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μ„œλ‘œμ˜ μž…μž₯μ΄λž€ 것

연어입니다. 요새 이런저런 이유로 포스팅들을 탐독하지는 못했습니만 대략이나마 논의 중인 흐름들은 놓치지 않으려 해왔습니다 . 여기엔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온 어뷰징 문제, 그리고 증인에 대한 문제들이 있지요. 물론 이 문제에 관한한 우리 모두가 이해 당사자인 만큼 논의 되고 있는 문제들을 쉬 무시하고 넘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자신의 입장을 잘 정리한 포스팅들, 그리고 곱씹어 볼만한 논지가 담겨 있는 포스팅들은 꾸준히 리스팀 해두기도 하였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한쪽 입장에 방점을 찍어주기엔 난처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아마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1) 우선,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정녕 이 문제에 정답이란게 있을까요? (2) 의도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1)의 경우, 사실 나름의 기준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하시는 분들이나, 고민 끝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시는 분들이나 모두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분명 ‘적절한 합의점’을 원하고 계신 것 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합의와 타협이란게 좀처럼 되지는 않나 봅니다. 이것이야 말로 스팀잇이란 블록체인형 SNS 위에서 겪게 되는 영원한 숙제가 아닐런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2)의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엔 정치권에서 일했던 경험도 적쟎이 작용하고 있는데, 여러 정책들이 처음의 의도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효과와 결론을 보였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종 나의 ‘선하고 정의로운’ 의도나 확신이 과연 예상대로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런지 점점 더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짧은 제 생각입니다만.. 일단 나와 다른 입장을 보이는 상대의 의견을 미리 최대한 경청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 주장이 억측과 단견처럼 들릴지라도 잠시 득도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죠. 물론 이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겁니다. 저도 늘 그렇거든요. 그러나 설령 지금은 나의 논지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 하더라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판도가 상대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맞고 내가 틀렸다.. 상대가 나를 꺾고 말았다.. 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크게 보면 상대와 나의 의견은 모두 좋은 결과를 도출해 보기 위함이었을테고 세상의 흐름이란 것이 브라만 운동처럼 이리저리 부대끼고 움직여 가는 과정에서 쉽게 예측하지 못 한 쪽으로 움직여 가는건 어쩜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서 나의 확신과 예측이 틀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 또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습니다. 입장은 더더욱 다를 수밖에 없죠. 사고 방식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데 비슷한 의견이 나온다는 것이 저는 더 이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유전자란 것이 늘 자신과 다른 요소를 살짝 받아들여 더 나은 쪽으로 진화해가려 하듯이, 나와 다른 의견의 일부는 한 번 더 이해해 보려 하고, 더 나아가 ‘옛다, 속은셈 치고 한 번 받아준다’라고 너스레도 떠는 여유가 있으면 어떨까 합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 스팀잇 공간만큼 참여자 분들이 점쟎고 매너있게 행동하는 곳도 없다 봅니다. 대책없이 날선 주장들보다는 논리와 근거로 무장한 주장들이 묵직한 기운을 담아 포스팅으로 올라오는 곳이 이곳 아니던가요? 어쩌다 보니 오늘 제 글은 매우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로 마무리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을 몸 담아온 스팀잇 kr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사견으로 봐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함께 가는 길이 늘 직선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서로 의견을 꾸준히 나누며 걸어가다 보면 어느 시점엔 합치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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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연어입니다. 아침에 잠시 잠을 깨자마자 순간 꿈꾸던 내용이 기억나 핸드폰 메모장에 간략히 적어두었습니다. 다시 잠을 청한 후 일어나보니 이미 꿈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전 아무래도 꿈을 잘 기억하지 못 할 정도로 기억의 휘발성이 강한가 봅니다. 어쨌거나 비몽사몽간에 기록해 둔 내용을 보고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오더군요. 가물거리던 기억도 어렴풋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꿈에서 저는 스팀잇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학우들은 kr 여러분들이지요. 헌데 평소 독설도 심하고 사람 괴롭히는걸 좋아하던 이름모를 학우가 이번에 저를 폭로하며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가던 중이었나 봅니다. 폭로 내용은 제가 마카오를 드나들며 해외 원정 도박에 빠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분위기상 저의 원정 도박(?) 비용의 많은 부분이 스팀잇 포스팅 보팅 보상에서 충당 되니 연어에겐 보팅하지 마라.. 뭐 이랬던 것 같습니다. ㅋㅋ 뭐 꿈 치고는 앞뒤 연결이 그럴듯 하지 않나요?

