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 판결을 받으며 일단락 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기억하십니까? 당시 너무나 큰 반향 때문이었는지 비슷한 맥락의 책들도 수루룩 나오곤 했었습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일본은 있다’였는데, 그 책에는 일본이 영미 문명을 처음 접할 당시 완벽한 소통을 위한 통역사를 키워냈던 과정이 실려 있습니다.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서양인이 머물던 곳으로 어린 아이를 매일 보내며 양쪽 언어에 능통한 통역가로 키워냈다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구한말 영어에 능통했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캐다보면 생면부지의 영어를 어떻게 익히고 사용했는지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어떤 책에서 봤는지 역시 기억이 안 나지만.. 구한말 즈음 급작스럽게 중국에 파견을 나가게 된 미국 여성이 남긴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본인이 중국어를 잘 못하다 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해 고민한 끝에 도서관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도서관 기록상 영어 공부 서적을 가장 자주 대여해 간 사람을 찾게 되었는데, 어느 구한말 조선인(대한 제국인가? 이하 한국인이라고 합시다)이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던 점은, 이 한국인에 대해 두 번 놀란 경험을 말하고 있는데, 맨 처음 만났을 때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이었고(그럼 책은 대체 왜 빌렸대? <- 이런 표정?).. 그 후 몇 달 만에 이 사람들 다시 봤을때 너무나 유창하게 영어를 할 줄 알게된 사실에 또 놀랐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실에 주목하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니, 그 분이 이미 우리에게 뭔가 영어 습득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요즘들어 많이 바뀌긴 했겠지만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영어 교육은 여전히 문제점이 많은 듯 합니다.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해 사회에 진출한 젊은 친구들을 보면 여전히 자신의 영어 실력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영어 습득을 위한 대중적 교육은 뭔가 잘 못 되어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리고 그 대중적인 어학 교육의 뿌리가 일본이라고 하면 그 또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은 이미 그 옛날 완벽한 통역사를 키워낼 만큼 수완이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죠.
지금 일본과 한국을 비롯해 동북아 영어 교육의 기본틀을 완성한 사람이 누구 였는지 우린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었는지 어떤 기관이었는지, 책을 출간한 출판사였는지 간에.. 전 그러한 기틀을 만들어 낸 사람의 이름이 ‘고노무섀키’가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노무섀키’씨는 대체 무슨 일을 해낸겁니까? 아마도 그 분은 상대 언어를 이해하고 모국어와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기 보다는 번역을 위한 공식들.. 일종의 번역 매뉴얼만을 만들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폐단을 일으킨 것인지 그 ‘고노무섀키’씨는 알고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경로 의존성’이란게 있습니다. 잘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그 옛날 고대 로마시대 마차의 두 바퀴 간격은 말 두 필의 엉덩이보다 약간 큰 것이 표준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표준이 다시 철로의 양쪽 간격이 되고.. 로켓의 부품을 기차로 실어 나르다 보니 마침내 로켓 제작의 표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초기의 결정이 하나의 경로처럼 먼 나중에까지 작용을 합니다. 성문 기본 영어를 보며 영어를 배워야 했던 우리 세대가 느끼는 피해 의식도 어쩌면 ‘고노무섀키’씨의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릅니다.
‘전치사와 기본동사의 combination’.. 일명 ‘숙어’라고 일컫는 여러 상용구들을 우리가 안 배운게 아닙니다. 근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닮다’라는 표현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정도의 표현은 배웠을 겁니다. 두 표현이 서로 100% 같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쨌거나..
