하겠지만, 그런 핵이 될만한 요소가 없거나 딱히 외부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운 여건에서는 잠자는 사자처럼 잠재된.. 그러나 그 결과는 무섭게 응집될 수 있는 파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세상 어느 곳이든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보장된 곳이라면 정치적 이견은 늘 50대 50에 근접한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숨어있는 민심이 잠자는 듯 숨어있다가 최종 결과에 뜬금없이 응집되어 나타나게 된다면 이는 큰 파급과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죠. 어째든 이런 흐름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읽는다면 앞에서 말씀드렸던 저의 예측들은 지극히 그리 단정지어볼만 한 것들이 아니었을까요?

당시 박근혜 정부나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리던 유권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려 하려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몇몇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엔 문재인 측과 안철수 측이 벌이는 불협화음이 싫던 유권자들, 그리고 단순히 전라도 세력을 지지한다는 오명을 듣기 싫어하듼 유권자들이 상당히 많았고 이들이 많은 부분 응집되지 못한 채 그저 반정부-반한국당 정도로 남아있던 차에 안철수 대표가 호남에 지역기반이 두툼한 의원들을 대거 끌고 나갔으니 가장 원했던 깔끔한 명분을 안겨주었던 것이죠. 이제 그런대로 새정치민주연합에 우호적인 정도의 태도를 보이던 유권자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정치적 열망과 분노의 표심을 이후 정립된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밀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영남 출신인 안철수란 정치인 덕분에 호남세력 일부를 잃고 전국 정당의 명분을 쌓은 셈인데. 공교롭게도 안철수 대표가 이끌고간 정치인들 중 많은 이들이 지역 기반에 기대어 대승적 길을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인식되던 사람들이었으니 당시 총선에선 나름 선전했는지 모르나 그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자충수가 된 셈이니 이것도 정치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어쨌거나 숨겨진 민심이 진짜 표심으로 최종일에 뭉칠것으로 봤던 저는 트럼프의 당선을 (그것도 친구의 상상보다 큰 압승을) 예측했던 것입니다. 이래저래 몇가지 기준점을 보고 예측을 해보는 저만의 방식을 말씀 드려봤는데, 이런 식으로 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일찌기 예측해 본 상태입니다. 정확히는 안희정 전충남지사의 스캔들이 터진 순간 얼추 흐름이 예상되더군요.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 하신지.. 또 저의 예상은 어떤 결과를 보일지 자못 궁금하긴 합니다. (저의 예상에 대하여 여러분께서 궁금해 하신다면 다음 글에 이번 선거 결과 예측을 짧게 코멘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러분..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길게 말씀드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목에 적어두다시피 바로 KR이 내포하고 있는 민심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네요. 오늘의 글은 이쯤 마무리 하지만 다음 후편을 위해 같이 생각해볼거리를 여러분에게 안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KR에는 분명 잠자고 있는 민심이 있습니다. 물론 입장은 각기 다르고 의견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제 느낌에는 잠재되어 있되 잠자고 있는 듯 보이는 민심이 큽니다. 이 민심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스팀잇이 갖고 있는 특유의 시스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그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눈이 내리는 4월의 밤..KR 의 일원인 연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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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연어입니다. 문화란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어찌하여 인류는 끊임없이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왔을까요? 저는 문화를 만들고, 전파하며, 이어오는 이 모든 활동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종종 의문을 갖곤 했습니다. 헌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문화에 대한 큰 힌트를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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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위 노래에 중독되어 있는데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모모랜드의 ‘뿜뿜’이란 노래입니다. 어느날 유투브를 보다가 제 계정으로 자동 추천되어 온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처음엔 비트가 좀 괜찮군.. 하는 정도였다가 이내 자꾸 반복해 들으며 리듬을 하루 종일 뇌리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언제까지 이 노래만 듣고 있을까요? 한 주 더? 한 달 더? 아마.. 머지않아 그렇게나 신나게 들었던 이 노래를 접고 또 다른 노래에 흠뻑 빠져 있겠죠. 전에 강남스타일이 히트를 치고 있을 때 여자친구로 부터 한소리 듣던게 생각나는군요.