꿈 속에서 전 ‘뭐 이런 어이 없는 경우가..’ 하며 이 곤란한 음모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머리를 긁적였던 것 같습니다. 헌데 비록 꿈 속이었지만 이런 생각을 했지요.

‘나를 모함할 수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근거를 갖고 하던가 하지. 왜 폭로자(?)가 증거를 갖고 나의 잘못을 다그치는게 아니라, 내가 나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잘못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거지?’

이렇게 꿈속에서 뭔가 어이없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하던중 잠시 잠이 깼던 것 같습니다. 대개 꿈이란 것이 아주 허황되고 황당한 스토리라기 보다는 나름대로 맥락도 있고 근심거리나 인상 깊었던 일들, 사람들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구성되기 마련이니 이 꿈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새 사회 분의기나 스팀잇 활동을 하고 있는 저의 상황들이 재미있게 짜집기 되어 독특한 맛(?)을 냈다는게 한편 재밌기도 합니다. 어쨌든 스팀잇과 관련된 꿈으로서는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만약 꿈을 계속 연결해서 꿨더라면 제가 어떻게 대처해 나갔을런지, 여러분들의 반응은 어떻고 또 어떤 흐름으로 연결되었을지 자못 궁금하기도 합니다. 왜 하필 그런 와중에 눈을 떠버렸을까요? ㅋㅋ

어제는 은퇴 후의 전원생활을 꿈꾸며 틈틈이 자신만의 정원겸 동산을 가꿔가는 분을 좀 도와주고 왔습니다. 동산에 엉겅퀴도 심고 그랬네요. 한때 저도 전원생활이란 것을 동경한 나머지 전원주택에 대한 책도 사고 공부도하고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헌데 지금은 되려 은퇴 이후 도시생활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 때 전원생활을 동경했던 이면에는 어릴적부터 도시에 살면서 시끄러운 차 경적소리와 밤공기를 가르는 모터사이클(폭주족)의 굉음.. 늘 시끌거리는 창밖 소음 등에 지치기도 하고, 언젠가 어릴적 여름 방학때 외가집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 때문에 공기 맑고 소음없는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헌데 사회생활에 지치고 만빵 받던 스트레스를 되려 잔잔한 도시의 야경으로 달래고, 사람이 많은 곳에 몸 부대끼며 살아야 타인들로 부터 에너지를 충전받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면서 부터는 오히려 도시생활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넥스트 신해철 노래의 가사처럼 무미건조한 시티라이프가 현실이기도 하지만, 촌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동경하던 도시 생활로 부터 다시 전원의 삶을 꿈꾸는 그분이 있다면.. 도시에 태어나 북적임 없는 전원을 꿈꾸다가 다시 도시의 생활 속에 안착하며 여생을 보내지 않겠냐는 저나.. 사람이 선호하는 삶이라는게 이렇게 시대, 나이, 트렌드에 따라 바뀌어 가는 것인가 봅니다.