resemble take after
한국인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take after보다는 resemble을 더 즐겨 쓰게 될 겁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 resemble 보다는 take와 after란 단어가 더 쉬운데 말이죠. 제가 지금껏 써온 글에 공감하고 계셨다면 제가 어떤 논지로 말씀드리는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유야 간단합니다. take가 들어간 모든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take에 수많은 뜻풀이를 시도했고, after도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풀어보기 위해 수많은 뜻을 주렁주렁 달았을텐데, 두 단어가 갖고 있는 그 많은 뜻들중에 어떤 뜻과 어떤 뜻이 어울린건지 단박에 알아낼 수 있을까요? take가 10개의 뜻을 갖고 있고, after가 10개의 뜻을 갖고 있다면 가뜩이나 어떤 뜻을 뽑아 쓴건지 헷갈릴 차에 두 단어의 조합인 take+after는 ‘숙어’라는 이름으로 한 가지 더 외워야 하는 새로운 단어일 뿐입니다. 그럼 누가 그 고생을 하며 take after를 뽑아 쓰겠습니까? 저라도 그냥 resemble이란 단어를 뽑겠습니다. resemble을 찾아보면 뜻이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위 예에서 보듯이, resemble는 take에 비한다면 특수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take는 resemble에 비교하여 일반해입니다. 아인슈타인도 특수상대성 이론을 뛰어넘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집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보다 쉽고 범용적인 답이 일반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껏 일반해를 찾는 과정을 멀리하고 자꾸 특수해를 좇겠금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우리는 쉬운 길을 놔두고 자꾸 어려운 길, 남들과 소통이 더더욱 힘든 길로만 걸어온 셈입니다.
최근 불고있는 대부분의 영어교육 역시 기존에 답습해 왔던 영어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모든 걸 잊고 새로 담아라! 좋은 모토입니다. 사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헌데 우리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대부분 몇 년 어학 연수를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원어민과 얼굴 맞대며 매일 얘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겁니다. 기존에 배워온 영어에 대한 지식과 습관이 새로운 교육 방식과 충돌을 일으키기 일쑤인데,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저는 지금껏 받아온 영어교육이 비록 문제가 많을지언정 나름대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익혀온 것이라면 최대한 잘 고쳐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잡다한 풀이와 설명을 위한 설명들.. 이런 것들을 최대한 삭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쉽고 간결한 일반해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세부적인 특수해들은 잊어버려도 충분히 찾아내고 응용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그렇게 시험해 봤습니다.
에피소드이지만.. 제가 스스로 이 방식을 탐구해보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민은 무지 했습니다) 3일 정도 고민하니 그 뼈대를 잡을 수 있었고, 직접적인 응용과 테스트를 위해 수많은 외국 친구들와 대화(주로 채팅)를 시도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아리비아, 러시아, 우크라이나(아쉽게도 미녀는 아니었습니다 ㅋ), 우즈베키스탄.. 기타 수많은 외국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제가 생각한 방식의 영어를 맘껏 써봤습니다. 물론 이 중엔 영어 원어민도 있었습니다. 저는 원어민 친구들일수록 제가 사용하는 조어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 궁금하였습니다. LA와 캘리포니아에 산다는 친구들이 명쾌한 답을 내려주더군요.
“너는 영어 문장 만드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저는 지금껏 이 한마디 만큼 저의 공부와 연구(?)에 대한 보상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내 영어가 통하는구나..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건 비록 이상하게 꼬인 방식으로 영어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잘 고쳐쓰면 빠른 시간내에 보다 쉽고 간결하며 영어권 애들의 사고방식에 접근할 수 있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영어 전공자도 아니고, 어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외를 밥먹듯이 다니는 처지도 아니고, 외국인과 얼굴 맞대며 살아가는 환경도 아닙니다. 하지만 영어란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익혀서 써먹어야 하는지는 극적으로 체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그 수준을 높여가보려 노력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처음 이곳 스팀잇이란 곳에 왔을 때.. 제가 참여할 수 있는 여러분과의 공통분모가 뭘까 고민하였습니다. 영어권 사람들에게 최적화 되어 있는 이 스팀잇에서 kr이란 울타리를 뛰어 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스팀잇이란 곳에 발을 디딘 것 자체가 영어란 장벽을 어느 정도 넘어설 수 있다는 의미일수도 있겠지만 보다 많은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면 좋은 컨텐츠와 언어에 대한 장벽을 낮춰주는 것이 급선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서 짧은 지식이나마 저의 경험을 빌어 이 연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살고 계셨을 ‘고노무섀키’씨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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