“오빠! 하루종일 강남스타일 들으면서도 지겹지 않아?”

뭐.. 그때는 지겨울 틈이 없었는데.. 당연지사 어느 순간부터는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네, 바로 이런 것이겠죠. 문화란 것이 향유되며 전파되다가 어느 순간 트렌드가 바뀌는 데에는 인간이 느끼는 특유의 ‘지겨움’이란 것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문화를 일으키고 발전시켜가는 큰 원동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들어도 들어도 절대 지겨운 음악이 없다면 빌보트 차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만들고 인기를 끄는 노래 하나로 거의 영원히 지속될런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노래를 제낄만한 노래가 새로 탄생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슈퍼주니어의 노래가 대만에서 121주 연속 1위란 기록을 세웠지만, 그 또한 여러 노래들이 연달아 히트를 치며 이어진 것이고, 1위의 아성도 어느 순간 내줄 수밖에 없었죠. 이렇듯 아무리 재미있고 인기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대상을 식상해 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새로운 문화 컨텐츠들이 비비고 들어올 여지가 생가는 것이겠죠.

또 하나 생각해 볼만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앞의 경우와 정 반대인 ‘그리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지겨움’이란 것이 있다면, 그 건너편에는 ‘그리움’이란 것이 자리잡고 있나 봅니다. 이 ‘그리움’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익숙함’이란 이름으로 다시 그 대상을 불러 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쉬 음식에 대한 기호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사람은 한식에 익숙하고, 중국 사람은 중식에 익숙하지요. 아무리 다른 나라의 음식이 맛있고 혀에 새로운 자극을 주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익숙한 맛을 그리워 하게 됩니다. 대개는 엄마의 손맛에 대한 기억과 함께 다가 오겠지요. 이렇게 ‘익숙함’은 우리 내면에 차분하고 안정된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왠지 힘들고 괴로울 때일수록 집밥, 내 가족, 내 나라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이 형성한 이런 특유의 작용 때문이 아닐런지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안에 어떤 리스트들을 차곡차곡 쌓아가지 않나 합니다. 한 때 내가 정말 좋아해서.. 지겨운 듯 하다가도 다시 생각나고 즐기고자 하는 어떤 것들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새로운 음악에 마음을 열지 않게 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좋아하는 음악들이 쭈욱 들어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굳이 새로운 노래에 심취하지 않더라도 이미 내 안에는 수 많은 아름다운 곡들이 리스트로 등재되어 있지요. 그저 나는 그렇게 익숙하고 그리운.. 그럼에도 다시 들으면 신나는 음악들을 그저 끄집어 내면 됩니다. 이건 비단 음악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도구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굳이 스마트폰의 화려한 기능과 가능성에 매혹될 일 없이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피쳐폰이 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유는 별 것 없습니다. 익숙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하고픈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타이핑보다는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하고 더 정겨운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나날이 발전하는 문명의 이기를 외면할 순 없는 세상이지만.. 때로는 타이핑보다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더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것… 이런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젖어든다’ 것이 아닐런지요.

정리하자면, 인간이 향유하고 가꾸어가는 문화라는 것은 이렇게 ‘지겨움’에서 탈피하고자 새로운 것을 만들고 받아들임과 동시에, 잊을만 하면 다시 되뇌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 묻어있는 과거의 향수와 익숙함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두 가지 상황이 맞물려가면서 지속되는 것입니다. 간혹 유투브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될 때가 있는데, 유투브가 바로 이런 원리를 잘 활용해 볼만한 컨텐츠를 푸쉬해 주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꽂혀있는’ 주제와 과거 한 때 즐겨 보았던 주제를 적절한 비율로 버무려 리스트를 만들어 주고, 때로는 거기에 매우 생소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 새로운 자극거리가 될만한 내용을 종종 넣어주니까 말이죠. 아마 이 모든 것이 인공지능화 되어 소팅(sorting)되는 것이겠지만, 이런 알고리즘을 짠 데에도 역시 사람들의 통찰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이런 문화를 즐기고 가꿔가는데 있어 이 두 가지 특성을 잘 인식하며 이해하고 있다면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글로 설명해 보았습니다. 문화란 것이 중간 중간 큰 충격을 통해 쇄신되고 변혁을 이루는 것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엮이며 흘러가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는 또 모모랜드의 ‘뿜뿜’에 빠져듭니다. 오늘도 이 음악에서 헤어나기는 힘들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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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것

