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북경에서 유학온 중국인 여자를 사귄 적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한국어에 워낙 능통한 친구여서 인기 많은 한류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중국어 자막처리 해주는 자원봉사(?)를 하기 일쑤였습니다. 저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는데, 일단 한국에서 드라마가 시작되면 세계 도처에 퍼져있는 중국인 한류 팬들이 인터넷으로 한국어 방송을 시청하는 동시에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 번역해주는 대사를 보며 대략의 스토리와 내용을 이해해 나갑니다. 이후 약 한 두 시간이 흐르면 정식 자막팀이 제작한 자막판이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는 식이죠. 이런 작업을 정기적으로 해주다 보니 전 세계 중국인 한류팬 사이에 여자 친구의 존재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여자친구와 함께 대만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제 여친을 향한) 대만 팬이자 친구인 지인이 연일 가이드를 해 주었고, 덕분에 처음 간 여행치고는 현지인이 아니면 잘 모를 여행지 구석구석까지 다 훑고 다닐 수 있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대만에 가기 전부터 저는 대륙 북경에서 온 제 여자 친구와 그 대만 친구가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같은 중국어라 하더라도 뭔가 다르지 않을까 했으니까요? 아마도 홍콩 등에서 사용하는 광동어를 거의 못 알아듣는 여자 친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헌데 이건 뭐.. 정말 완벽히 소통이 되더군요. 물론 약간의 표현 방식이나 억양은 조금 달랐겠지만 말입니다.
당시 막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던 저는 두 친구의 대화를 옆에서 귀동냥하기 바빴습니다. 기초 단어도 잘 모르던 저의 귀에 유독 많이 들리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그래서’란 뜻의 ‘所以~ 쏘이~’ 였습니다. 이 단어가 하도 인상이 깊어서 그랬는지 이후 중국어 공부를 할 때 두 가지 방법을 테스트 해보았습니다. 좀 쉽게 비유하기 위해 문단 하나를 발췌해 보았습니다.
“돈을 벌면 벌수록 외로워지는 상황에 빠지곤 합니다. 뭔가 행복해지려고 돈을 버는 것인데 참으로 아이러니하지요? 외로워지는 길이란게 그닥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볼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대신에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 온 사람들, 또는 과정은 좀 다르더라도 마찬가지로 외로운 길로 들어선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지요.. 이해 타산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 그런 이유만으로 의기투합 하는 것도 어려울테니.. 마침내 그저 취미나 공유하고 일정부분 시간과 유희를 같이 즐겨줄 수 있는 멤버를 찾게 되는건 아닌지..”
첫 번째 방법은 일반적인 명사들을 중심으로 파악해 보는 것입니다. 키워드 위주로 보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 쉽게 편집해 보겠습니다.
돈… 외로워… 상황… 행복.. 돈을 버는.. 아이러니.. 비슷한 길.. 사람들.. 과정.. 외로운 길.. 사람들.. 이해 타산.. 세상.. 모르는 사람.. 그런 이유.. 취미 공유.. 시간.. 유희.. 멤버..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대로 맥락은 잡아볼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다른 방법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수록… 합니다. 뭔가… 하지요? … 란게… 없으니… 대신에.. 또는… 마찬가지로.. .. 하나 봅니다. 하지만.. … 만으로 …. 테니.. 마침내 그저.. … 건 아닌지..
자, 이번엔 일종의 ‘구문 형식’에 초점을 맞춰 글을 해독하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안에 담겨진 내용은 알기 어렵지만.. 작자의 전반적인 어투나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네, 결국 글이나 말이란 것은 이렇게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키워드들과 구문으로 나뉘어 들어오게 되고.. 우리는 이를.. 즉 내용과 구문 형식으로 분리될 수 있을 법한 것을 다시 조립하여 비로소 그 내용과 맥락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얘기 드리고 싶은 것은 이 두가지 중 후자쪽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 쓰는 태도, 즉 상대방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늘 그래왔다고 해야할지.. 최근 들어 더 격해지고 있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저 연어를 포함한 여타 많은 KR 이웃분들이 원하시는건 조금은 더 정제되고 가다듬어진 표현이나 어투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내용만 끄집어 내서 본다면 구구절절이 옳거나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주장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문장 하나 하나, 문맥 한 곳 한 곳을 메워나가는 역할을 하는 구문들이 거친 표현과 과격한 전환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은 그 내용 보다 불편함이 먼저일테지요.
우리는 핵심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나 논지, 논리적 구성 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들을 엮어내는 구문들이 어떻게 엮여있고 구성되어 있는지 까지 살펴보게 되지요. 그리고 어쩌면 그 내용보다 이런 구문적 흐름이 매끄럽고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는지, 묵직하고 단단하게 연결되어 가는지..급격한 변환을 이루며 격정을 쏟아내려 하는지 등등을 통해 상대방의 태도나 감정 상태를 읽어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 대화를 원하거나 상대방 행동과 생각에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좀 전략적이라 하더라도) 나의 말과 글이 어떤 구문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한 번쯤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조금 더 평화롭고 발전적으로 공존하는 데 있느 그 첫걸음이 될런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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