하지만 그분과 저의 공통점은 나중의 전원 생활이란게 어릴적 촌생활보다 더 여유있고 높은 수준의 그것일테고, 나중의 도시 생활 또한 더 깔끔하고 운치있는 그것일테니 어느 쪽이든 더 나은 생활 환경을 바란다는 것이지요. 이 또한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사람이 갖는 본연의 바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팀 가격도 그렇고 여타 암호화폐 시장이 소강 상태인지라 슬기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기간을 넘기며 자신의 더 나은 삶과 연결시켜 갈 계획이 필요할 때입니다. 좋은 계획과 단호한 실천으로 그 어떤 것이든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모두들 소중한 일요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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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입니다. 저는 지금 빨래방에서 빨래를 돌리고 있습니다. 남자 특유의 귀차니즘 때문에 계속 미뤄오던 빨래를 날잡아서 한번에 돌리곤 하는데, 언제부턴가 빨래방에 맛을 들여 이렇게 왕창 몰아서 처리하곤 합니다. 날이 추울땐 귀차니즘이 극에 달하는데.. 나날이 양말과 속옷을 쌓아두기만 하다가 결국 대형 마트에 들를 일이 있으면 부랴부랴 새것을 사서 땜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양말이 엄청 많아진 것 같기도 하네요.

날도 좀 풀렸겠다, 몸도 거의 나았겠다.. 자동 세탁기에 빨래만 걸어두고 산책이나 다녀올까 했는데 아직 미세먼지네 황사네 해서 밖을 돌아다니기엔 무리인것 같아 그냥 조신하게 기계 옆에 앉아 이렇게 포스팅 삼매경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문득 빨래방에서의 추억 한 컷이 떠오르네요. 3년 전 가을 때 마카오 친구와 대만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고, 마침 저도 상해 파견을 마무리 짓고 시간을 맞춰 일주일간 한국 가을 여행을 할 때 이야기지요.

그 해 여름 살벌했던 여름 폭서에 형형색색의 가을 낙엽은 커녕 말라 비틀어진 잎새들로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저의 호언장담이 완전 나가리(?) 될 위험에 처해있던 때입니다. 멋드러진 한국의 가을 풍경만을 고대하며 왔던 이 친구들이 남양주 한강변과 남이섬 단풍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씁쓸한 표정마저 짓더군요. 그리곤 한 마디 한게..

“그냥 다음 일정으로 일찍 가볼까요?”

이 정도였으니 어느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다음 행선지는 전주 한옥마을이었고, 우린 아름다운 한옥마을을 향해 다시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하게 되었지요. 다행히 한옥마을의 아기자기함과 한옥의 평온함이 이 친구들에게 반전을 한아름 선사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마카오 친구는 그 때 최고의 여행 경험으로 한옥에서 잠을 청한 후 일찍 일어나 처마 아래서 은은한 풍경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는 꽃차(花茶)를 마셨을 때를 꼽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평온해 지는지 그냥 전주의 한옥에서 평생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더군요.

이렇게 전주에서 현대와 전통의 조화를 한껏 만끽 한 후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젊은 외국 관광객에게 핫 플레이인 홍대쪽에 자리를 잡고 몇일간 서울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만끽했지요. 비도 좀 오고하니 그제서야 낙엽들이 촉촉해 지며 노오란 분위기를 한껏 풍겨주더군요. 비록 친구가 그토록 원했던 빨간 단풍은 볼품 없었지만 그래도 노란 은행나무들이 여기저기 사진 곳곳에 예쁘게 드리워져 그 나름대로 가을다운 운치를 더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여행이 시작된지 꽤 시간이 흐른지라 여행객의 골치거리인 빨래감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미 서울 곳곳엔 빨래방이 성행하던 터라 밤에 이 친구들을 끌고 홍대쪽 한 빨래방에 터를 잡았습니다. 한글로 된 설명서를 읽으며 동전을 넣고 작동해 보는게 너무나 재미있는지 저에게 절대 도와주지 말라면서 제 도움을 거절하더군요. 다들 나름대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와서 여행지에 직접 써보려 부단히 애쓰던 친구들이니까요. 옷을 고르며 여직원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말이 통하는게 어찌나 신나는지 함박 웃음에 입에 귀에 걸릴 정도로 한국어로 소통하는 여행에 빠져있던 차에, 한국어 설명을 해독하며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재미도 그 친구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합니다.

