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그리고 스팀잇

철학, 그리고 스팀잇

연어입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마자 (뻑뻑한 눈을 비벼대며) 핸드폰을 뒤적이다 @kmlee 님께서 스팀잇에 올리신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작은 탄성과 함께 잠이 화들짝 깨더군요. 문득 평소 생각해오던 바가 있어 글을 남겨봅니다.


일전에 어느 분께서 남기신 댓글이 기억납니다.

“연어님과 @kmlee 님께서 남기시는 글들은 빠짐없이 꼭 읽어 봅니다”

저로서는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kmlee 님은 어떤 분이길래 저리 열광적인 팬을 몰고 다니시나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kmlee 란 계정명과 비슷해 보이는 계정명들이 있어 처음엔 잘 구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문도 종종 바꾸시고 하니 더 헷갈리더군요. (일관된 대문은 그런 점에서 좀 유리하기도 합니다 ㅎ) 거의 매일 빠짐 없이 글을 올리시는 듯한데 저도 다 읽어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드문드문 글을 읽고 보팅한 기록이 말해주더군요.

직접 언급도 해주시긴 합니다만 @kmlee 님의 글들은 그 베이스가 철학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솔직히 이런 표현도 좀 우습긴 합니다. 글이란게 간장 베이스니 고추장 베이스니 하는 요리도 아니고.. 글은 생각의 표현이고, 그 생각들이란게 성격과 범위를 딱히 규정지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어쨌거나 @kmlee 님의 글을 읽다 보면 그 분의 생각 흐름을 그대로 엿보는 기분이 듭니다. 유구히 흘러 내려가는 거대한 물줄기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아마도 모두들 동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학력, 학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저 자신도 학력과 학벌이라는 사회적 압박을 피할 수 없어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지만 어쨌든 근본 성향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얹는다면.. 바로..

전공입니다.

한 때 대한민국 대학을 중심으로 전공을 세부적으로 나눠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란이 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설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여하튼 한국 사회에서 전공에 대한 선입관이나 차별은 매우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전공 구분이 필요한 점은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지식과 기술을 꾸준히 배워나가야만 비로소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영역이 분명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특수성을 배제한다고 하면 저는 기본적으로 전공의 구분 보다는 전공이 내포하는 학문적 순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기초부터 잘 다져나가야 한다는 소리이죠.

제가 어떤 조직을 끌어 나가야 하고, 그 조직에 인재를 채워 넣어야 한다면, 그리고 굳이 ‘전공’을 기준으로 인적 배분을 해야 한다면 제가 가장 선호하고 중요하게 여길 전공자는 단연코 아래의 세 가지입니다.

(1) 수학 (2) 법학 (3) 그리고 철학


저는 고교때 이과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던 몇 몇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정말 수학을 좋아해서 선택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뭐.. 꼭 전공이라는게 좋아해서 선택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그 친구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똑같았습니다.

“이 전공으로 나중에 뭘 해야하지?”

한 마디로 수학으로 밥벌어 먹고 살기 쉽지 않겠다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알음알음 준비하는 것들이 다른 관련 전공으로 갈아타거나 학원가에서 인기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것 등이었습니다. 뭐.. 그랬단 얘기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현실적 고민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법학은 어떠한가요? 요즘 로스쿨로 바뀌 이후에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전에 사법고시 제도 하에서 많은 법대 출신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정치권에는 법학 전공자들이 부지기수로 널려있었으니까요. 정치인들 중에는 사법고시를 패스한 법조계 출신이 상당히 많고, 정치권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도 법학 전공자가 상당히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형동생 하며 지내던 동료들 중에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그쪽 길을 일찍 접고 정치권에 뛰어든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이 친구들에 대한 얘기만 풀어내도 몇 편의 포스팅이 가능할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지요)

몇 번의 2차 사법고시 실패로 좌절을 겪던 차에 부모님의 권유로 정치권에 들어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엄청 잘 나가는 자리에 있습니다만.. 첨에 그 자신감 없는 모습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지요. 그 친구에게 차 한 잔 함께하며 해준 얘기가 있습니다.