연어입니다. 요즘 세간에 MB정권이 난도질해 놓은 포스코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합니다.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란 명목을 앞에서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란 것이 체결되었고,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이를 계기로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대일 청구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많은 국민과 학생들이 굴욕적인 외교라며 공분을 표출했고, 대학생 신분이던 이명박 전대통령 역시 반대 데모를 주도하다 투옥까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인가요? 그렇게 국민으로 부터 욕을 먹어가면서 얻어낸 자금으로 만든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을 다른 누구도 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 형제가 해먹다니요? 아직 정식으로 검찰 수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정황과 쏟아져 나오는 증언에 비추어 보면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 사례로서 대한민국 역사에 남게될 것이 자명합니다.

오늘은 4월 3일, 제주의 아픔을 기리는 날입니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공판이 있는 날이기도 하네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부구치소에 갇혀있고.. 지난 일요일 친구를 만나러 동부구치소가 있는 문정동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만,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저 구치소 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자국민에게 가해진 계엄령과 학살, 국민으로 부터 쫓겨난 대통령, 국가권력을 동원한 이권챙기기.. 그야말로 이런저런 사건들이 얽히고 얽혀 대체 국가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사실 저희 집안은 제주 4.3 희생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여순 사건(麗水順天事件)의 최대 피해 집안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에게, 그리고 집안 전체에 들이닥쳤던 엄청난 비운을 그냥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 듯 떠나보내려 하시지만, 젊은 혈기로 가득 차있던 저는 한 동안 국가를 상대로 사건의 진상 규명과 공식적인 사과, 배상 등등을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게으른 탓일 수도 있고 아버지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기도 해서 아직 실행에 옮기고 있지는 못하지만.. 제가 ‘최대’ 피해자라고 얘기할 수 있을만큼 역사의 중심에 계셨던 친할아버지의 영혼을 달랠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몇 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집안 어르신 중에 아직 그 내막을 간접적으로 알고 계신 분이 저와 아버지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저희 집안.. 특히 저희 할아버지께서 겪으셨던 일을 어느 역사학자 분께서 여순사건에 대한 진실과 가치를 규명해 나가다 접하게 되셨고, 이를 역사 소설로 집필하고 계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피해 당사자의 후손인 제가 해야할 일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분이 되었든 진실을 밝히고 역사적 가치를 정립하려고 하는 분이라면 그저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응원해마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핏 네이버를 통해 보니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는 이효리 씨에게 제주 4.3 행사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오갔던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막을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마 이런저런 정치적 입장 때문에 오가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확정되었을 때, 노벨위원회의 군나르 베르게씨가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오래전부터 인터넷에 떠돌던 이야기지요. 아직 사실 여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난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말라고 한국인들에게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고, 모두 특정 지역에서 날아온 편지였다.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나라에서 반대를 표시하는 편지가 날아온 것.. 그것이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그 지역의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이구.. 자료를 찾다 보니 MB 정권이 노벨 평화상 취소 청원 운동을 기획하기도 했다는 얘기까지 있군요. 할 말을 잊게 만드는 하루인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국가의 존재 이유로서 가장 손꼽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국민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국가가 나약하여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 했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되려 국민에게 가해를 했다면 국가는 이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다시금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있었던 제주 4.3 기념식 또한 그 일환으로 본다면 정치적 입장은 그저 소소한 투정일 뿐입니다. 부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국가로 부터 국민이 보호 받지 못하거나 가해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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