빨래를 돌리며 기다리는 시간동안 우린 마카오 친구의 제안으로 중국어 끝말잇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중국어 공부겸 한건데.. 사실 저와 중국어 끝말잇기를 하다보면 저의 엉뚱한 단어 선택이 그 친구들에게 배꼽이 빠질만큼 큰 웃음을 선사하곤 했거든요. 함께 카톡 채팅방에서 단어를 이어가는데, 저는 중국어 글자 하나를 어렵게 넣어(拼音 병음) 다음 자동으로 뜨는 글자를 선택하곤 하였습니다. 자동 완성기능 같은거지요. 그런데 종종 매우 특이한 글자 조합이 되곤 하는데 그 친구들의 박장대소로 봐서는 정말 엉뚱해도 너무나 엉뚱한 단어 선택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 정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게임에 참여했지요.

그러다 보면 우리들만의 유행어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성건강 男性健康’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이게 우리 사이에선 하도 히트를 쳐서 아직도 종종 ‘남성건강 중요해요’ 라며 농담을 주고받곤 합니다. 이런 히트어들은 아직도 그 어느 유행어보다 우리를 즐겁게하고 유쾌했던 그때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네요.

지금 세탁을 마치고 건조대를 이용하는 중입니다. 지금 혼자 덩그러니 앉아 타이핑을 하고 있지만,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때의 재미난 추억들을 상기하고 있네요. 정말 제목처럼 ‘모든 것이 함께 하면’ 추억이 되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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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ν•œ 번 λ°”κΏ”λ³ΌκΉŒμš”?

연어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헐리웃 배우를 꼽을 때 늘 실베스터 스텔론(Sylvester Stallone)을 빼놓지 않습니다. 근육질의 터프가이 쯤으로 알기 쉽지만 그의 영화를 보다보면 인생의 교훈이 될만한 주옥같은 얘기들은 직접 대사로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영화는 성룡처럼 직접 대본을 쓰거나 감독을 맡는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대사로 직접적인 얘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그만의 전매특허라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한번은 대형 서점에서 이런저런 취미활동 관련 책들을 뒤적이던 중, 그가 직접 화보 모델이 되어 쓴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운동을 하는 모습을 담은 화보 옆에 자그마한 글씨가 써있더군요.

“당신의 인생을 바꿔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당신의 몸을 바꾸도록 하라”

글쎄요. 아마 다른 운동 코치들이 그렇게 적어뒀다면 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평소 스텔론의 젊은 시절 고생담과 인생역전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 있던 저로서는 그 얘기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배고픔과 불안감을 늘 달고 살았지만 멋진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붙잡고 살던 젊은 청년은 손에 늘 아령과 운동기구를 놓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얘기를 허투로 넘길 것이 아닌 것이.. 곰곰이 되짚어보면 저 또한 나름 멋진 몸매(?)와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땐 제 인생에서 크고 긍정적인 변화가 늘 따라왔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라 하기엔 왠지 그의 메시지가 크게 울리는 것 같고.. 어쨌든 부인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게 준비해 나가며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에 있어 자신의 몸과 건강을 가꿔 나간다는 것은 큰 자양분이 되는 것이겠죠. 실베스터 스텔론의 인생관은 그런 점에서 크게 생각해 볼만한 화두가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시는지요? 저라고 그런 생각하며 사는 성찰인이겠습니까마는.. 전 그냥 발달된 의학 덕분에 인간의 평균 수명 정도는 살지 않겠나 여기고 있습니다. 비흡연자이기도 하고.. 좀 오래살 것 같다가도 그간 과식과 과음, 날밤까기(?) 등 제 몸에 무리가 되는 일들도 부지기수로 해왔을테니 평균만 되어도 이게 어디냐 하며 여겨야할 것 같거든요. 어찌하였든.. 그렇게 평균 수명으로 따져보면 인생 절반 정도는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절반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해보신다면 일단 건강을 첫째로 꼽지 않을까 합니다. 요근래 기침감기에 몸이 쩔어드는 것 같아 건강하고 활기찬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곧 찌뿌둥한 하늘이 가시겠지요? 금방 다가올 산뜻한 봄과 함께 저도 몸 관리와 컨디션 관리를 통해 제 운명을 더 크고 긍정적인 쪽으로 한번 끌어 댕겨봐야겠습니다. 여러분도 동참해 보시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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κΎΈμ€€ν•¨μ˜ 힘

연어입니다. 여러분의 종교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희 집안은 (굳이 따지자면) 불교를 믿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이란 첨언을 하는 이유는 많은 불자 집안들이 그러하듯 딱히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은 분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도 부모님께서 불교를 믿으신다고 ‘상기’해야 할만큼 제게 같은 종교를 강요하신적도 없고 그저 편안한 믿음으로 생활을 해오신 듯 합니다.