형이 공대 출신이쟎냐. 나야 전공이 워낙 맞지 않아서 공학만 빼고 어떤 영역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뛰어드는 사람인데, 그 일면엔 세상의 학문이란게 그리 따박따박 구분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있어서야. 그러니 난 네가 일단 ‘법학 전공’이라는 테두리에 갇혀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얘기 나온김에 네 전공에 대해서 말해주자면..

내 친구들 중에 석사 따고 박사 따고 그런 식으로 스펙 올려가는 녀석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게 뭔지 아냐? 바로 수학이야. 가면 갈수록 수학 싸움인데.. 이럴 바에는 그냥 학사 때 수학을 전공하는게 낫겠다는 얘기지. 모든 학문은 결국 기초 싸움이고.. 내가 지켜본 바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기초 전공은 수학, 법학, 그리고 철학이야. 넌 그 중에 하나를 밟아온 셈이고. 그러니 사법고시에 목숨 매지 말고 그간 닦았던 공부로 새로운 네 영역에 잘 적응해 보라구.


네, 그렇습니다. 이게 제가 해준 진심어린 조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나마 수학과 법학의 영역은 전공자들을 일부 받아들일 수 있는 터전이 있습니다. 바로 학원가지요. 수학은 말할 것도 없고 법학쪽도 공인중개사라든가 여러 실무에 필요한 기본 지식이 되다보니 공부나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수요자들이 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지식에 대한 공급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게 생업의 일부를 지탱해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철학은 좀 다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고,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데 너무나 필요한 이 요소가 실무에서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게 한국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니까요. 모든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것에서도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아이러니일까요? 어쨌든 이런 환경은 여러분도 익히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실제 제 고교 친구중에 건축학과 철학 두 가지 중 하나를 원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두 영역 모두 너무 관심이 많은데 결국 밥벌어 먹고 사는 고민이 더 강했던지 고3때 건축학을 지원했으나, 다시 재수를 하여 철학을 전공한 친구였죠. 더 재미있는 것은 신나게 철학 공부를 하다가 대학 3학년 때부터 복수전공을 지원해 다시 건축 전공을 밟고 지금 건축 설계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다시 건축으로 발길을 돌렸냐고 물어봤는데 건조한 대답이 오더군요.

먹고 살아야 하쟎아..


수학이 수리를 연구하고, 법학이 법리를 익히려 한다면… 철학은 삶 그 자체를 탐구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보면 철학은 우리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이고 음식으로 치자면 소금과 같은 역할인데 정작 모든 곳에 필요하다 보니 별반 중요하게 취급해 주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면 철학과 교수가 되거나 멋진 책이라도 내지 않는 이상 취직 걱정부터 해야 하는 암울한 영역이 되어 버렸고, 이래저래 경기가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힘들고, 경기가 좋으면 좋은대로 다른 영역에 밀려나 버리는 비운의 학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학과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이 사회 속에서 자신들만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주변에 심심치 않게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데 도통 철학을 전공한 분들과 철학자로 살고 있는 분들은 만나기가 어렵더군요. 제 친구는 ‘철학관 하면 되쟎아? 돈 잘 번다는데?’라는 주변의 농담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철학적 고민으로 시작해 밥벌이 걱정으로 끝나야 하는 이 사회의 철학인에 대한 대우..

저는 그 사이에서 @kmlee 님같은 존재가 너무나 반가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이 생각하고 있는 많은 바를 스팀잇이란 공간에 남긴 글을 통해 알 수 있게 되고, 그것은 우리가 철학과 다시 만나는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kmlee 님을 통해 그 분의 생각과 철학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내던 철학.. 삶에 대한 성찰과 생각을 다시금 생활속에 가까이 할며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 못내 고마울 뿐이거죠. 그리고 이런 ‘배고픈, 배고플 수도 있는’ 철학자에게도 딴 영역에 기웃거리지 않아도 소득이 생기고, 그 소득으로 생활의 안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다시 본인의 성찰을 키워갈 수 있고, 그것을 다시 우리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어준 스팀잇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잘 가꾸고 키워가야 할 스팀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기-승-전-스팀잇으로 끝나나요? 어쨌든 그런 면에서 @kmlee 님의 글을 더 가까이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kmlee 님도 우리 이웃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철학을 대할 수 있도록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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