제가 저의 집안의 종교가 불교라는 것을 인식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도 그런 조사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릴적에는 학교에서 학생들 가정환경 조사란 명목으로 온갖 것을 다 확인하곤 했었습니다. 텔레비젼은 있느냐, 있으면 칼라TV냐 흑백TV냐..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그 어린 아이들을 통해 무슨 통계를 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늘 새학기가 되면 해야하는 통과의례 쯤 되었지요. 그런데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다음날 있을 질문 사항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주셨고 저는 마치 숙제인 마냥 꼬박 꼬박 하나씩 부모님께 여쭤보며 답을 알아 두어야 했었습니다.

“엄마. 우리집 종교는 뭐에요?” “종교? 불교지? 부처님 믿는다고 하면 돼”

저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도 잘 모르고 그저 이름과 존재 여부 정도만 알고 있던 터라 큰 불안감(?)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동네 놀이터에서 동네 또래들과 놀고 있다가 나이가 꽤 되는 (지금 생각해 보니 여고생이나 대학생 쯤 되었겠지요) 누나들을 따라서 교회라는 곳을 한 번 방문한 기억은 있었습니다. 뭐 그때는 사탕이나 초코파이만 준다고 해도 왠 떡이냐 하며 우르르 몰려 다닐 때 쯤이니까요. 어쨌든 저는 제 남동생과 밤에 이불을 덮고 이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쌨습니다.

“야. 큰일 났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우리 불교 믿는데. 부처님.”

“형. 어떡해? 하나님이나 예수님 보다 안 쎄쟎아?”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도 살리고 아픈 사람도 고치고 뭐 그러셨다는데 부처님은 한게 뭐있지?”

“난 몰라. 형은 알어?”

“나도 모르지. 나만 우리반에서 불교 믿는집에서 살면 어떡하냐. 아. 미치겠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다음날 등교길에 저는 정말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무거운 발검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마침내 수업 시간이 되었고, 선생님의 질문과 아이들의 응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손 들어 봐’ 질문이 연속이었지요. 드디어 질문이 나왔습니다.

“자. 종교 조사 시작할게. 먼저 집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 손!”

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혼자 ‘왕따’가 될 각오를 하고 슬그머니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뭔가 예상보다 오래 카운팅을 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꾹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더니.. 헉 (정말 놀랐음) 대충 봐도 절반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함께 손을 들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제 얼굴은 급 화색이 돌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어머니께 말씀드렸지요.

“엄마. 부처님 쫌 대단한가 봐요?”

아마 어머니께서는 이 녀석이 왠 싱거운 소리를 하나 하셨을 겁니다.


당시 우리는 잠실에 살고 있었고, 어머니께서는 이듬해 불광사라는 절이 석촌 호수 앞에 건립되자 가까운 곳에 절이 하나 생겼다면서 무척 좋아하셨습다. 마침 그 절은 공부를 하고 포교를 하는 도시형 절로 건립된 터라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 대거 머물고 계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신 후 가정주부로 평생을 사신 어머니께서는 그 이후로 그 절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시며 여태껏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인 제가 가만히 지켜보니 일이년이 아닌 수십년간 꾸준히 활동을 해오시면서 다른 불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견학하고, 여행다니고.. 이런 시간들이 모이고 모이니 중장년을 향해 가는 동안 인생의 경륜과 무게감이라는 것이 묵직하게 배어있으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더군요. 저는 특정 종교에 해당하는 얘기라기 보다는 ‘시간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어머니께서는 종종 불교 방송도 보시고, 불교를 테마로 한 책도 보시고, 유명 선사들의 수업도 들어보시고, 견문도 넓힐겸 여행도 다니시고.. 이렇게 시간을 채워 나가고 계십니다. 3~40년이 흐르는 동안 이런 꾸준함이 얼마나 큰 내공이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저야 불자 집안임에도 종교 활동은 날림인지라 이렇게 무언가 정신적으로 큰 축을 잡고 살아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가끔은 어떤 한 길을 꾸준히 밟아나가는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 스팀잇 생활이 그런 축의 하나가 될 수는 있을런지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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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ν•œκ΅­μ˜ 민주주의

연어입니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침대에 뒹굴거리며 핸드폰으로 글을 써 봅니다. 감기가 다 나은듯 하면서도 기온 변화가 있거나 공기가 달라지거나 하면 귀신같이 그 변화를 알아채고 기침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대체로 해가 떠 있을 땐 괜찮은데 해가 지고 날이 저물면 곤혹스러운게 이만저만 아니네요. 아직도 저의 몸은 그 뭔가와 사투를 벌이고 있나 봅니다. 어느정도 컨디션은 회복했으니 저의 백혈구들이 신나게 싸워 이길수 있도록 좀 더 관리를 해줘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현시점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어떠한지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정리해 보곤 합니다. 복잡다단한 세상 흐름을 딱 무언가로 규정짓는다는게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긴 하지만.. 예를 들면 지금이 이런저런 상황들이 더 미궁으로 빠지거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는 단계인지, 아니면 그간의 여러 갈래길들이 하나씩 정해지면서 확실성을 나타내고 있는 단계인지 등 말입니다. 지금 얘기한 기준으로 봤을 때는 불확실성보다는 하나씩 미제의 일들이 방향을 잡아가는.. 즉, 확실성을 높이고 있는 단계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깥 문제에서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새로운 기류가, 그리고 국내 문제에서는 단연코 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MB)의 구속수감이 그 중심에 있다 할 것입니다.

이후 결과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피의자 신분의 MB는 자신의 방어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검찰측에서도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외에도 전반적인 국민 여론과 시대 흐름에 따른 요소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겠지요. MB측에서는 현 대통령의 인기와 권세, 여론에 호도된(?) 국민 여론 등이 무척이나 부담스럽겠지만 반대로‥ 10여 년 전 수많은 고발과 의혹을 비켜나갈 수 있었던 데에도 역시나 MB의 과거 행적을 눈감아 주겠다는 국민정서의 덕이 컸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쨌든 연달아 터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은 이후 대한민국 정치와 역사에 크게 자리매김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또 한번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때어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제가 목도했던 기간 중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가 그 모토대로 가장 완벽하게 운영되었던 기간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전후한 직무정지 기간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며 동시에 정부 각 부처, 국회, 군과 경, 언론, 시민단체 등등 모든 사회 구성 부처와 집단들이 제 모습과 색깔을 되찾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착착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 없어도 나라가 잘 돌아간다’고 했을까요. 어쨌든 이 기간을 회고해 보신다면 모든 사회 각 구성 요소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사명이 무엇인지 한 순간에 깨달은 것처럼 각 직분과 요구에 맞는 역할들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처음으로 제 조국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성숙된 민주주의의 기틀을 확고히 품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최초의 경험인듯 합니다.

어제 영국 모 언론매체가 선정한 아시아의 최고 민주주의 완성 국가로 한국이 그 대상이었다는데 그닥 놀라지 않은 이유도 그러한것 같습니다. 어릴 때 서울에 살며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늘 최루탄 가스에 기침을 해대야 했던게 엇그제 같은데,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통해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여러 아시아 친구들이 있만 이 친구들 역시 자신의 조국이 좋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번영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친구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보일 때 이것을 이루어오기 까지 어떤 여정들이 있었는지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땐 왠지 가슴한켠에 짠한 슬픔과 감동이 밀려오는건.. 제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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